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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라토너 거북 맘 Aug 22. 2022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거북 맘의 미국 여행기 12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티브이 광고나 오락 프로그램, 드라마 등에서 종종 인용되곤 하는 표현이지만

그 유래는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를 통틀어

미국 메이저리그를 풍미했던

뉴욕 양키스의 슈퍼스타 요기 베라(Yogi Berra)가 남긴

수많은 주옥과 같은 어록들 중 하나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와 투지,

끈기와 희망을 대표하는 이 표현을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른 의미로 해석하고자 한다.




벌써 몇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가족 여행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가며

시간의 흐름과 여정에 따라 그저 단순하게 나열하기만 했는데도

의도치 않게 제법 방대한 분량의 장편 기행문 시리즈가 되어버린

거북 맘 가족의 미국 여행기.


인생이, 그리고 우리의 삶이

한 치의 오차 없이 미리 계획한 대로

딱딱 맞아떨어지기보다는

오히려 생각지 못했던 돌발상황이나

예외적인 변수를 만나게 될 가능성이 늘 주변에 존재한다는 걸

나이 쉰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왜 하필 그때...

도대체 왜 나에게, 우리에게...

딸내미와 함께 여행한 죄(?)밖에 없는

친정 어무이 김여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느냐 이 말이다.


"엄마, 저녁은 뭘로 시켜 드릴까?"

"뭐 더 필요한 거 없으셔?"


객실 전화기로 너머로 기운 없고 가녀린 김여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입맛도 없고... 아무 생각이 없다."

"그냥 네가 알아서 적당히 시켜주라."


로열 캐리비안 Quantum of the Seas의 11층 룸 186호.

7박 8일의 일정 중

5일 동안을 오붓하게 함께 묵었던 김여사와 나는

6일째 되는 날 오전에 이산가족이 되어 헤어지게 됐다.


그렇다.

김여사가 코로나 확진자 신세가 된 것이다.


사전 준비...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미리 앞서 철저히 준비해왔었다.

여행 중에도...

항상 지나칠 만큼 조심 또 조심하며

잠시도 마스크를 벗은 적이 없었던 김여사였다.


전날의 경비행기 빙하 투어 이후

급속도로 컨디션이 나빠졌던 김여사는

밤새도록 한숨도 못 주무신 채 목의 통증을 호소하며 힘들어했다.


시어머님이 챙겨 오신 비상약, 사랑니의 통증 때문에 내가 먹던 항생제...

아무것도 효과가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크루즈선 내에 있는 병원에 가서

진찰까지는 아니더라도 약만이라도 받아올 수 없겠냐고 부탁하는 김여사를 보며

잠깐 동안이었지만 심각하게 고민하며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크루즈 내에 있는 병원에서 약을 받으려면

환자가 직접 방문해서 코로나 테스트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었다.

크루즈 내의 병원을 방문하기 전, 마지막이 된 뷔페 식당에서의 아침 식사 중인 김여사
PCR 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는 김여사... 결과는 양성 ㅠㅠ


일단 크루즈에 승선하기 전, 이미 코로나 검사를 마친 이후이므로

미국 본토에 살고 계신 시부모님이나

미국령 사이판 주민인 남편과 나, 아이들은

설령, 지금 양성 반응이 나왔다 하더라도

크게 문제 될 게 없었다.


우리는 한국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를 거치는 게 아니라

미국 영토 내에서 이동하는 상황인지라

더 이상 특별히 추가적인 검사를 받거나

증명을 해 보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여사는 상황이 달랐다.


초창기 때보다 많이 완화가 됐다고는 하지만

대한민국 입국을 위해서는 아직도

입국 하루 전날이나 당일, 신속 항원 검사를 받고

음성으로 결과가 나와야만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가장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닥쳤을 때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패닉 상태에 빠지고

오만가지 걱정과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이제 딱 두 밤만 자면 7박 8일의 크루즈 여행이 끝나는데...'


'이틀 후, 아침 일찍 시애틀 항구에 도착해 배에서 내리면

엄마는 바로 그날 오후 1시에 시애틀 공항에서

대한항공편으로 떠나게 돼 있는데...'


'무엇보다... 우리는 그다음 날 새벽 비행기로

다시 사이판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어쩌지, 정말 어쩌지...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지...'


김여사와 함께 방을 쓴 나도

당연히 코로나 검사를 받았지만

희한하게도 결과는 음성이었다.


결국, 김여사는 배의 3층에 위치한 Quarantine (검역소)에 격리되었다.

김여사의 설명에 의하면,

그곳은 우리가 묵었던 룸의 구조와 똑같고

발코니 대신 동그란 창문이 있는 1인 1실의 격리 장소였다고 한다.


배에서 완전히 내리기 전까지

방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된 김여사와는

객실 전화로 의사소통을 하며 안부를 물어야만 했다.


영어가 안 되는 김여사를 위해

입맛에 맞는 음식을 룸서비스로 배달해 드리거나

불안함과 당황스러움에 휩싸여 있을 김여사에게

전화로 이런저런 위로의 말을 해드리는 것 외에는

배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김여사가 확진 판정을 받고 격리되어야 한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눈에 뵈는 게 없고 당황한 나머지

나도 같이 김여사와 쿼런틴에 들어가겠다고 했었다.


'혼자서 불안하고 무서울 텐데...'

'영어도 안 되는 노인네가...'


그러나 남편이 조심스럽고 진지하게 만류했다.


'어머님에 대해서는 우리가 머리 맞대고

최선을 다해 연구하고 노력해 보자.'

'하지만, 당신이 어머님이랑 같이 격리돼 버리면

애들이나 우리 부모님, 나머지 여행 마무리는 어떻게 하냐.'

'조금만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생각을 하자.'


결국, 룸으로 올라와 무겁고 불편한 마음으로

김여사의 캐리어에 소지품과 옷가지들을 꼼꼼하게 챙겨서

직원을 통해 3층 격리소로 전달해 드리고 난 후

전화로 애써 담담하게 김여사를 안심시켰다.


"엄마! 너무 걱정 마셔."

"어차피 모든 여행 일정도 끝냈고, 옵션 투어도 다 마친 상황인 데다가

안 그래도 몸 안 좋으시다고 방에 누워서 계속 쉬려고 하셨었잖아."

"이틀 동안, 푹 쉬신다고 생각하시고 맘 편하게 잡수셔."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하시고..."




정신줄을 놓고 패닉 상태가 되었던 오전 시간이 지나고

늦은 오후가 되어 겨우 조금씩 제정신을 차린 후

여행하는 동안 김여사와 함께 찍었던

수십 장의 사진들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먹먹해진 나머지

이제는 홀로 남은 11층 룸에서 훌쩍 거리며 한동안 청승을 떨고 있었다.


'그래도, 마무리는 제대로 해야지.'

'남은 사람들이라도 나름의 시간을 갖고 의미 있게 보내야지.'


김여사의 격리로 인해 분위기가 급 가라앉아 버린 여행의 후반부를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마무리 짓고 싶었다.


쉽지 않았지만...

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지막 formal night을 위해

나름대로 옷을 차려입고 화장도 하고서

예약한 식당에서 시부모님을 비롯한 나머지 식구들과

사진 촬영도 하고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며

뜻깊은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김여사가 빠진, 크루즈에서의 마지막 포멀 나잇


혼자서 세상 모든 근심을 다 끌어안고 있을

3층 격리소의 심란한 김여사

한국에 있는 여동생과 긴급하게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배에서 하선한 이후의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인

고뇌에 찬 나와 남편을 실은 배는

어둡고 무거운 밤바다를 헤치며

부지런히 시애틀 항구로 향하고 있었다.


도대체 누가 이 여행이 끝나간다고 했던가.

김여사의 여행은 아직 끝이 아닌 것을...


끝날 때 까지는 아직 끝난 게 아니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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