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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라토너 거북 맘 Oct 24. 2022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김여사 1

거북 맘의 미국 여행기 13화 (1인칭 거북 맘 시점)

"엄마아아~!"


꼬박 1년 동안을 기다리며 준비해 왔던

7박 8일의 알래스카 크루즈

마치 자정이 지나면 마법이 풀려

모든 것이 꿈이었던 듯 사라져 버리는 신데렐라의 무도회처럼

어느새 그렇게 끝이 나 있었다.


수천 명의 승객들이 승선할 때도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했었지만

하선할 때 역시 제법 시간이 걸리고 꽤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다.


게다가 우리의 경우는

가족의 일원이 쿼런틴에 격리돼 있었던 지라

다른 승객들이 모두 하선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지정된 장소에서 김여사를 만나야만 했다.


김여사를 기다리면서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 같은 케이스가 제법 많았던지

만남의 장소에는 우리 말고도 꽤 많은 사람들이

격리돼 있던 각자의 패밀리 멤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이틀 만에 김여사를 만났다.


남편과 나, 아이들은

김여사를 보자마자 우르르 달려가서 얼싸안았다.

감동의 가족 상봉이었다.


격리소에서 이틀 동안 약도 드시면서 쉬신 덕분인지

김여사의 안색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지만

얼굴엔 걱정과 불안함이 가득했다.


사실, 나와 남편도

이런 경우는 당최 겪어보질 못한지라

아무것도 미리 예상하거나 단정 지을 수가 없었다.


크루즈 내의 고객 센터에서는 그저 우리에게

이런 경우, 정해진 프로토콜 대로 따르게 되어 있으므로

확진자는 5일간의 격리를 마치기만 하면

더 이상의 특별한 제재 조치는 없다고 설명했었다.


김여사의 경우, 크루즈 내 격리소에서 이미 이틀 동안을 격리돼 있었기 때문에

하선하기 전, 나머지 3일의 격리 기간을 채울 숙박 시설을 예약해 두기만 하면

정해진 숙소까지 크루즈 측에서 차량 제공과 함께 

드롭 서비스를 해 주겠다고 했다.


딱 거기까지였다.


우리가 격리소에서 나온 김여사와 만나 얘기라도 나누고

물건이라도 전해주며 간단한 접촉을 할 수나 있는 건지...

아니면 아예 적정 거리를 유지하도록 감시하며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건지...

숙소에 도착해서도 배에서 처럼 외출하지 못하고

통제 구역같이 따로 격리된 곳에만 있어야 하는 건지...


구체적인 설명이나 지시사항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 대놓고 묻기조차 망설여졌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만남의 장소에서 김여사와 상봉했을 때

함께 얼싸안고 접촉을 하며 사진 촬영까지 해도 아무런 제재가 없었던걸 보면

상황에 따라 눈치껏 알아서 대처를 해도 무방해 보이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김여사의 코로나 확진 후, 

미국에서 5일 동안 격리와 체류를 해야만 하는 상황은 정작 심각하고 큰 문제가 아니었다.

바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입국하기 위해 넘어야 할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다는 게

김여사 앞에 놓인 최대의 난관이었다.


시애틀에서 나머지 3일 동안을 더 머물며

5일의 격리 기간을 채웠다 하더라도

한국 입국을 위해서는

확진 판정을 받은 지 열흘이 지나야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점.

덕분에 배에서 내린 후

김여사는 무려 8일을 더 시애틀에 머물러야만 한다는 점.


아쉬운 대로 8일 후에 출발하는 

가장 빠른 비행 편을 알아보았으나

일이 안되려니까 계속 꼬이는지

모든 한국행 비행기의 좌석이 만석이라

열흘의 기간을 채우고도 무려 4일이 지난 후에야

탑승 가능한 비행 스케줄이 있다는 기가 막히고 어이없는 상황 앞에서

우리 모두는 그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새벽 비행기로 시애틀을 떠나야 하는 우리...

혼자서 무려 12일 동안을 시애틀에 더 계셔야만 하는 김여사...


우리는 크루즈 측에서 제공하는 벤을 타고

김여사와 함께 시애틀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낼

숙소로 이동하고 있었다.

머릿속은 복잡하고 마음은 심란했지만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보다 불안하고 걱정스러울 김여사를 위해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농담도 해가면서 말이다.


시애틀 항구를 빠져나가는 벤의 창문 밖으로

새로운 승객들이 기대와 흥분에 찬 얼굴로

크루즈 승선을 위해 속속 도착하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우리도 8일 전엔 저렇게 행복하고 들뜬 모습이었지...'


여행을 마치고 배에서 내려

이런저런 추억들과 함께 항구를 떠나는 사람들.

이제 막 새로운 항해를 시작하기 위해 

부푼 가슴을 안고 항구로 들어오는 여행자들.


이 모든 것들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거대한 크루즈선이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며

아쉬움이 남은 작별인사를 했다.


'그나저나, 우리 김여사... 어쩌지?'

'70대 후반의, 걸음걸이도 시원찮고 영어도 안 되는 우리 김여사를 어떻게 혼자 두고 가지?'

'우리 김여사, 어떻게 열흘이 넘게 혼자서 시애틀에 머물지?'


"어무이~~~!"


불효녀, 거북 맘은 마음속으로 목놓아 울고 있었다.




이전 12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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