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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앤 Oct 14. 2022

내인생의 좋.댓.구.알(좋아요 댓글 구독 알림설정)

시작하는 나에게 응원을!


"저요! 저요!"

초등 저학년때는 선생님이 더 많이 발표 기회를 주시 길 바랬어요. 

심부름을 하더라도 저를 지목하시면 어깨가 으쓱했죠. 선생님의 부름을 받는다는 것이 무슨 국가훈장과 같았던 시기였으니까요. 한 번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든 교실을 돌며 각반의 담임선생님들께 서류를 드려야 하는 심부름을 한 적이 있어요. 학년별로 10개의 반이 있었으니 수업을 안 듣고 하루 종일 60개 교실을 돌아다녀야 했지요. 그때 얼마나 신났는지 몰라요. 공부를 안 해서 그런 게 아니었어요. 

‘이렇게 중요한 일을 나에게 맡기 시다니!’ 

제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저는 선생님의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천장 끝까지 손이 닿을 정도로 번쩍번쩍 드는 아이였어요. 

행여나 선생님이 제 손을 보지 못할 까봐 엉덩이를 의자에서 살짝 떼며 있는 힘껏 손을 치켜들었죠.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며 뿌듯했던 저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틀리게 되면 혼이 나거나 창피를 당하는 일이 생겼죠. 정답을 말해야 인정을 받는 분위기였어요. 

그러다 보니 아는 문제여도 틀릴 까봐 두려워 고개를 푹 숙이거나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게 되었어요. 어떻게 든 눈에 띄지 않는 게 최선이라 여겼어요. 구석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었죠. 

선생님의 지목을 받지 않는 날이 좋은 날이었습니다. 

정답을 말하는 것조차 심장이 두근거렸으니 모르는 답을 말해야 했을 땐 오죽했을까요. 


회사에 가서도 마찬가지였어요. 밤샘 회의를 해 야하는 회사에서도 내 의견을 말하기 보다는 

열심히 회의기록을 적는 게 가장 좋았죠. 앞에 나가서 프리젠테이션 하기보다는 

자료를 만드는 담당을 자처했습니다. 질문을 그 때 그 때 하기 보다는 다 하고 나서야 뒤늦게 물어보기도 했죠. 질문을 하거나 제대로 대답을 못하는 태도가 무능력해 보인다는 압박감이 생기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늘 뒤에 있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 되어버렸죠. 저를 드러내는 것보다 2순위가 되는 것이 좋았어요. 사회 생활을 하면서는 요령이 생기게 된 거죠. 중간만 가도 된다, 괜히 일을 만들지 말자고요.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고 적당히 감추는 행동이 직장인의 현명한 자세라고 여겼습니다.


아이는 저와 달랐어요. 아니, 어린시절의 제 모습과 참 많이 닮아 있었죠. 

궁금한 게 있으면 거침없이 물어보았어요. 알고 있는 정보도 굳이 한 번 더 질문하고 확인하고 싶어했어요. 

아직은 어리니까 그렇겠지 싶었는데 좀 더 커서도 선생님 옆에 딱 붙어서 말하는 것을 좋아했고 모르는 어른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대화했죠. 아이의 적극적인 행동이 대견하면서도 아이를 말린 적도 참 많았어요. 


“아니, 지금 선생님 뭐 하고 계시잖아. 기다렸다가 말 해야지”. “그걸 굳이 왜 물어봐? 안 물어봐도 되잖아.”


하루는 아이가 말했어요. 

"엄마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왜 안돼?" 

아차 싶더라고요. 잘못된 행동이 아닌데 예의 차린답시고 자기 입을 틀어막는 엄마가 이상했겠죠. 

마음껏 틀린 생각을 말하게 하고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게 키우겠다고 결심했던 마음이 어디로 갔을까요. 

아이도 나처럼 고개 푹 숙인 사람처럼 키우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말이죠. 

다른 아이들처럼 적당히 알은 체하기를 은연 중에 바라고 있었나 봐요. 영악하게 머리를 굴릴 줄 알아야 세상 살기가 편할 거라며 제 멋대로 결론짓고 아이를 그 방향으로 몰고 있었네요. 

궁금해도 적당히 아는 척하거나 남들 하는 행동 보면서 따라하라고 은연 중에 강압하고 있었어요. 


질문하는 자기가 틀렸냐고 반문하는 아이에게 할말이 없었어요. 

“아니야. 궁금한 게 생기면 당연히 물어봐 야지. 너가 맞아.” 그 뒤로 아이가 궁금해하면 말해주고 있어요. "너가 직접 가서 물어봐." 아이는 신이 나서 달려가서 물어보고 와요.

 가게 사장님이든, 일일체험 선생님이든, 길가는 어른이든 물어볼 대상이 있으면 언제든지 자기 목소리를 냈어요. 그리고 쪼르르 다시 달려와 알게 된 정보를 또박또박 말해주었죠. 

상기되어 발그레한 볼을 장착한 채 말이죠. 저와 닮았으면서도 다른 그 모습이 참 예뻐 보였어요. 

‘나도 저렜는데, 손을 번쩍 들고 이야기하길 좋아하고 언제나 고개를 당당히 들고 다니던 아이였는데…’ 

저의 당당한 모습을 찾고 싶으면서도 언제나 그렇듯 시간만 흘러가버리고 있었습니다. 


21년 봄, 더 이상 예전처럼 살지 않겠다며 자기계발 공부를 하던 날이었어요. 

그 무렵 오프라인 자기계발 강의를 신청했죠. 한달동안 진행되는 모임이었어요. 발표도 많이 하고 팀별로 진행되는 모임이었죠. 사람들과 새롭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건 무척 설레었지만, 

발표도 있다는 말에 은근히 긴장했어요. 

‘이상하게 말하면 어쩌지? 다들 멋지게 말할 텐데…’


모임에 가는 첫 날, 신랑이 말했어요. "무조건 제일 먼저 손들어봐. 그러면 할말이 있겠지. 

그냥 무조건 처음으로 해." 순간 저도 모르게 결심했어요. 

‘그래,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굳게 신랑과 아이에게 약속했어요. 

"엄마가 제일 먼저 손들고 발표할께. 엄마가 가장 못하는 발표 하고 올께." 


저는 그 약속을 지켰을까요? 

네,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나와서 씩씩하게 나가서 이야기했어요. 


"저는 아이와 약속한 걸 지키려고 나왔어요. 저는 원래 이렇게 나와서 발표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었던 사람이었어요." 그렇게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죠. 

덜덜 떨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결심을 하고 나와서 였을까요.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졌어요. 앉아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할 수 있었죠. 

발표를 마치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신랑에게 문자를 보냈어요. 


'나, 약속 지켰어.'


손들고 앞에 나가서 발표하기. 누군가는 별 일 아니게 보이는 이 행동을 하기까지 수십년의 시간이 필요했네요. 막상 해보니 정말 별 일 아니었어요. 그 다음부터는 좀 더 거침없어졌어요. 

그 모임에서 두번이나 나가서 발표를 했답니다. 오히려 한 번 더 하고 싶다고 바랬던 날도 있었어요.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자 생각보다 세상은 쉽게 문을 열어주었어요. 

‘얼마나 너 잘하나 보자.’하며 팔짱 끼고 저를 심사할 것 같았는데, 아니었어요. 

떨리지만 용기 있게 나간 행동에 박수를 보내주더라고요. 그 뒤로 제 스스로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어요. 


'너, 생각보다 멋지다!'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유투브를 보면 게시물의 반응을 볼 수 있는 지표가 있죠? 

하트와 엄지 척 그림에 얼마나 많은 공감 반응이 있느냐 에 따라 그 게시물의 영향력을 알 수 있어요. 

저도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하트 표시에 은근히 신경 쓰고 많은 반응이 보일수록 힘을 얻곤 하죠. 


제 인생에도 그렇게 공감을 가장 먼저 해주기로 했어요. 

남들이 눌러 주길 기다리지 말고요. 남들이 시킬까 봐 뒤로 숨지 말고요. 

당당하게 제가 저를 '좋아요', '엄지 척' 해주려 합니다. 셀프 칭찬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몰라요. 

내 스스로를 잘했다고 인정해주면 세상에 내딛는 발에 힘이 생깁니다. 

어깨도 쫙 펴지고 허리도 꼿꼿하게 펴지더라고요. 

내가 나를 제일 먼저 구독해주고 좋아한다고 먼저 얘기해보아요. 내가 안해주면 누가 해주겠어요!


 거침없이 자신의 인생에 ‘‘좋.댓.구.알’(좋아요, 댓글, 구독, 알림 설정) 눌러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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