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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앤 Oct 13. 2022

엄마로 말할 것 같으면

아이에게도 당당한 엄마 되기

"엄마는 뭐하는 사람이야?"


아이들은 왜 이렇게 궁금한 일들이 많을까요?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하다 못해 

이제는 엄마의 ‘업’도 궁금해합니다. 네이버 카페에서만 봤던 말이었어요. 

"엄마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야?" 

그 때마다 일을 하지 않는 엄마들의 당황스러움을 글로만 보아왔는데 드디어 올 게 왔네요. 


역시나 저도 당황했어요. 갑자기 볼이 빨개지고 “어…”하며 머뭇거리게 되더라고요. 

별 뜻없이 물어본 말이라는 거 당연히 알죠.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에 왜 내 심장이 쿵! 했을까요. 

연애할 때도 이렇게 쿵쿵거린 적이 있었나 싶은데 말입니다. 오랫동안 숨겨왔던 치부를 들킨 듯한 기분이었나 봅니다. 한창 다양한 직업에 대한 책과 영상을 보고 있었고, “나는 커서 요리사도 되고 싶고 고양이, 강아지도 돕고 싶어!” 당찬 꿈을 꾸는 시기이기도 했어요. 새벽마다 일어나는 엄마가 무슨 공부를 하는지, 매일 같이 노트북을 켜서 무슨 이야기로 키보드를 두들기는지 궁금했을 법도 합니다. 


“어, 엄마는 그냥…누가 부탁한 글을 쓰고…뭐 그래…”

아이는 제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말했어요. "엄마는 사람 몸에 대해 글쓰는 사람이잖아!" 

아이 입에서 정의 내려지는 저라는 사람은 참 심플했어요. 

아, 맞아요. 저는 10년째 재택 아르바이트로 병원 컨텐츠 쓰는 일을 하고 있어요. 아이 말 대로 사람 몸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죠. 담당자가 주제를 주면 그에 맞는 뉴스자료를 만들어 주고 있죠. 

그러다 보니 노트북에는 각종 질환에 관련된 자료가 자주 보일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마다 아이는 "으! 징그러! 이게 사람 몸이야?"하면서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고, 호기심을 보이기도 했었어요. 아이는 늘 저와 붙어있었고 모든 일을 공유하길 원했으니 더더욱 궁금했겠죠. 엄마는 도대체 무슨 일 하는 사람인지를.  


그런데 왜 저는 그 말에 작아졌을까요. 왜 하는 일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을까요. 


4대 보험을 받고, 명함이 있고, 회사 출입증 목걸이를 걸어야만 '일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집 구석에서 하루 한 두 시간하는 재택 아르바이트 일을 내 스스로 가볍게 여기고 있었나 봅니다. 

그 날은 그런 제 마음을 들킨 날이었어요. 작은 일을 하는 저를 인정해 주지 않고 가볍게 보고 있었던 거죠. 


저는 고위험 산모였어요. 퇴사를 할 수밖에 없었고 바로 재택 일을 시작했어요. 

하루 종일 누워만 있어야했기에 다시 취업을 할 수가 없었죠. 누운 상태로 겨우 고개 들어 노트북으로 할 수 있는 재택업무가 최선이었습니다. 반찬 값이라도 보태야겠다 싶었어요. 어떻게 든 일을 짧게 라도 계속 했죠. 조리원에 가서도, 밤잠 예민한 아이를 돌보면서도 계속 재택 아르바이트를 했죠. 우리 식구 반찬 값을 소소하게 보태는 정도로 벌이는 크지 않았지만 그 일이라도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럼에도 당당히 얘기하지 못했어요. 그럴싸하게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어디를 가나 저의 직업은 '무직'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 눈에 비친 저는 '글 쓰는 사람'이었어요. 

늘 열심히 글 쓰고 집에서 일하며 자신도 돌보아주는 멋진 엄마였겠죠. 

아이가 당당하게 생각해주는데 왜 나는 스스로를 낮게 보고만 있었을까 순간 볼이 붉어졌죠. 

나에게 미안해져서 괜 시리 코끝이 찡해졌지 뭐예요. 아이의 말을 듣고 ‘나’에 대한 정의를 한 줄로 다시 내려보았어요. 


'취업 후 10년, 퇴사 후 지금까지 10년째 기사를 쓰고 있는 중. 나는 20년동안 글 쓴 사람이네!'


순간 박하사탕 100개를 입에 문 거 마냥 속이 시원했어요. 

‘나, 이렇게 멋진 사람이네!’ 누군가 보면 코웃음을 칠 경력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요.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기도 하잖아요. 20년동안 한 번도 글쓰기에 손을 놓아 본적이 없었으니까요. 

고위험 산모실에서도, 아이 낮잠 잘 때도, 휴가를 갈 때도 노트북은 필수였어요. 10년동안 매일매일 쓰면서 살았습니다. 이제는 재택 아르바이트 외에 나의 이야기를 쓰고 있기도 하죠. 

스스로에 대한 정의를 당당히 내리고 나니 왠지 모르게 허리가 쭉 펴지고 가슴도 활짝 열게 되었던 날이었어요. ‘다음에 아이가 또 질문하면 이제는 당당하게 말해줘야지.’ 결심도 했죠. 


이후 모임을 운영하고 컨설팅도 하면서 줌 사용시간이 많아졌어요. 

"엄마 오늘 저녁에 줌 모임 있어. 피곤하면 아빠랑 먼저 자." 아이는 늘 궁금해했어요. 

"엄마가 호스트야?""몇명이나 와?""무슨 이야기할 거야?" 

호스트라고 하면 괜 시리 아이는 더 자랑스러워 했어요. 아이에게 호스트란 대장과 같은 위치 인가봐요. 

"응! 엄마 잘해! 화이팅!" 

줌 모임을 마치고 밤 늦게 침대로 가면 아이는 잠결에도 저를 찾았어요. 

"엄마 잘 끝났어?" 웅얼대면서 엄마를 응원해주는 아이를 꼭 안고 토닥거려주었죠. 


‘너 덕분에 엄마는 늘 잘하고 있어.’


아이에게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해주었어요. 

무슨 모임을 하는지, 오늘은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 엄마가 쓴 글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아이는 제 이야기 듣기를 좋아했어요. 생각만큼 사람들이 엄마 글에 반응이 없다고 하면 자기 일처럼 속상해했어요. 잘 되면 박수 치며 호응해주었어요. 이만한 응원단이 없네요. 

저도 더욱 신이 나서 하는 일에 대해, 앞으로 할 일에 대해 알려주기도 했답니다. 


어느 날이었어요. 길을 걸어가는데 아이가 갑자기 또 묻는 거 에요. 


"엄마는 글도 쓰고 사람들 이야기도 들어주면서 돈 버는 거야?" 


그동안 아이가 보는 제 모습이 한단계 업그레이드되었네요. 글만 쓰지 않고 이제는 사람들도 만나고 돈을 버는 엄마였어요. 

"응, 엄마는 글도 쓰고, 모임도 하고, 사람들 고민도 들어주고, 사람들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찾아줘. 그걸로 돈도 벌지. 그래서 너 맛있는 간식도 사주고 있잖아." 

이번엔 목소리에 힘이 가득 실렸어요. '엄마는 이런 일을 해' 또박또박 말해주었어요. 

아이가 활짝 웃네요. 

"와! 엄마 멋있어"! 


‘엄마도 엄마가 멋지다고 생각해.’ 

그 이후 직업을 적어야 할 때는 당당하게 쓴답니다. 


프. 리. 랜.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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