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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앤 Oct 14. 2022

하고싶은 일을 하면 세상 무서울 게 없어

생각만 많아지는 어느 날


"간에 혹이 하나 보이는데, 혹시 모르니 큰 병원가서 정밀검진을 해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2021년 1월 동네 병원 검진 결과, 드디어 올 것이 왔나 싶었어요. 

만성 b형간염 보균자로 약을 먹은 지 2년이 넘은 시점이었죠. 다행히 약에 잘 반응하고 있으니 괜찮다는 소견을 늘 들어왔어요. 혹이 보인 다니, 설마 악성종양이 보이는 건가 싶었어요. 

'아니야. 별일 없을 거야. 지금까지 큰일 생긴 적은 없었잖아.' 주치의 선생님을 다시 만나기까지 1주일의 시간이 걸렸어요. 그 동안 어떻게 마음을 다스렸는지도 기억이 안나요. 


"이 정도 소견으로 검사를 따로 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만성 간염 보균자이니 1%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겠네요. CT검사로 정확히 결과를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 빨리 확인하자며 당장 다음날 CT검사를 잡아 주셨어요. 질문을 채 하기도 전에 검사일정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죠.


'정말 나에게...?' 라는 생각이 잠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어요. 정말 '스쳐서' 지나가기만 했어요. 

이미 다른 생각들이 머릿속 지분을 상당부분 보유하고 있었기에 걱정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많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죠. 예전의 저라면 걱정의 꼬리가 길어지면서 시베리아 횡단도 너끈히 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걱정할 시간조차 없었어요. 


검진을 앞둔 시점, 처음으로 온라인 모임 진행을 코 앞에 두고 있었거든요. 

회사 퇴사 후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을 세상에 내놓은 시기였어요. 온라인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모임이었죠. 저에게는 무척 의미가 있었어요. 리더가 되어서 사람들과 함께하는 모임을 운영해보는 경험도 처음이었으니까요. 모집 공지는 이미 올렸고, 사람들도 다 모았고 당장 다음주부터 모임 시작이었어요. 

주말에는 줌으로 오리엔테이션도 해야 했죠. 설레며 준비 한 그 모든 시간을 놓아버릴 수는 없었어요. 병원을 나오는 데 비극적인 생각보다는 당장 모임 준비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가 생각났어요. 


'가만 보자, 오리엔테이션 준비는 얼추 끝냈고…그 다음주 일정은 이번 검사 결과보고 준비해보면 되겠다.'

혹여 최악의 결과가 나와서 '저 그동안 약 잘 챙겨 먹었는데 너무 억울해요.' 라며 

비련의 여주인공 영화를 찍고 있을 시간이 없었어요. 안 좋은 검사결과가 나온다 해도 

나의 '고객님'들을 위해 대처할 방법부터 세워야 했죠. 플랜 a와 플랜 b를 세웠어요. 

A: 추가 검사를 위해 입원을 하게 될 경우 B:안 좋은 결과가 나와서 당장 수술을 하게 될 경우.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플랜을 짜면서 스스로에게 놀랐죠. 

‘울며불며 청승맞게 지내고 있지 않네?’ 


신기했어요. 분명 걱정스러운 일인 것은 맞았어요. 파릇파릇 젊지도 않았고 혼자의 몸도 아니었으니까요. 

40대의 어린 아이가 있는 엄마였어요. 그럼에도 그 자리에 주저앉아 넋 놓고 있을 수는 없더라고요. 

해야 할 일, 하고 싶어서 저지른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이렇게 온라인 모임을 앞두고 모임 진행을 신경 쓰면서 검사 결과에 대한 걱정을 잠시라도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 

그래도 심장이 쿵쾅거리는 건 어쩔 수 없긴 했지만요.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에 가는 한 시간 반 동안 사실 긴장이 많이 되긴 했어요. 

그럴 때마다 일부러 오리엔테이션 준비를 했죠. 대기실에서도 일부러 다른 생각을 하려고 애썼어요. 


“환자분, 들어오세요.” 

진료실에 들어가서 교수님이 입을 여는 시간까지 모든 상황들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였죠. 


'단순 혈관종이네요. 간 위에 점 같은 게 생겼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검사 받느라 고생하셨어요.'    

'괜찮아요. 다음 검진에 봅시다.' 라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사방에서 꽃가루가 날리는 기분이었어요. 

‘그것 봐, 걱정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니까!!’ 

결과를 들으러 갈 때는 돌멩이가 가득 든 신발을 신은 느낌이었는데 나오는 발걸음에는 날개가 달리더라고요. 


병원 근처 유명한 베이커리 가게에 들러 큰 맘먹고 비싼 디저트를 골랐어요. 

'오늘은 파티 해야지. 검사 결과가 괜찮은 기념, 검사를 앞두고도 무서워하지 않은 용기가 생긴 기념으로.' 

그 날 먹은 케익은 머리 속까지 달콤하게 만들어 주었어요. 그 동안의 모든 걱정을 사르르 녹여주었죠. 


그러고 보니 늘 걱정하던 일은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어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생길 수도 있긴 하겠죠.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면 이겨내 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막연히 손 놓고 걱정하며 울고 있지 않고 바쁘게 지내면 걱정 따위가 저를 잠식해버릴 일은 없겠죠? 

그래서 더 바빠 지기로 결심했답니다.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많이 저지르며 살겠다고요. 


그러면 그 어떤 순간이 와도 행복하게 이겨낼 수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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