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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앤 Oct 14. 2022

가짜 00 명품 가방, 드디어 안녕!

언제 어디서나 당당해지고 싶다면

평생 명품가방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도대체 그 작은 가방 하나가 왜 수 백만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요. 

무엇보다 어디가 예쁜지 알 수가 없거든요. 맞아요, 보는 안목이 없어요. 

돈도 없는데 명품 욕심까지 있었으면 어쩔 뻔했나 몰라요. 안목 없음에 감사해야 하나 봅니다.


대학생 시절 과 친구가 명품 가방을 사기 위해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을 봤어요. 

그 당시 샤넬 가방이 3백만원대였어요. 한학기 학비였어요. 

마침내 그 가방을 사고 너무나 행복해했던 그 친구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때가 샤테크(샤넬가방은 사고 나면 나중에 재테크 수단이 된다는 뜻)의 적기였다, 그때 샤넬을 산 그 얘가 위너다.’라고 수익적인 면이 부럽긴 했지만 가방 자체로는 부럽진 않았어요.  


그러던 제가 딱 한 번 명품 가방 구매를 고민하게 된 날이 있었어요. 


바로 결혼을 준비하면서 였어요. 결혼 전에 꼭 명품 가방 하나는 사야 된다는 이야기를 거의 모든 선배들에게 들었어요. 결혼을 하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런 게 부부 사이에 중요하다는 조언보다는 명품가방 사라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네요. 

‘아니, 그 돈이 얼마인데 가방에 돈을 써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선배들의 눈빛이 너무 진지했기에 뭐라고 대꾸할 수가 없었어요. 왜 그렇게 사라고 했는지 지금은 알아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면 막상 나를 위해 돈 쓰는 게 쉽지 않기에 그토록 신신당부를 했다는 마음이요. 명품가방이 단순히 가방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나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는 의미였죠. 

그때는 이해를 못했어요.

그러면서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반복해서 듣다 보면 어느 새 그 말을 지켜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같은 게 막 생기더라고요? ‘그래, 하나 정도는 사도 괜찮지 않아?’ 라는 생각까지 하고 있지 뭐예요. 하지만 여전히 금액적인 부분이 망설여졌어요. 


그러다가 가짜 명품 가방 구입 정보를 듣게 되었죠. 

그냥 어느 가게에 가서든 흔하게 살 수 있는 가방이 아니라 정말 정품과 똑 같은 ‘특 A급’을 살 수 있다는 소식이었죠! 마음이 흔들렸어요. 정품 가방에 비해 저렴하지만 최대한 ‘짝퉁스럽지 않은’ 가방을 사다 주겠다는 지인의 말에 덜컥 하나 부탁하게 되었어요. 그날부터 열심히 명품 가방을 검색하게 되었어요. 


그 당시 인기있는 가방을 샅샅이 뒤져서 신상 모델을 겨우 찾아냈어요. 가방 하나 고르는 게 보고서 쓰는 거 마냥 어렵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네요. 몇 개의 모델 중 고심을 하다 간신히 골라서 사진을 보냈어요. 

“난 00브랜드로 할래.” 

다음날 요즘 잘나가는 모델이라고 사장님이 말씀하셨 대요. 잘 골랐다는 생각에 스스로 뿌듯했죠. 

지인이 제 가방을 샀다며 먼저 사진을 보내주었는데 어머, 이게 무슨 일인가요! 

짝퉁의 ‘ㅉ’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정품 사진에서 본 것과 똑같이 완벽하게 빛나는 명품이었어요! 

네, 저도 신상 명품 가방이 생겼다고요! 괜히 그때부터 어깨가 펴지는 기분이었어요. 


이후로 가짜 명품 가방을 당당히 들고 다녔어요. 


수백만원을 수십만원에 산 저의 현명한 선택에 스스로 칭찬하면서 말이죠. 누가 알아보겠냐고 생각했죠.

남들은 명품으로 알 텐데 말이예요. 남들이 다 아는 브랜드 가방을 멘 제 자신이 한단계 레벨 업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어요. 그 가방을 메고 다닌 날은 어딘가 고급스러워 보이기도 했죠. 왜 사람들이 명품을 드는 지 그 마음을 알 듯 했어요. 누군가가 알아봐주는 시선, 왠지 모르게 고급스러워 보이는 기분, 내 자신이 레벨업 된 것 같은 자신감. 명품 가방이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 훨씬 근사하게 포장해주더라고요. 포장되는 기분이 과히 나쁘지 않았어요. 그렇게 '짝퉁' 명품 가방은 저의 자신감을 높여주며 신혼 여행길에도 함께 동고동락했답니다. 


하지만 가방은 집구석에 모셔지게 되고 말았어요. 

명품보는 눈이 있는 회사 선배에게 그만 ‘딱’ 걸렸지 뭐예요. 저는 아무리 만져보고 정품 사진과 비교해 봐도 모르겠던데. 역시 명품을 들어본 사람들은 보는 눈이 다른 가봐요. 


“너, 이거 진짜 아니지? 그래도 꽤 정교하긴 하네.” 


그때 어떻게 답변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요. 너무너무 창피해서 ‘어버버’ 변명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명품 따위 안 메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어쩌자고 짝퉁을 사서 이런 창피함을 겪고 있는 걸까요.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이런거구나 싶었어요. 짝퉁을 들고 다니면서 있는 척했던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하더라고요. 그 날 퇴근해서 바로 장롱 깊숙하게 집어넣어 버렸답니다. 


아이를 낳고 ‘기저귀 가방’이 제 필수 아이템이 되면서 그 가방은 기억조차 나지 않았어요. 이후에 자기계발 공부를 하고 스터디를 다닐 때는 그저 가벼운 가방이 최고였어요. 노트북과 책을 들고 다녀야 하니 무거운 가죽가방은 꿈또 꿀 수 없었죠. 그래도 전혀 불편함도 없었어요. 묵직한 가방을 들고 다니던 저는 명품없는 초라한 사람이 아닌 꿈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사람이었으니까요.


10여년이 지난 어느 날, 옷장정리를 하면서 그 가방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죠. 

꽁꽁 천에 싸져 있던 저의 첫 명품, 아니 가짜 가방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어요. 

오랜만에 가방을 다시 보니 피식 헛웃음이 나오네요. 이게 뭐라고 그렇게 공들여서 고르고 샀을까요. 

이 가방을 메고 ‘척’ 했던 제 모습도 생각나고요. 순간 혼자 집에 있는데도 볼이 빨개지네요. 


이사 다니면서도 왜 이 가방을 못 버렸는지 모르겠어요. 다시 가방 멜 생각을 은연 중에 했던 것일까요? 

제가 정신차리지 않았다면 가방의 먼지를 털고 다시 그럴싸한 표정을 지으며 메고 다녔을지도 모르겠어요. 

회사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누가 제 옆에 와서 가방 하나하나 자세히 뜯어보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을테니까요. 다시 있어보이는 척하는 저로 돌아갔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결심했답니다. 미련없이 버리겠다고 말이죠. 이미 저에게 어울리는 가방이 무엇인지 이제는 알게 되었으니 더 이상의 미련도 없었어요. 


다음 날 과감하게 쓰레기장에 버렸어요. 순간 가방이 당황하며 저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어요. 


“아니, 이봐!! 나 사면서 좋아했잖아! 왜 버리는 거야!”    
‘미안해. 이제는 '짝퉁'으로 나를 감춘 채 살지 않으려고! 안녕!’ 


쿨하게 가방과 이별을 했어요. 아니, ‘척’ 했던 저의 모습과 헤어져 봅니다. 


얼마나 속이 후련했는지 몰라요. 

가짜 가방이었지만 제 생애 제일 비싸게 주고 산 가방인지라 버리려고 하니 돈이 좀 아깝긴 했지만요. 

두 번 다시 가짜는 안 살 거예요. 아니, 그렇다고 진짜 명품을 사겠다고 다짐한 건 아니고요. 

있어 보이는 척을 버리기로, 다른 사람흉내내는 행동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거죠. 있는 그대로의 나도 충분히 괜찮음을 인정해주기로 했어요. 비싼 가방 하나 들었다고 해서 내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명품 로고가 박힌 가방보다는 가볍고 편한 가방이 어울리고 또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이제는 인정하게 되었어요. 

가방이 나를 당당하게 만든다면 가방 없는 나는 얼마나 초라해 보이겠어요? 무엇을 들든 세상 당당한 제가 되기로 했습니다. 가짜 가방을 버린 날, 두 손 가볍게 에코백을 들고 집을 나서 봅니다. 


에코백 든 제 모습이 그다지 이상해 보이지도 않네요! 마음도 손도 깃털처럼 가벼운 날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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