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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학기증후군이 내게 남긴 것

낯가림 주의

by 나야 Mar 07. 2025

새학기증후군 : 새학기가 시작되면 학생들이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안을 느끼거나 힘들어하는 증상을 통틀어 이르는 말.      




이번 주말 전국의 학생들은 당당하게 늦잠 잘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낯선 교실에서 신경이 곤두선 채로 한 주를 보냈을 테니.                   

  

"엄만 좋겠다, 반 배정 안 받아서."                     


아니나 다를까 중학생 딸아이도 이런 말을 했다. 쉬는 시간에 얘기 나눌 사람이 없어 뻘쭘하고, 눈치게임도 지쳤으며 속마음을 빙빙 돌려 말하기도 갑갑하다고.


시간나면 학원숙제를 하는 편인데 이번 주는 아예 가져가지도 않았다고 한다. 혹시 누가 말을 걸지 몰라서. 혹은 내가 말을 걸만한 기회인지 수시로 엿봐야 하니까. 밀린 학원 숙제보다 새 친구를 사귀는 게 더 중요한 기간이니까. 그랬건만 별 소득이 없었는지 연습장에 낙서만 죽죽 해대면서 말했다.


"아, 새로 사람 만나는 거 너무 싫어!"                     


춘삼월의 성 바이러스, 새학기 증후군이 돌아왔다. 각설이나 좀비처럼 죽지도 않고. 그러고 보니 동서양은 물론 시공마저 사뿐히 뛰어넘었다. 단지 학교가 배경이라 '새학기'라는 말이 붙었을 뿐,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는 모든 처음에 유사한 숙주가 존재하므로.


나중에 사회에 나가면 덤덤해지라고 학교에서 미리 예방주사 맞는 건가? 그렇다기엔 도무지 면역생성되지 않는다. 적응도 되지 않는다. 누구든 이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심신이 매우 고달파지며 입맛이 떨어지고 밤잠을 설치게 된다. 그럼에도 약이 없다. 답도 없다.


한때 나도 그랬다. 새학기 증후군에 시달리다 터지기 직전이었다. 부디 동아줄을 내려달라고 간절히 염원했다. 그리고 마침내 봄을 맞았다. 꽃샘추위가 유난스러웠던 30여 년 전, 3월의 이야기다.




**고등학교 1학년 7반 교실 앞에서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머리카락을 귀뒤로 넘기며 후우, 숨을 길게 뱉어 본다. 문을 열었을 때 아는 얼굴이 한 명이라도 보이길, 드르륵!


하지만 교실엔 낯선 공기가 자욱했다. 중학교에서 이 학교로 같이 배치받은 아이들이 꽤 된다고 들었는데 이상하게 우리 반엔 한 명도 없었다. 엉거주춤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아직 친해지기 전 단계, 아이들은 탐색전이 한창이었다. 쭈뼛거리며 대화를 시도했다. 코드가 맞는지는 몇 마디만 나눠봐도 알 수 있었다. 우린 그런 나이였다. 적어도 110 볼트, 220 볼트 정도는 금방 구분할 수 있는. 


한 무리에서 까르르 웃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신경이 쓰였지만 괜찮았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다스려야 해. 조바심 내지 말자. 이 낯선 기류는 안개라고 생각해. 시간이 지나면 걷히는 거야.'


그때 드르륵, 교실 문이 열렸다. 출석부를 든 담임 선생님의 등장은 곧이어 벌어질 사태(?)의 예고편. 선생님은 칠판에 이름 석자를 크게 쓰고 앞으로 잘 지내보자며 인사를 건네셨다. 나의 새학기 증후군 본편의 막이 올랐다.

          



"집에 냉장고 있는 사람?"

새학기마다 어김없이 실시된 가정환경 조사. 당시엔 설문조사 용지를 따로 나눠주지도 않았다. 즉문즉손. 선생님이 질문하면 해당되는 사람은 곧바로 손을 들어야 했다. 냉장고 다음으로 텔레비전, 세탁기도 물었던 것 같다. 집이 전세인지 자가인지, 자가용이 있는지 없는지도. 생판 초면에 집안 형편부터 까고 시작했다. 사춘기 소녀들의 프라이버시를 여지없이 깔아뭉개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우린 중학교를 졸업한 짬이 있었고, 물질적인 조건 따위에 꿀리지 않을, 치기 어린 마음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얼굴이 화끈거리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특히 이 대목.


"부모님 중 한 분이 안 계신 사람?"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졌다. 교실의 모든 불빛이 꺼진 속에서, 동급생들의 눈빛이 조명처럼 나를 따라오는 것 같았다. 동네 아이들과 볼록렌즈로 햇빛을 모아 종이에 불 붙이던 장면이 불현듯 떠올랐다. 내 심장에도 불이 붙은 건가. 입안이 바싹 말라갔다.


순식간에 교실이 조용해졌다. 시계초침 소리가 크게 들렸다. 17살 소녀들은 웃음기를 거둬들였다.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이런 상황이 오면 최소한 눈이라도 마주치지 말자,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이.


더 어릴 땐 사실 더 직설적인 표현도 들어봤다. '아빠 없는 사람, 엄마 없는 사람?' 설마 별 일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을까?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이니 가볍게 받아넘기라는? 해마다 듣다 보니 이번에도 올 게 또 왔구나 싶긴 했다. 하지만 몇 번을 반복청취해도 덤덤해지지 않았다. 나는 팔을 반쯤 들어올렸다. 손바닥이 하얗게 노기를 띠고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아빠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그리고 고등학교 1년까지 도합 10년을 내리 새 학기마다 같은 질문, 같은 구간에 손을 들어야 했다.


10번쯤 반복하다 보니 화르르 분노가 타올랐다. 대체 이런 조사를 왜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부모님 중 한 분이 일찍 돌아가셨다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닌 줄은 안다. 억지로 숨기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을 때, 말하고 싶었다. 초면의 동급생들 앞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때문에 나는 3월 초순의 부푼 공기가 불편했다. 어쩌면 아이들은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다. 누구 집에 냉장고가 있든 말든. 친척도 아닌 남의 부모님 생사여부를 누가 기억이나 한다고.


그러나 손을 드는 입장에선 새학기 시작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동일한 출발선에서 박수받기는커녕 내 발목에만 납덩이가 매달린 심정이랄까.

          




그리고 1년 뒤, 봄방학이었다. 곧 2학년이 될 텐데 또 그 멍청한 호구조사에 손을 들어야 한다 생각하니 벌써부터 입맛이 떨어졌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진짜 없을까? 되든 말든 뭐라도 해보고 나면 덜 억울할 것 같았다.


우선 이 멍청한 호구조사를 멈출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했다. 학교에서 가장 힘이 센, 그분이 떠올랐다. 운동장 조회 시간에 먼발치에서 바라본 그분께 편지를 쓰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교장 선생님.     

저는 1학년 7반에 재학 중인 나야입니다.      

이렇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2학년에 올라가기 전에

꼭 드릴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건 바로 매년 새 학기 가정환경 조사를

멈춰주셨으면 하는 겁니다.      

특히 아빠 없는 사람, 엄마 없는 사람      

부모님에 대해

공개적으로 손을 들라고 하는 것은     

민감한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크나큰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새 학기만 되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학교 가기 싫어집니다. 

실제 가정환경 관련 내용이 궁금하시면

학생들에게 개인적으로 물어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1학년 7반 나야 올림.




편지를 쓰면서도 마음은 반반이었다. 교장 선생님이 읽어주실까? 화를 내시면 어떡하지? 교무실에 불려 가는 거 아냐?


어느 보다 가슴 떨리는 3월이 밝아왔다. 새학기 첫날 2학년 교실 문을 열었다. 여전히 낯선 분위기. 담임 선생님이 출석부를 들고 오셨고, 칠판에 이름 석자를 크게 쓰셨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는 인사도 작년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럼 그 멍청한 호구조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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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졌다!!!       


혹시 오늘인가? 아님 내일? 모레? 긴장으로 한 주를 보냈지만 공개적인 호구조사 따위는 하지 않았다. 다음 주가 되고 3월이 가고 다음 해 3학년이 되어서도 우리 학교에서 그런 조사는 영영 사라졌다.


세상이 달리 보였다. 아침 조회시간에 울려 퍼지는 마이크 에코소리가 이렇게 경쾌했나?심지어 수업 종소리마저 해맑았네? 학교 가는 발걸음이 하늘을 날았다.


어린 학생의 섣부른 제안을 흔쾌히 받아주신 교장 선생님이 큰 산처럼 느껴졌다. 그 편지와 관련해서 학교의 그 어떤 어른도 내게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학교가 좋아지긴 처음이었다.

   




그 봄의 편지는 매사에 자신 없던 내게 추진체를 달아주었다. 하고 싶은 걸 도전하고 시도해 볼 수 있는 구름판이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진심을 담은 글은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덕분에 30여 년이 지난 지금 브런치에 글을 쓸 용기도 피어났다.


봄이 또 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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