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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까치와 나

과유불급 주의

by 나야 Mar 14. 2025

주말 오후, 남편과 산책에 나섰다.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던 중학생 딸아이도 고 나왔다. 그나마 미적미적 못 이기는 척 끌려와 줘서 다행이었, 대학생 아들은 미동도 없었다, 아무튼.


올해도 봄은 다산이었다. 나뭇가지의 새순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콩알만 한 주먹을 움켜쥔 것이, 생후 일주일쯤 됐을까. 영락없는 신생아 이미지였다. 그 사이를 바람이 살랑거렸다. 어린 생명들을 어르고 달래듯이.


봄마중에 걸음이 느려졌다. '가다, 서다, 보다'를 반복했다. 그공중에서 다급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까각, 깍, 깍, 까각, 깍!'

 

까치 두 마리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울고 었다. 흔히 보는 새지만 그날은 왠지 긴박해 보였다. 한 나무 주위를 뱅글뱅글 맴돌면서 집요하게 짖어댔다. 왜 저러나?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봤다. 키 큰 나무 끝자락에 시커먼 비닐봉지가 걸려 있었다.


평소 강아지가 바람에 날리는 비닐봉지에 놀라 컹컹대는 걸 자주 봐왔다. 시커멓게 부푼 것이 떠다니는 모양새가 무섭게 보일 수도 있겠지. 그런데 바람이 잠잠한데도 검은 비닐봉지가 꿈틀, 거렸다. 살아 움직였다. 다시 한번 뚫어져라 비닐봉지를 올려다봤다. 그것은 비닐봉지가 아니었다. 검은 고양이였다.




휘청이는 가지 끝에 시커먼 고양이가 달려있었다. 돋아나던 새순이 기겁할 일이었다. 나무 높이가 어림잡아 4~5미터 정도? 고양이는 몸집이 60센티미터 정도는 돼보였다. 더 컸으면 컸지, 작아 보이진 않았다. 저 육중한 몸으로 저길 올라갔다고? 사다리나 계단, 하다못해 짚고 올라갈 벽도 하나 없었다. 나무 타기 달인 내지는 인간문화재 등록이 시급해 보였다.


가지 끝의 고양이와 울부짖는 까치들로 하늘이 벅적거렸다. 생경한 장면에 지나가던 사람들도 하나, 둘 걸음을 멈추었다. 그 속에서 우리도 목을 빼고 공중을 올려다봤다. 진지한 관전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고양이가 걱정됐다. 대체 어떻게 올라갔는지 몰라도 엉거주춤 매달려 있는 모습이 딱하고 안쓰러웠다. 사다리라도 놔줘야 되나?


근데 자세히 보니 까치둥지가 가까이 있었다. 그제야 짐작이 갔다. 고양이가 까치집을 노리고 무리해서 올라갔다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거였네. 욕심이 배밖으로 나와서 날뛰다 된통 걸린 케이스.


제 딴에는 올라만 가면 끝이라 생각했겠지. 눈앞에서 알짱대는 까치들 쯤이야 '한입거리'라고, 싹 다 잡아먹을 줄 알았겠지. 그러나 잘못 짚었다. 고양이가 아무리 날카로운 발톱을 디밀어도 까치가 훌쩍 날아가버리면, 그땐 진짜 게임 끝이었다. 날개는 장식이 아니란다.


까치들의 울부짖음이 계속되었다. 절박한 심정이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론 궁금했다. 고양이가 나무 위까지 치고 올라왔을 때 까치는 왜 주위를 계속 맴돌았을까? 더럽다, 퉤퉤 하고 훌쩍 날아가버리면 그만인 것을.


"동네 사람들, 여기 욕심쟁이가 벌벌 떨고 있는 꼴 좀 봐요!"

어쩌면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님 다른 까치들에게 '비상, 비상!' 접근 금지령을 내리는 거였나. 뭐가 됐든 저 시커먼 욕망 덩어리한테 밀리긴 싫었을 것이다. 난데없는 불청객 고양이 등쌀에 방을 야 할 판이니. '깍, 깍, 깍'은 영역을 침범당한 자의 울분에 찬 사자후였을지 모른다. 번역하면 육두문자가 떴을 수도 있다.


극한의 대치상황. 고양이는 겁에 질린 건지, 뻔뻔한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정지동작을 유지다. 까치들도 까칠한 경고방송을 속사포로 날렸다. 그들 중 누구도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10분쯤 지나자 사람들이 먼저 발길을 돌렸다. 우리도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선 한동안 까치가 날아다녔다.




만약 저들의 세계에도 갑을관계가 있다면 고양이는 갑, 까치는 을이 아닐까. 생태계엔 엄연한 먹이사슬이 존재하고, 까치보다는 고양이가 상위 포식자니까. 생존경쟁에서 밀리는 쪽이 을이니까.


'갑질 고양이' 때문에 '을까치'당장 이삿짐을 싸야 할 처지였다. 새로운 나무를 물색해야 했다. 그게 뭐 대수냐고? 물론 그렇게  수도 있다. 이 나무나 저 나무나, 바람에 흔들리긴 매일반이었다.


그럼에도 까치가 유독 한 나무를 맴도는 모습이 내 마음을 건드렸다.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어쩌면 까치는 그 나무에서 신혼살림을 차리고 알을 낳았을 것이다. 수없이 들락거리며 먹이를 구했을 것이고, 입이 찢어지도록 받아먹는 어린것들을 흐뭇하게 바라봤을 것이다. 내일의 비행을 꿈꾸며 잠이 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각별하고 아늑한 '한 그루'였을 것이다.




자리를 맴도는 까치에게 덜컥 감정이입이 된 또 다른 이유는, 나의 현실이 보였기 때문이다. 일터에서 갑을관계로 치환하면 나는 을이고 회사는 갑. 힘센 갑과 일하면서 치사하고 불편한 일도 더러 겪었다. 하지만 나는 오래 자리를 지켰다. 그동안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수시로 떠나갔다.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어느 순간이 되자, 떠나지 않으면 낙오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한 자리에서 오래 일한 것이 더 이상 자부심이 아닌 시대가 온  같아 씁쓸할 때도 있었다.


어떤 이가 내게 물었다. 당신은 왜 남아 있냐고. 더 큰 세상에 가야 일감도 많고 돈도 많이 버는데. 그때마다 스스로 용기 없음을 자책하기도 했다. 능력이 없어서 못가나, 위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꿈을 꾸고 젊은 날을 보냈다. 가정을 꾸리고 엄마가 되었다. 비가 오고 바람도 불었다. 언 강물이 풀리고 무지개가 뜨기도 했다. 좋은 날도, 괴로운 날도 있었다. 그래도 묵묵히 뿌리를 내렸다. 땅속 깊숙이, 닿을 수 있는 최대한.




여기 나의 소중한 일이 있고, 아름다운 일상이 있다. 사랑하는 가족과 추억과 젊음이 있다. 지금 나는 경계 없는 하늘을 힘껏 날아오르는 중이다. 굳건한 두 날개를 활짝 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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