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움을 대하는 태도
마음이 가난한 밤도 있고 마음이 가난한 날도 있다.
그럴 때면, 사람들의 미소가 달갑지 않다. 마치 행복이라는 행성에 나만 우울과 고민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외톨이가 되어버린다. 누군가의 말 한디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 이번에 여행 질렀어. "
" 어디가는데? "
" 가까운데 가서 좀 쉬다 올려고, 일본. "
" 일본 요즘에 엔화 떨어졌어도 물가 엄청 올랐다던데. "
부러우면 지는 거다. 듣고 싶어하는 말은 해주고 싶지 않다. 결국, 설레임과 두근거림이 가득한 눈을 정면으로 보지는 못한 채, 삐죽삐죽 못난 말들이 새어나온다. 나의 허전함과 상대적 박탈감을 충고와 조언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치장해서 뱉어낸다.
참 못났다.
그 사람이 내 행복을 뺏아간 것도 아닌데. 내가 뭘 빼앗긴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할까. 나는 왜 진심으로 부러워해주지 못할까. 다른 이의 성공과 행복을 축하해준다는 것이 내가 못났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축하해준다고 나의 행복을 빼앗기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지금 나에게 없는 것들,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들이 그 사람에게 가득한 것 같아 질투해서이겠지. 내 감정의 출입구에는 질투와 시기의 흔적이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그 흔적을 보고 비슷한 애들만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그들의 핫스팟이 되어버린 것이다.
진짜 참 못났다.
그래서, 잘나보기로 했다.
" 가까운데 가서 좀 쉬다 올려고, 일본. "
" 아 진짜? 그래 잘 됐네. 간 김에 푹 쉬고 오면 되겠다. 일본에 맛있는 것도 많은데 제대로 힐링되겠다 ~ "
까짓거 부러워해주자. 축복해주자.
내가 세상을 향해 건넨 감정은 언젠가 부메랑이 되어, 때로는 배가 되어 돌아온다. 시기와 질투를 보낼 때도 있겠지만 축하와 사랑의 감정을 더 많이 보내보자. 내 감정의 출입구에 내가 받고 싶어하는 감정들로 가득채워보자. 내가 필요할 때는 언제든 불러 함께 할 수 있도록. 우리, 축하해주지 못하면서 축하받기를 바라는 어린이가 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