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 앤
" 아주머니, 저 오늘 새로 아주 좋은 것을 배웠어요. 이 집에 온 뒤부터 실수만 거듭했는데, 그때마다 저의 결점이 나아졌어요. 오늘의 실패는 제가 너무 낭만적이라는 단점을 고쳐주었어요. "
분명히 초록잎의 나무를 보고 있는데 그 싱그러움이 느껴지지 않을 때면, 빨간색 표지의 책을 편다. 그 속에는 반짝이는 두 눈을 하고 낭만을 먹고 사는 소녀, 빨강머리 앤이 기다리고 있다. 초록지붕 집에서 살아가는 그녀는 소녀이지만 어른 같고, 말괄량이인 것 같지만 음유시인같다.
햇빛을 받으면 다른 색을 빛내는 빨강머리는 늘 그녀의 컴플렉스였다. 결국, 그것을 건드린 길버트는 석판으로 앤에게 머리를 맞아야했다. 깊은 생채기가 그녀의 마음을 휘갈겼고 앤은 그를 삶에서 완전히 밀어냈다. 그래도 낭만이 가득한 그녀의 삶에 그는 필요했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앤을 길버트가 구해주었고 갑작스러운 양부의 사망으로 고향에서 직장을 구해야했던 앤은 그의 희생과 양보로 학교선생님으로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다.
" 나는 길버트를 용서하지 못해. " 씩씩거리며 옹골차게 외쳤던 그 다짐은 실패로 돌아갔다.
잘생기고 멋있는 백마탄 왕자님이 아닌 웬수가 와서 죽을 위기의 나를 구해주었다.
자존심에 고맙단 말 한마디도 차갑고 도도하게 던지듯 내뱉었지만 그는 나를 위해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했다.
그 과정에 낭만이 넘쳐흐른다. 그래서 그 결과인 실패도 낭만적이다.
실패를 실패라고 단정짓기에는 아직 우리에게 일어날 낭만이 너무나도 많다. 살아가는 것도 버거운 세상에 무슨 얼어죽을 낭만이냐고 혀를 찰 수도 있지만 빨강머리 앤에게 물어보라. 태어나서 얼마 되지도 않아 부모를 여의고 초등학생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3번이나 이 집 저 집에 파양되며 모진 식모살이를 했다. 본인의 선택도 아닌 빨강색머리로 처음보는 사람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놀림을 받아 마음 속 상처도 많다. 그런 그녀가 우리에게 말해준다.
" 아, 야망을 품는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야.
이렇게 많은 꿈이 있어서 정말 행복해. 야망에는 결코 끝이 없는 것 같아.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는 건가 봐. "
낭만을 찾는 사람에겐, 계속 낭만이 찾아온다. 그러니 우린 최선을 다해 낭만을 즐겨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