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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Karl Jul 09. 2021

에필로그epilogue

영국에서 보낸 700일의 이야기

1.

언젠가 떠나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내는 외국에서 몇 년 살아보겠다는 오래된 소망이 있었다. 두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회사의 유학 프로그램에 지원하고,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어느 날엔가 충분한 영어 점수를 받았다는 말을 들었고, 몇 달 후에는 최종 합격했다며 작은 세리머니도 했었다. 그럼에도 나는 나도 함께 떠난다는 사실을 피부로 감지하지는 못했다. 

 

나는 너무 바빴다. 아내가 오래된 소망을 현실에서 성취해 나가는 동안에도 나는 일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었다. 브리프를 쓰고, 시안을 팔고, 촬영을 하고, 온에어를 시키고, 기획서를 만들고, 경쟁 PT에 참가하는 바쁜 광고인의 삶을 살았다. 이런 일상 밖의 세상과 곧 대면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여유를 갖지 못했던 것이다. 

 

어쩌면 외면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광고인으로 한창 성장하던 시기에 필드를 떠나야 한다는 것을 마뜩잖게 여겼을 수도, 아이들과 함께 아내를 따라 2년의 시간을 외국에서 보낸다는 것에 존재론적 회의를 느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거부할 수 없었다. 아내가 만든 오래된 소망이라는 퍼즐 속에 나는 중요한 한 조각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2.

요크에 도착한 날, 비가 내리고 있었다. 리즈 공항에서 우리를 픽업한 차량이 영국의 우리 집 앞에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YO10 5HZ, Eastfield Cres, York, UK. 차고 앞에는 이케아에서 주문한 침대 세트가 주인보다 먼저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블 하나와 싱글 두 개를 조립하고 침대에 누우니 새벽 3시가 넘었다. 

 

첫날만큼이나 정신없는 영국에서의 일상이 이어졌다. 한국에서는 뻔한 일들이 요크에서는 모두 도전이었다. 자동차를 구입하고, 전화와 인터넷을 연결하고, 전기와 수도를 신청하는 모든 것이 사건 아니면 사고였다. 하루는 영국의 멍청한 행정서비스를 헐뜯었고, 다음날은 영국 사람들의 대책 없는 느긋함을 비난했었다.

 

인터넷 연결에 한 달이 걸렸다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애초부터 영국이라는 나라에는 서비스라는 단어가 없었던 것 같았다. 영국에서 뭔가를 하려면 뭔가를 하려는 사람 스스로 시간과 노력과 인내를 쏟아야 한다는 영국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을 조금씩 깨닫던 중이었다. 어쩌면 영국에서 한국의 상식을 적용하려 했던 것 자체가 바보 같고 한심한 발상이었는지도 모른다. 

 

3.

준하와 준서, 두 아들들은 9월부터 영국의 공립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Badger Hill Primary School은 집에서 1분 거리에 있었다. 아내의 요크 대학York University 학기도 그즈음 시작되었다. 내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가 생겼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일이었다. 영국의 초등학교는 부모나 다른 어른이 가지 않으면 아이들을 학교에서 내어주지 않았다. 

 

수업은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 15분까지 이어졌다. 변변치 못한 영어 실력으로 영국 아이들 속에서 영국 선생님과 생활한다는 것 자체가 여간 고역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첫째는 좀 나은 편이었다. 원어민 학원을 한국에서 조금은 경험했었다. 반면 둘째는 영어에 관한 한 순백에 가까웠다. 알파벳 정도만 겨우 아는 실력으로 그 상황에 던져졌다. 

 

처음 준서는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었다. 유쾌, 발랄, 명랑하던 준서의 말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한 달, 두 달,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준서의 영어 습득력은 놀랍게 향상되었다. 첫 학기를 마칠 즈음에는 40~50% 정도는 선생님 말을 알아듣는다며 크게 웃었었다. 그 이면에 얼마나 안간힘을 썼을까? 하는 생각에 대견하면서도 안타까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4.

영국은 3학기제다. 9월에 학기를 시작하고, 1월과 4월에 중간 학기가 열린다. 학기와 학기 사이에는 방학이 있다. 그리고 매 학기 중간마다 1주일 정도의 짧은 방학이 추가된다. 이를 하프 텀Half Term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영국의 아이들은 해마다 3번의 방학과 3번의 하프 텀을 즐긴다. 그리고 그 기간을 준비하는 것이 나의 두 번째 가장 중요한 미션이 되었다.

 

방학은 우리 가족에게 작전타임 같은 시간이었다. 생경한 일상을 초인적인 힘으로 건설해 나간 우리 모두가 잠깐 숨을 고르고 재충전하는 일상의 쉼표 같은 의미였기 때문이다. 긴 방학은 영국을 벗어나 유럽 대륙으로, 짧은 방학은 영국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연휴가 생기거나 주말에는 요크 인근을 여행했다. 

 

여행자가 아닌 생활자로서의 여행은 많은 것이 달랐다. 이전 여행이 유명 관광지에 점을 찍고 다니는 것이었다면, 영국에서의 여행은 모든 곳을 선으로 연결하고 있었다. 가령 최근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참석한 G7 정상회의가 열린 콘월Cornwall을 여행할 때는 콘월로 가고 오는 길에 들린 브리스톨과 바스와 에덴프로젝트가 자연스레 연결되는 식이었다. 

 

5. 

영국에서의 여행을 갈무리해보니, 크고 작은 여행을 여덟 번 정도 했다. 맨체스터와 리버풀을 중심으로 하는 중서부 여행, 도버에서 배로 프랑스를 여행하고 런던과 버밍엄을 둘러본 여행, 스카보로와 휫비가 있는 요크셔 북동쪽 여행, 뉴캐슬과 선더랜드에 걸친 잉글랜드 북동쪽 여행, 피터 래빗이 탄생한 레이크 디스트릭트로의 여행, 영국의 땅끝 콘월 여행, 영국의 최고봉 스노우돈 산이 있는 웨일스 여행, 마지막 여행이 된 스코틀랜드 여행까지 영국 전역을 샅샅이 열심히도 여행했다. 짧게는 3일, 길게는 보름이 넘는 경우도 있었다.

 

눈으로 확인한 영국은 내 관념 속의 영국과 너무 달랐다. 나는 런던이 곧 영국이라는 이상한 신화에 사로잡혀 있었다. 여행은 그 신화를 여지없이 깨뜨리는 망치 같았다. 여행의 장소가 늘어갈수록 여행의 시간이 쌓일수록 영국이라는 이미지는 새로워지고 거대해졌다. 어떤 의미에서 런던은 가장 영국적이지 않은 영국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브런치북은 영국에서의 두 번째 여행을 담았다. 나는 크리스마스를 파리에서 보내고 싶다는 막연한 로망이 있었다. 딱히 뭔가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그 공간에 있고 싶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파리에서, 연말을 런던에서 보냈다. 그 여정에서 선으로 이어지는 캠브리지와 도버, 버밍엄 등의 도시들을 훑었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이전에 영국에서 보낸 700여 일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기록을 이렇게 펼칠 수 있다는 것에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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