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8월의 에딘버러, 프린지의 에딘버러는 숙박대란이다. 전세계가 여기를 찾는 까닭이다. 방 잡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래서 며칠을 마음 놓고 지낼 곳은 더더욱 찾기 어렵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애보츠 하우스에서 이틀을 보내고 숙소를 옮기는 신세가 되었다. 두번째 숙소는 훌리루드 궁전 뒤 훌리루드 공원 너머에 있는 Premier Inn Edinburgh East다. 프리미어 인은 영국을 대표하는 대중적인 호텔이다.
어제 유난히 긴 하루를 보낸 탓에 늦은 아침을 먹는다. 정오 언저리쯤 길을 나선다. 늦은 밤 지나온 훌리루드 공원을 달린다. 어제는 칠흑같은 어둠에 잠긴 적막한 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빛나는 햇살이 아름다움을 깨웠다. 공원길은 공작의 길Duke’s Walk로 시작해서 여왕의 길Queen’s Dr로 이어진다. 품위가 흐르는 멋진 길이다. 한적한 호수와 드넓은 평원, 굽이치는 구릉이 장관을 이룬다. 그 속을 산책하고 운동하는 사람들을 본다. 여행자 시선에서 저런 호사가 너무 부럽다.
여왕의 길 끝에 차를 세운다. 훌리루드 궁전과 가장 가까운 공원 주차장이다. 공원에서 시작된 구릉이 굽이쳐 저기 북쪽 끝 바위지대까지 닿는다. 솔즈버리 크래그Salisbury Crags다. 땅 속 암석이 수직으로 솟아올라 마치 도약대처럼 하늘을 향해 길게 뻗어 있다. 바위지대는 주로 백운암과 현무암이다. 육각 기둥 형태의 주상절리가 멀리서도 선명하다.
솔즈버리 크래그는 약 3억년 전 화산활동으로 생겨났다. 화산이 폭발할 때, 일부 용암은 지표 위로 분출되지 못하고 땅속에서 그대로 굳는다. 가끔 그것들이 빙하 작용으로 들어올려진다. 수직으로 솟은 주상절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칼튼 힐도 캐슬 록도 솔즈버리 크래그와 같은 원리로 형성된 것들이다. 요컨데, 에딘버러는 3억4천만년 전 화산폭발과 그 이후 빙하기를 겪으며 만들어진 구릉 위에 세워진 도시다.
2.
훌리루드 궁전을 향한다. 왕의 저택임을 알려주는 황금 철문을 지나 정문을 찾아 또 걷는다. 궁전 건너편 국회의사당이 멋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거의 동시에 The Queen’s Gallery가 적힌 황금색 간판을 발견한다. 일단 궁전이 먼저다. 여왕의 갤러리로 걸음을 재촉한다.
유리문 손잡이가 독특하다. 인간 군상들 모습이 조각된 동판을 민다. 스코틀랜드 전통 의상에서 착안한 것이 분명한 독특한 유니폼을 입은 여성이 우리를 맞는다. 그녀가 건네는 가이드 이어폰을 받아 들고, 갤러리가 있는 2층을 오른다. 나무 계단이 예술 그 자체다. 우리가 이용해도 되는 계단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뒷꿈치가 저절로 들린다.
여왕의 갤러리는 18~19세기 스코틀랜드 작가 그림들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왕과 관련한 뻔한 것들이 아니라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술래잡기하는 어른들 그림은 아주 코믹하다. 벽에 바짝 붙어 술래를 피하고야 말겠다는 한 남자의 집념이 그림에 고스란히 담겼다. 크림 전쟁에서 돌아온 가장을 맞는 아내와 딸 그림은 숙연하다. 비록 부상을 입었지만, 그래도 살아 돌아왔다는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묘사한 솜씨가 절묘하다. 제목이 집Home, 부제는 The Return from the Crimea이다.
1824년의 로열 마일을 그린 그림도 인상적이다. 더허브 자리에서 로열 마일을 내려다보는 구도다. 어제 본 모습과 거의 유사하다. 지금은 사라진 눈에 띄는 건물 하나가 보인다. 하이 스트리트에서 Lawn Market으로 내려가는 길 모퉁이에 있는 5층 건물이다. 아래에서 위로 점점 커지는 전형적인 중세 건물이다. 설명에 따르면, 치즈와 버터를 만들던 이 14세기 건물은 1822년에 철거되었다. 아마도 게으른 작가가 밑그림을 그리고 몇 년을 그냥 보낸 모양이다.
갤러리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거대한 시계다. 1800년대에 만들었다는 시계는 2미터가 넘는다. 시간은 물론 음력과 조수까지 알려준다. 음악도 나온다. 시계는 요크 공작의 결혼식 선물로 제작되었다. 당시 요크 공작은 나중에 조지 5세가 되는 인물이다. 현재 영국 왕가인 윈저 왕조의 창시자다. 그리고 얼마전 타계한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할아버지다. 당시 과학 기술의 총아를 담은 시계의 주인답다.
3.
여왕의 갤러리를 나가는 문은 홀리루드 궁전으로 들어서는 문이기도 하다. 말끔한 정원 한가운데 화려한 먼저 존재감을 드러낸다. 궁전은 분수 너머에 근엄하게 자리를 잡았다. 좌우 균형이 잘 잡힌 잘생긴 건축물이다. 궁전으로 가는 길은 조각상들이 도열해 있다. 세월이 묻어 깊이가 있다. 훌리루드 궁전은 16세기 초부터 스코틀랜드 궁전으로 사용했다. 지금은 여름 별장으로 자주 쓰인다.
내부는 화려하다. 거대한 초상화와 태피스트리(여러 가지 색실로 그림을 짜넣은 직물, 또는 그런 직물을 제작하는 기술)가 하얀 벽면을 가득 채웠다. 중간중간 놓인 오래된 골동품들은 덤이다. 궁전 안은 정원에 있던 조각상에 쌓인 시간들을 펼친 것처럼 볼거리가 풍성하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정원에서 잠깐 숨을 고른다. 사각형 건물 가운데 하늘이 뚫린 콰드랭글quadrangle이다. 시원한 바깥 공기를 들이킨다.
홀리루드 궁전에서 가장 특별한 곳, Great Gallery로 향한다. 하얀 천정과 붉은 카펫, 티파니 블루 벽면이 위엄을 뽐낸다. 복도식으로 길게 뻗은 공간에 스코틀랜드 역대 왕들의 초상화가 연대순으로 촘촘히 걸려있다. 기원전 330년 스코틀랜드를 세웠다는 Fergus 1세부터 가장 가까운 스튜어트 왕조까지 모두 96개나 되는 초상화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그 중에 여왕의 초상화는 단 하나다. 스코틀랜드 최초이자 마지막 여왕, 메리(1542~1587)의 그것이다.
4.
그녀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밖으로는 잉글랜드 엘리자베스 1세와, 안으로는 시대의 요구였던 개신교와 불화한 고단한 삶이었다. 결국 엘리자베스 여왕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메리의 생애는 예수가 처형된 십자가를 뜻하는 ‘홀리루드’라는 이름과 묘하게 닿아 있다. 아이러니는 또 있다. 대영제국 시대를 연 제임스1세가 메리의 아들이다. 스코틀랜드 스튜어트 왕조 후손이 대영제국 왕위에 올라 자기 어머니를 형장으로 내몬 엘리자베스 여왕의 뒤를 잇는다. 영화 같은 기막힌 이야기다.
여왕 메리의 침실을 구경한다. 훌리루드 방문객은 꼭 들르는 곳이다. 여기엔 호사가들 입방아에 오르는 비밀 이야기가 숨어 있다. 데이비드 리치오David Rizzio라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메리의 비서였다. 여왕의 남편, 단리Darnley는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했다. 침실에서 밀실로 연결된 비밀 계단을 이용해 불륜을 저지른다는 의심이었다. 결국 여왕이 임신했다는 소문까지 돈다. 이에 격분한 단리는 리치오를 57번이나 찌른 뒤, 침실 비밀 계단 아래로 던져 버린다.
할머니 자원봉사자에게 비밀 계단을 묻는다. 할머니는 조용하고도 은밀하게 따라오라며 앞장선다. 좁고 낮은 나선형 계단이 침실과 밀실을 잇고 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메리에게 이 25칸 계단은 단순한 불륜 이상이었을 것이다. 고단하고 힘든 그녀의 삶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어쩌면 나선형 계단 너머는 어지러운 세상과 단절된 구원의 세계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궁전 뒤뜰에 벽체만 남은 성당 잔해들이 가득하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치 장식과 길쭉한 고딕 창문만 봐도 상당했을 성당의 크기와 위용을 짐작할 수 있다. 성당은 1128년에 처음 지어졌다. 1500년까지는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수도원이었다. 당시 수도원을 방문한 귀족들이 머물던 숙소를 허물고 그 자리에 지은 것이 훌리루드 궁전이다. 성당 뒤는 아름다운 정원이다. 정원은 훌리루드 공원과 낮은 울타리를 경계하고 있다. 여기서 보는 솔즈버리 크래그 풍경은 여전히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