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에도 채식을 할 수 있을까?
나는 33살 임산부다.
대한 민국에서 33살에 임신을 했다고 하면 이른 나이에 아이를 가진것도 아니고 그렇게 늦은 나이도 아닌 중간정도인거 같다. 사실 좀더 빨리 아이를 가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왜냐면 생물학적으로 33살의 나이는 이미 노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나 스스로도 느끼고 병원 검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임신 전에 슬픈 일이 있었기 때문에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한 후에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난자의 나이가 어떻고 호르몬 수치가 어떻고 등등... 자연스럽게 아이를 가지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여러 가지 검사를 하면서 느꼈다.
나는 이제 임신 21주인데 4,5개월부터 나는 허리와 골반이 많이 아팠다. 침대에 누워 있다 일어날 때, 떨어진 물건 집을 때 그렇게 고통스러울 수 없었다. 아직 자궁이 그렇게 커지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아플까.. 하며 임신을 한다는게 너무 불편하고 힘들기만 하였다. 하지만 생명의 소중함을, 그리고 생명을 낳는다는게 얼마나 선물같은 일인지를 나는 유산 경험이 있었기에 마냥 불평만 하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 내 몸 속에서 자라고 있는 소중한 아기에게 나도 모르게 모성이라는게 생겨서 아기가 건강하기만을 바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가끔 왜 그 전에 그렇게 슬픈 일이 나에게 생겼을까 생각하게 된다. 공중목욕탕에 가서 그랬나, 아님 천연 염색이라고 태아에게 문제될게 없다고 머리 염색을 해서 그랬나, 그것도 아니면 그 때 업무에 치여서 그랬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등 생각할수록 답도 없는 이유 찾기를 종종 하곤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건강한 아이가 태어날 수 있도록 조심하고 조심해야지 하면서 그 때의 내 식습관이 문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엔 고기를 그렇게 먹었다. 고기를 좋아해서 퇴근하고 마치고 오는 길에 소고기를 사와서 남편이 바빠서 없을 때에도 혼자서 쌈까지 싸먹으며 맛있게 고기를 먹었다. 그 때는 고기를 먹는 게 내 저녁 식사의 많은 부분을 차지 했던거 같다. 그리고 식당에 가면 고기 맛의 미묘한 차이를 알고 이래 저래 판단을 내리면서 '이 집 고기는 맛있네. 입에서 살살 녹네.' 등의 생각하며 나 스스로 미식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최대한 육류는 안 먹으려고 한다. 정확한 계기가 생각나지 않지만 어느날 접하게 된 비건 관련 다큐멘터리와 비건이 왜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블로그의 글들을 읽으면서 비건이 나의 건강을 위해서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먹는다는 것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어떤 연예인은 다이어트를 하면서 아침에 돼지 고기나 소고기를 구워먹는다, 저탄고지가 사람에게 좋다, 탄수화물은 피하자 등 스마트폰, 인터넷 메인 화면에 주로 나오는 말들에 둘러 싸여 예전에 나도 그런 생각들을 무의식 중에 받아들였다. 미디어가 우리 생각에 미치는 영향은 강력했다. 일상적으로 접하는 거의 모든 미디어에서 육식을 한다는 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채식이라는 말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공장식 사육에 따른 폐해와 축산업에 의해서 파괴되는 지구 환경 등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알게 된 이상 더 이상 육식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비건에 대해서 계속해서 공부를 하게 되고 나의 식습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완전한 비건이 되는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 가족이 모일 때 자주 먹는 것 중의 하나가 오리 고기, 장어, 회 등 주로 비건으로서는 먹지 않아야 하는 것이었고, 직장에서 회식이라도 하면 대부분의 메뉴는 고기였다. 이런 상황에 내가 완전 비건을 선언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라 느껴졌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타협이란걸 하게 되었다. 이런 타협을 하는 내가 비건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비건적인 생활이라도 함으로써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나아지기를, 내가 건강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내 나름으로 비건을 실천하는 것 중의 하나가 내 돈 주고 고기를 사서 먹지 말자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고기, 어류 코너는 아예 가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런 실천을 통해 알게 된 놀라운 점은 식재료비가 많이 안 든다는 것이다. 고기는 하루 한끼 먹을 양만 사도 비싸다고 느껴졌는데 채소, 과일은 몇날 몇일을 먹을 양을 사도 고기 한끼 사는 값과 같았다. 영수증을 보고 '내가 그동안 고기를 사는데 엄청 많은 돈을 썼었구나'하고 깜짝 놀랐다.
대한 민국에서 비건으로 산다는 건 다른 사람들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치되는 것이기 때문에 의견 충돌을 불러 온다. 대부분이 골고루 먹어야 건강하지, 고기에 단백질이 있는데 단백질 부족해진다 등 비건이라는 것에 대해 허용적이고 존중해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저는 비건이기 때문에 고기를 안 먹어요'라고 당당히 말하지 못하고 "고기를 먹으면 소화가 안 돼요, 임신중이지만 고기가 그렇게 안 땡겨요"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적당히 고기를 먹는다. 우리 나라에서 고기를 안 먹고 비건이 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는 걸 비건이라는 건 시작한 이래로 안 느낄 때가 없다.
하지만 비건이라는 걸 조금이나마 내 생활에 실천하다보니 좋은 점이 있다.
우선은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먹는 것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좋은 것을 먹기 위해 실천한다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동물의 권리에 대해서 생각하고 불쌍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들었다. 사람은 채식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필요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데 불쌍한 동물들이 좁은 우리에 갖혀서 성장 촉진제, 항생제 등을 맞으면서 '불행하게 죽어서 우리에게 오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전 뉴스를 보니 공장식 사육이 가장 큰 재앙 중의 하나고 서양의 어떤 나라는 육식이 비일반적인 일이라 음식의 기호를 체크를 할 때 육식을 한다면 육식이라고 미리 말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들에게는 채식이 일반적이라는 모습이라는 걸 보여준 사례였는데 그 기사를 접하고 나는 '정말 이런 나라가 있다고?' 하며 매우 놀랐었다. 그리고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이제는 비건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식습관의 올바른 방향이 채식이라 것에 공감을 한다는 걸 알았다.
대한민국에서 채식하는 임산부가 되는 건 많은 위험을 안고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임산부가 채식하여서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는 것에 대한 연구가 없고 참고할 만한 것이 많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소중한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이기에 나도 처음에 시작할 때 다시 육식도 하면서 소위 말하는 골고루 먹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여러 해외 사례와 해외 연구 결과 등을 통해서 채식이 아이에게 좋다는 생각에 확신이 생겼고 병원에서 진료를 볼 때마다 초음파로 보이는 내 소중한 아기는 너무나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도 비건적 식습관을 실천하면서 우리 아기가 건강하게 잘 자라는지 세심히 지켜볼 것이다. 이런 나의 기록들이 비건이면서 임신을 하여 자신의 식습관에 의문을 가지게 된 사람들에게 그리고 건강하지 못한 일반 사람들이 자신의 식습관에 변화의 필요성을 느낄 때 참고할 수 있는 작은 사례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