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7일 (일)
모두가 잠든 시간에 혼자 깨어 편지를 쓰려니 낭만이라는 단어가 계속 입에 맴돕니다. 첫 번째 레터를 보내고 몇몇 분들이 답장을 남겨주셨더라구요. 전혀 기대하지 않은 답신을 받으니 꼭 우체통에 편지가 들어 있는 것처럼 설레고 기뻤습니다. 한 분이 제게 '이런 낭만을 주어 고맙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이 레터가 누군가의 하루에 소소한 행복이 될 수 있단 사실에 제 마음이 빵빵해졌습니다. 이 두 번째 편지도 당신의 일상에 작은 낭만이 되고, 월요일의 즐거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아주 아주 깊은 잠을 자고 느지막이 일어나서 브런치를 먹으러 나갔습니다. 누군가 추천해준 맛집이었는데 가보니까 진짜 맛집인지 11팀이나 대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전 맛집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서 바로 포기하고 앞집으로 갔습니다. 야외 자리에 앉아서 직원 분께 눈빛을 계속 보냈죠. '제 주문 좀 받아주세요!' 하고요. 막상 주문받으러 오셨는데 아직 메뉴판도 못 봐서 그냥 떠오르는 오믈렛과 아이스 라떼를 시켰습니다. 무슨 메뉴가 있냐고 묻는 게 더 자연스러웠을 텐데 또 뚝딱거렸어요. 제 마음이 겨우 몇 분도 못 기다릴 만큼 급하고 야박했나 봐요. 그동안 늘 뭔가 '해야 된다'는 마음으로 살았구나, 퇴근하면 뭘 하고 주말엔 뭘 하고 시간을 그냥 흘러가게 두는 걸 너무 두려워했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여기 그냥 놀고먹으려고 온 건데 여유를 부리는 방법을 잘 몰랐던 거죠. 아예 다른 세상에 와보니까 보이더라고요. 주문을 앉자마자 해서 음식이 참 빨리도 나왔습니다. 온화한 직원 분이 오믈렛을 건네면서 'Everything is fine?'하고 물어보는데 그 말과 그분의 눈빛이 꼭 '너 괜찮아? 여기서는 편하게 쉬어도 돼'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긴장이 푸스스 풀려서 왠지 울컥했습니다. 여기 사람들이 원래 자주 그러는 건지 모르겠는데 저 오늘 저 말을 한 세 번 들었어요. 으레 하는 말이 아니라 뭔가 걱정되는 눈빛으로요. 지금 내가 긴장되어 보이나? 하고 방긋 웃으며 승모근을 좀 내려줬답니다.
잘 구워진 빵을 한입 파삭 먹을 때의 냄새가 좋아서 행복했고 오믈렛 안에 들어있는 익은 토마토가 맛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숙소에서 나올 때만 해도 하늘에 구름이 잔뜩 껴서 오늘은 날씨가 흐린가 보다 했는데 라떼가 고소하다고 생각하는 동안 따스한 햇살이 온몸에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은 일요일의 늦은 아침, 거리 가득 야외 자리에서 식사하고 차를 마시는 사람들은 참 여유로워 보였어요. 덥지 않은 날씨에 햇살을 받으며 빵과 커피를 먹는 것. 겨우 이런 걸로 삶은 충만해지네요. 한국에도 야외 카페나 식당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여기도 차도 앞에 사람들이 코 앞에서 훽훽 지나다니는데도 밥 잘만 먹는데요. 누가 좀 안 만들어주시면 나중에 은퇴하고 제가 하나 만들어버리겠습니다.
Cappuccino Grand Café - Mi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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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를 먹다가 문득 제가 마스크를 놓고 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여기 독일은 공식적으로 실내외 모두 마스크 의무화가 해제되었고 딱 교통수단 내에서만 필수로 써야 하는데요. 워킹투어를 신청해놔서 마스크 쓸 일이 있을 거 같더라고요. 주변에서 사자니 일요일이라 아포테케(약국)도 상점도 다 문을 닫아서 꼼짝없이 숙소에 다시 다녀와야 했습니다. 이왕 가는 거 안 걸어본 쪽으로 빙빙 돌아 가는데 작은 간이 상점이 열려있어서 마스크를 1유로에 샀습니다. 주인아저씨, 영어 못하신다고 했지만 마스크! 하면서 입을 휙휙 가렸더니 다행히 바로 알아들으셨어요.
덕분에 가보고 싶었던 'The Barn' 커피에 갈 시간이 생겼습니다. 베를린은 생각보다 한산하고 동양인 특히 한국 관광객이 많이 보이지 않아요. 4년 전에 이런 대도시를 여행하면 2분에 한 번씩 한국 분들을 마주쳤었는데요. 지금은 유학생 포스를 풍기는 현지인 같은 분들만 조금 보입니다. 너무 고요해서 무슨 세트장 같았던 거리를 걸어서 카페에 도착했습니다. 베를린 3대 로스터리라는 더반 커피, 이왕이면 시그니쳐를 먹고 싶어서 대표 메뉴가 뭐냐고 물어봤는데요. 한 세 가지 말씀 주셨는데 앞에 두 개는 커피인데 유자청이 들어가고 니트로 커피 이런 거라 별로길래 세 번째 것을 주문했습니다. 근데 무슨 김 빠진 콜라 같은 걸 조로록 따라 주는 거예요. 아니 이게 뭐야...? 커피 원두로 만든 음료라더니 커피 향이 나는 시큼한..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어요. 약간 연한 홍삼 주스 맛.. 꼬소한 라떼나 카푸치노를 먹어볼걸 했지만 이상한 걸 마시고 있는 제가 너무 웃긴 거예요. 저는 이렇게 예상 밖의 일이 생기면 여행이 재밌어 죽겠어요. 그래도 대단한 로스터리 원두 맛을 반 밖에 못 느낀 거니까 떠나기 전에 다시 가서 라떼 한 잔 꼭 먹겠습니다.
베를린은 특히나 역사적인 곳이 많아서 4시간짜리 워킹투어를 어제 급히 신청했습니다. 아무리 멋진 건물이라도 뭔 의미인지 모르면 기억도 안 나고 그냥 엽서처럼 머릿속에 뻣뻣하게 멈춰 있거든요. 제가 찾았을 때 한국인 가이드는 없었고 영어 투어만 있었습니다. 예약할 때 알려준 구글 맵 좌표에 가서 기다리는데 아무도 제게 아는 척을 안 해주더라고요. 약속한 2시가 되었는데 슬슬 불안해졌어요. 매의 눈으로 두리번거리다 보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엉성하게 서있길래 물어보니 제가 예약한 투어더라고요. 겨우 낙오되지 않고 참여할 수 있었어요. 마이 리얼 트립에는 후기가 하나도 없더니, 외국인들에게 더 유명한 투어였나 봐요. 여기서도 동양인은 저 혼자. 아 저도 그런 걸 자꾸 의식하고 싶진 않은데 서양인들이 자꾸 절 신기하게 쳐다보거든요. 최대한 안 보이는 척 모른 척해주지만 과한 거 같으면 (^__^) 이런 표정으로 저도 빤히 봅니다. 제가 여기서 아주 다른 얼굴을 가진 사람이란 게 신기해요. 워킹투어는 햇빛이 뜨거워서 조금 힘들었지만 생각보다 더 재밌었습니다. 겨우 몇 번 왔다 갔다 했다고 벌써 익숙해진 숙소 근처를 벗어나 더 큰 거리를 가보니 본격적으로 베를린 여행이 시작된 느낌이었어요. 베를린 돔, 체크 포인트 찰리, 박물관들, 무슨 다리 등 여기저기 보면서 그 뒤에 담긴 이야기를 들었어요. 나름 토익 보면 듣기는 만점 가까이 받는데, 가이드님의 독일식 영어는 70% 정도밖에 못 알아들었습니다. 한국어로 베를린 역사책을 읽어보고 싶어 졌네요.
여러 포인트 중 가장 인상 깊은 곳은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었어요. 예전에 꽃할배에 나와서 처음 봤었는데 그땐 무슨 박물관처럼 따로 마련되어 있는 장소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정말 거리 중간에 건물들 사이에 딱 있어서 좀 놀랐어요. 어떻게 이렇게 수도의 노른자 땅에 이런 걸 만들어서 2년에 한 번 큰돈을 들여 색칠을 다시 하면서까지 관리를 하는 건지. 심지어 소수 커뮤니티를 기리는 메모리얼 장소가 베를린에 두 군데 더 있대요. 일부러 잘 보이는 곳에 두고 계속 떠올리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거라네요. 전 언젠가 해외에서 또 생활을 한다면 다시 독일을 선택하고 싶어요. 궁금한 나라 가보고 싶은 나라는 많지만 살게 된다면요. 물론 여기도 부당함과 차별과 차가운 사람들이 있는 곳이지만, 그래도 그들이 보편적으로 옳다고 믿고 노력하는 부분이 제가 소수에 속할 때에도 작은 안정감을 줄 것 같거든요.
투어를 같이 듣던 미국인들과 3개월 동안 여행 중이라는 호주인과 잠깐씩 이야기를 나눴어요. 쭈뼛쭈뼛 묵언수행하면서 돌아다니다가 쉬는 시간에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면서 용기 있게 대화를 했어요. 여행자들끼리는 어디에서 왔는지, 어딜 여행했고 어디로 갈 건지만 이야기해도 한참 떠들 수 있어요. 저 영어를 더 열심히 공부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조금이나마 대화를 나누는 게 되니까 제가 지난 1년 반 동안 전화 영어며 화상 영어, 영어 말하기 오프라인 모임까지 꾸준히 노력한 게 뿌듯하기도 했고 또 그러면서 대화가 아주 편하기만 하진 않고 빠르게 중얼대듯 말한 건 못 알아들어서 어색하게 웃어야 했을 때, 게을러서 예복습은 안 했던 저의 애매한 열정이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다음엔 진짜 불편함이 하나도 없어지도록 꼭 열심히 해야지 다짐했습니다. 영어에 대한 생각이 많아서 말이 길어졌는데, 아무튼 오랜만에 사람과 대화를 하니까 하루가 생기 있어졌어요. 한 이십 명이 몇 시간 동안 서로 거의 모른척하면서 다녔지만 어딘가 속해서 구경한다는 게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결국 사람은 혼자인 시간이 필요하지만 영영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게 아닐까요.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한참을 적다 보니 여기 시간으로 1시가 넘어버렸습니다. 내일을 위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베를린에서의 하루가 곱씹을 시간도 없이 빠르게만 흘러갑니다. 잘 자고 잘 먹고 최대한 많이 멍 때리고 안전하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알찬 시간 보내겠습니다. 오늘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질문]
- 요즘 어떨 때 행복하다고 느끼시나요?
- 여행을 할 때 어떤 방법으로 기록하세요? 사진, 동영상, 글?
- 최근에 뭔가 강렬하게 '이거 하고 싶다'라고 생각한 게 있나요?
- 다른 나라에서 여행 말고 몇 개월, 몇 년 살아본다면 어디로 가고 싶나요?
RE: [나니의 빨간수첩] 2. 낭만과 여유라는 건
2022년 7월 18일 09:49
- from J
요즘 정신없이 살다 보니 나현 님의 빨간수첩 속편이 제 메일함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는 걸 모르고 있었네요! 정말 피곤하고 삶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는 월요일 아침에 나현 님의 글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즐거웠습니다!
나현 님의 글을 보면서 19년 7월에 떠났던 오스트리아 여행이 떠올랐어요.
길고 어두웠던 취준의 터널을 빠져나와 갈 수 있을 거라 생각지도 못했던 회사에 들어가(그땐 3년 다니고 퇴사할지는 상상도 못 했었죠 ㅎㅎ) 좋은 분들과 만나 인생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죠. 그렇게 여름휴가를 내고 혼자 빈으로 떠났는데, 도착한 저녁 9시의 빈에 비가 떨어지고 있는 거예요... 트렁크를 급하게 열어서 우산을 찾고(여행용 접이식 우산이었죠...) 구글맵을 서툴게 보며 길을 찾고, 버스까지 어찌어찌 타서 호텔에 도착해보니 정말 젖은 곳이 젖지 않은 곳보다 훨씬 많았어요... 직장인이 되어 떠나는 첫여름휴가인데 이 꼴이라니 참 서글픈 마음이었죠.
근데 참혹하게 젖은 제 꼴을 호텔 지배인이 보더니, '혼자 왔어?'라고 물어보더라구요. 제가 '혼자 왔지!'라고 대답하자 그가 '그럼 비는 방이 있으니 더 좋은 방으로 바꿔줄게. 3일 동안 편하게 잘 지내길 바라.'라고 해주는 거예요! 고맙다고 대답한 뒤 방에 찾아가 문을 열었는데 웬걸... 정말 너무너무 좋더라구요! 바로 방 곳곳의 사진을 찍고 친구들과 가족에게 자랑하고 나니 시간은 어느새 12시가 넘었지만 제트 렉인지 풍요로워진 마음 때문인지 잠이 오지 않더라구요. 로켓맨이라는 영화를 다 보고 잠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일어난 빈의 아침은... 정말 너무 아름다웠어요! 사실 그 해 유럽이 이상기후로 더위가 일찍 찾아와 독일과 프랑스에선 온열질환으로 돌아가신 분들도 생긴다고 해 걱정했는데, 비가 온 후라 그런지 너무 시원하고 하늘은 화창하더라구요. 마치 제 여행을 환영해주듯이요! 그렇게 10박 11일 내내 챙겨 온 반바지는 한 번도 입지 않은 채 시원~하게 여행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제게 행복은 그런 것 같아요. 부정적인 상황 한가운데에 있더라도, 언제든 좋은 일이 찾아올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그 희망을 강화해주는 기억들의 연속이요. 그리고 그런 긍정적 기억이 여행을 통해 강화된다는 점 때문에 저는 여행을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나현 님에게 이번 여행이 희망에 대한 나현 님의 믿음을 강화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되길 바라봅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저도 나현 님의 이메일 레터와 함께 같이 여행하겠습니다.
- 여행을 할 때 어떤 방법으로 기록하세요? 사진, 동영상, 글?
사진을 찍곤 하는데 올해 떠나는 여행에는 나현 님처럼 기록을 해보려구요!
- 최근에 뭔가 강렬하게 '이거 하고 싶다'라고 생각한 게 있나요?
저도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티켓팅을 했어요! 저도 9월 말에 빈으로 떠납니다~
- 다른 나라에서 여행 말고 몇 개월, 몇 년 살아본다면 어디로 가고 싶나요?
저는 파리에 살고 싶어요. 과거의 기억 때문에 무섭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사랑스럽던 도시였습니다.
RE: [나니의 빨간수첩] 2. 낭만과 여유라는 건
2022년 7월 18일 11:52
- from K
안녕 나현아 ~ 오늘도 좋은 레터 보내줘서 고마워.
매일 집에서 일-휴식-일-휴식만 반복하던 일상에서 이렇게 낭만 가득한 유럽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나도 괜히 설레는 거 있지? 나는 사실 해외여행에는 딱히 관심이 없는 편인데도 어제 받았던 첫 번째 빨간수첩을 보고 문득 유럽으로 떠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한참 동안 유럽 여행지와 경비 후기를 찾아봤지 뭐야..
아무리 예쁜 풍경 사진과 영상을 봐도 낭만적이다 라는 생각은 잠시 뿐, 이렇게나 마음이 움직였던 적이 없었는데. 그곳에 있는 너가 하루에 대한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전달해줘서 그런가? 나도 그 자리에 함께 있는 느낌이 들더라. 그래서인지 언젠간 나도 가봐야겠다! 하면서 비행기 표부터 찾아봤어.
마지막 챕터에서 사람은 혼자인 시간은 필요하지만 영영 혼자일 수는 없다 라는 글을 보고 글이 참 재밌고 공감이 가더라고. 내가 집에서 혼자 일을 하고 휴식을 취하고 누군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오롯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낼 때 편안하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가끔은 심심하고 외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거든.
사람들과 아침 인사를 하고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업무를 보고 허기가 질 때쯤 함께 점심 식사를 하면서 시시콜콜한 얘기를 떠들고 가끔 고민이 있으면 함께 서로를 위해주는 그런 시간들이 어쩌면 무료하고 반복적인 일상에서도 나에게 필요한 비정형적인 활력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 너가 워킹투어를 신청해 생기를 얻었던 그 시간처럼 나도 결국은 나만의 방법으로 힘을 얻어야겠지.
오늘도 재밌는 얘기 들려줘서 고마워! 앞으로의 시간도 즐거웠으면 좋겠다. ღ'ᴗ'ღ 생생한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 다녀오고 나선 꼭 책으로 엮어서 출간해봤으면 좋겠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줄 거 같아 :)
그리고 이 표정이 나왔던 부분 ..(^___^) ㅋㅋㅋㅋ바로 너 얼굴이 떠올라서 빵 터졌어.ㅎㅎㅎㅎ
RE: [나니의 빨간수첩] 2. 낭만과 여유라는 건
2022년 7월 18일 17:55
- from A
나니에게
낭만과 (나에겐) 미지의 세계인 베를린에서의 생활을 알려줘서 너무 고마워요.
사진을 한참 동안 봤어. 여길 다녀왔구나 하며 한번 보고 나니가 써준 설명들을 읽으면서 보고, 이곳에 가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면서 사진을 찬찬히 봤어. 좋은 곳에 다녀온 경험을 공유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있지 나혀나. 잊지 말고 야외 테이블이 있는 카페나 식당 열어줘야 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오늘도 HAPPY 한 DAY 보내기~!~! 삼시세끼 잘 챙겨 먹기!!
- 요즘 어떨 때 행복하다고 느끼시나요?
밤에 긍정 암시할 때 행복해요. 뭔가 마음이 든든해지는 기분이라서 참 좋아요.
- 여행을 할 때 어떤 방법으로 기록하세요? 사진, 동영상, 글?
사진과 동영상으로 기록하는 편이에요. 동영상은 그때의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어서 참 좋구, 여행하다 어떤 얘기를 했는지도 영상에 남아서 좋아요. 사진은 최대한 저의 마음이 잘 담기게 찍으려고 노력해서 나중에 그 사진을 보면 카메라를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가 느껴져요. 사실 찍는 것 자체로 너무 좋아요!! 글은 글재주가 없어서 안 쓰다 버릇했더니 진짜 더 못쓰게 되어버렸어요 흐엉엉
- 최근에 뭔가 강렬하게 '이거 하고 싶다'라고 생각한 게 있나요?
공부하고 싶어 졌어요. 나를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이 최근에 많이 들어요. 근데 희한한 건 공부 생각만 하면 약속을 잡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고, 왠지 다른 사람들과 연락을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마음이 들어요. 참 요상한 발상이지만 자꾸 그런 마음이 들어서 어디 절에 들어가서 공부해야 하나 싶어요. 크크크크
- 다른 나라에서 여행 말고 몇 개월, 몇 년 살아본다면 어디로 가고 싶나요?
몇 개월만 생각하면 하와이로 가고 싶고, 몇 년 살아본다고 생각하면 이탈리아에서 살아보고 싶어요. 직업을 가진다고 생각하면 하와이에서는 일하다가 바다로 뛰어들어가서 서핑하고 싶을 것 같아요 ㅎㅎㅎㅎ
이탈리아에 대한 약간의 환상과 로망이 있기 때문에 뭔가 그곳에 살면 행복할 것 같아요! 그리고 개발자 직업이라면 돈 많이 줄 것 같기두 하구요,,,! ㅎㅎㅎ
RE: [나니의 빨간수첩] 2. 낭만과 여유라는 건
2022년 7월 18일 23:39
- from Y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메일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피곤했던 오늘의 하루를 설렘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편지의 형식으로 답변드리고 싶어서 피디에프로 작성을 했지만,
혹시 파일이 열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아래에 같은 내용 첨부할게요.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고, 남은 여행 응원하고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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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자기 전에 읽고 답장을 쓰다가 그 상태로 잠이 들어버렸네요. 몹시 피곤하고 지쳤던 날, 위로되는 글이어서 그랬나 봅니다. 그러면서 문득, 나니 님은 잠들기 전에 구독자를 위해 글을 쓰시는데, 저는 잠에서 깨, 메일 알림을 확인하고, 자기 직전에 편지를 읽는다는 사실이 재밌게 느껴지더라구요.
잠깐 티엠아이로 자기소개를 하자면, 24살 중국어를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이자 인천의 빵집에서 일하는 학생이기도 합니다. 오픈 알바를 하기 때문에 주말 아침마다 어떤 마음을 느낄 새 없이 빵집으로 향하곤 했어요. 어제는 출근 중에 메일 알람을 보고 처음으로 묘하고 즐겁다는 감정을 받을 수 있었어요. 덕분에 조금 더 행복하고 편안하게 일하고 올 수 있었습니다. 독일을 한 번도 가 보지 못했지만, 나니님의 유투브와 블로그, 어제오늘의 메일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어요. 내일은 씩씩하게 밥을 먹겠다고 문장을 읽고, ‘부디 오늘은 식사 잘하시길..’ 생각하며 잠이 들었어요. 앞으로의 식사는 점점 편해져서 독일에 녹아들 수 있길 바라고 있을게요.
오늘의 질문을 보고 재밌었어요. 나니 님의 여행만 함께 하는 게 아니라, 저의 여행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다 싶었거든요. 우선 코로나 이후 가고픈 나라는 아직 없는 것 같아요. 졸업 막바지에 현실을 깨닫기 급급해서 그런가 봐요. 그렇지만 덕분에 이 질문을 통해 세계지도를 한 번 쫙 보고 약간의 설렘을 느낄 수 있었어요.
저는 부산과 제주를 혼자서 여행한 적이 있어요. 인생이 지루한 것도 아니고 비참하고 허무하게 느껴짐과 동시에 누구도 보고 싶지 않았던 날, 무작정 이틀 뒤에 출발하는 기차표와 비행기표를 끊었어요. 적당히 힐링이 되는 여행이 되었어요. 이때의 여행은 P와 J가 반반 섞여서 그리 완벽하지만은 않았던 여행이었죠. 생각해보면 모든 여행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고 그 아쉬움이 여행을 더 즐겁게 하고 추억하며 다음에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거 같아요.
그리워하는 동네는 어릴 적 살던 곳인데, 지금은 재개발로 사라져 없어졌어요. 영원히 그리워만 해야 하는 곳이 되어버렸죠. 그래서 더 아련하게 느껴지고 그날이 이따금 생각나기도 해요.
여행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여행 방식이에요! 웬만해선 걷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그리 비싸지만 않다면 택시도 한 번 타 보기를 원해요. 그 나라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마치 내가 현지인이 된 것처럼, 그렇게 ‘척’하는 것이 저의 즐거움이에요.
여행하면 가게에서 받은 스티커와 각종 티켓을 다이어리에 붙이고 글을 써서 저만의 여행을 기록합니다. 보통 한 시간 정도 그날의 일들을 전부 기록하고 자야만 마음이 편하답니다.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았네요. 남은 여행 부디 탈 없이 하시고 오시길 바랄게요. 독일은 지금 5시쯤이겠네요.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어요. 그리고 저의 이야기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