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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 Oct 30. 2022

세 번째 레터. 무작정 걷다 보니

2022년 7월 18일 (월)

외로워도 슬퍼도


 이 레터를 받으신 분들께만 제 능력을 하나 알려드릴게요. 있죠, 저는 길을 엄청 잘 찾아요. 잘 찾는 것뿐 아니라 한 번 간 길은 웬만하면 바로 외워서 지도 없이도 왔던 길을 돌아올 수 있는 정도랍니다. 갑자기 자랑을 하는 건 아니구요. 오늘 알았는데 그 능력 때문에 저는 잠깐 머무는 곳도 금세 익숙해져 버리더라고요. 숙소 근처에서부터 저기 슈프레 강 따라 쭉 있는 번화가는 두 번 왔다 갔다 하고 제 동네 같아졌어요. 저 이번 여행 정말 어떤 날에 뭘 할지 계획을 하나도 안 짜고 왔거든요. 그냥 베를린은 서점에 갔다가 발견한 B 매거진을 사서 반절 정도 읽었고, 여행 소식을 들은 지인들이 추천해준 곳만 구글맵에 대강 저장해서 왔습니다. 거기에 여행 시작부터 저녁마다 열심을 다해서 글을 쓰고 있어서요. 매번 시간이 너무 늦어져서 '어머 일단 자야 돼!' 하고 눈 꼭 감고 자다 보니 오늘은 정말 어디 갈지도 못 정하고 아침이 된 거예요. 일단 배가 고프니까 아점을 먹으러 가고 그다음은 여길 갈까 저길 갈까 생각하면서 조금 모호한 상태로 숙소를 나섰습니다. 제가 평소에 계획하는 걸 계획할 정도로 J 인간으로 살았는데 갑자기 하루가 통째로 텅텅 비어서 뭐든 해도 된다고 하니까 너무 당황스러운 거 있죠. 주요 포인트는 어제 워킹투어로 다 봤는데 다시 가? 새로운 동네 가? 뭐야 나 뭐 해야 되니 정말.. 하면서 일단 엄청 맛있는 샌드위치를 우걱우걱 먹었습니다. 시간이 많은데 또 그 시간이 자주 오지는 않는 기회일 때 사람이 이렇게 결정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괜히 독일 서쪽 끝에 있는 교환학생 했던 도시는 몇 시간이나 걸리나 검색해보기도 하구요. 베를린을 너무 오래 있는 건가 의심이 들려고 해서 일단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유학하고 있는 친구가 추천해준 서점이 주변에 있길래 가봤는데 생각보다 별 게 없어서 조금 시무룩해졌고, 또 다른 베를린 3대 로스터리 '보난자 커피'를 갔는데 점원 분이 누가 봐도 한국인이었는데 계속 영어로 응대하시길래 저도 아는 체하지 않았더니 괜히 좀 외로워졌어요. 뭐 같은 나라 사람이라고 꼭 인사를 나눠야 하는 건 아니지만 뭔가 '절대 한국어로 친근하게 하지 말아 줘' 하는 느낌을 받아서 안 그래도 적적하던 차에 확 쓸쓸해졌습니다.



 혼자 뭘 하면서 하루를 보내야 할지 모르겠을 때 누가 있었다면 여러 대화를 하면서 풍족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을까요? 그렇지만 여럿이 있어도 사무치게 외로울 때도 있는 걸요. 그냥 중요한 건 외로운 마음이 들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찾는 것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이건 혼자이건 마음이 순식간에 쓸쓸해질 때 어떻게 하면 되는지 잘 알고 있다가 그 방법대로 해서 넘어가는 식으로 사는 거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직 가보지 않은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쪽으로 조용한 길을 더 조용히 걸어가다가 갑자기 마음이 확 환해졌어요. 독일에는 '비어 바이크'라고 한 열댓 명이 맥주 마시면서 발을 굴러가지고 앞으로 나가는 희한하게 생긴 탈것이 있는데요. 그걸 만난 거예요. 독일어라 정확히는 모르지만 끙차! 끙차! 와하! 으쌰 으쌰! 어쩌구 하는 소리와 깔깔거리는 소리를 들으니까 귀여운 활기에 압도되어 크게 웃어버렸어요. 술에 기분이 좋아진 분들이 온 동네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줘서 저도 같이 흔들고요. 덩달아 갑자기 신나 가지고 노래 틀고 파워 워킹했습니다. 외로움 참 별 거 없네요. 



강물과 레몬 맥주  


 기분도 좋아졌지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는 거대하고 다채로워서 재밌지 걱정이 싹 사라졌습니다. 아, 야외 갤러리는 생각보다 엄청 길어서 한참 걸어야 하더라고요. 다리가 좀 아프기 시작할 무렵 딱 장벽이 잠깐 끊기고 강가에 사람들이 앉아서 쉬고 있는 공간이 나오는 거예요. 음료를 파는 식당도 있고요. 원래 물을 마시려다가 분위기가 완전 맥주라서 라들러를 주문했습니다. 요즘 술 마시면 심장이 너무 뛰어서 안 마시려고 했는데 안 마실 수 없는 순간이었어요. 강가에 철푸덕 앉아서 어제 레터에 답장으로 온 글들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웃기기도 하고 감동적이라 찡해지고, 사람 사는 이야기가 이런 건가 싶더라고요. 꼭 대화하는 것 같아서 하나도 외롭지 않았어요. 울렁거리는 물을 보면서, 옆에 앉은 독일 소녀들 온갖 노래 흥얼거리는 거 들으면서(몇 개는 같이 부르고 싶었던..) 멍하니 레몬맛 맥주를 마시는데 정말 맛있더라고요. 전 멋진 걸 보거나 대단한 걸 할 때가 아니라 꼭 멍하니 있는 순간에 해사한 얼굴이 되고 행복해지네요. 아침엔 하루를 '완벽히' 보내려고 집착하고 초조해했다는 걸 알았어요. 여행은 완벽하려고 하면 엉망이 되고 마음을 내려놓을 때 즐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ZOLA East Side – Friedrichshain
https://goo.gl/maps/cPTm4gfZwbjwMffp6



목적지는 없고 방향만 잡아서 

 굳이 목적지가 있어야 하나, 다 새로운데. 그러면서 그냥 방향만 북쪽으로 잡아서 쭉쭉 걸어봤습니다. 지금 독일은 9유로 티켓이라고 생겨서 한화로 만 이천 원 내면 한 달 동안 트램, 버스, S반, 도시 간 기차까지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어요. 그 티켓이 있는데도 저는 자꾸 무릎 돌아갈 듯이 걸어만 다녀요. 새로운 장면이 계속 나오는 게 너무 좋아서요. 한국에서 독립해서 살고 있는 동네도 시간만 나면 새로운 길로 계속 걷거나 자전거 타고 훌훌 다니거든요. 어쩌면 저에게 여행이란 모르는 길을 끝도 없이 만나는 건가 봐요.


 무작정 걷다가 발견한 젤라토 가게 아저씨가 되게 친절하셨고 메뉴판에 독일어 기억나는 게 레몬 Zitrone 뿐이라 눈에 띄어서 먹었는데 상큼했어요. 쭉쭉 계속 걸으면서 여러 그라피티도 보고 어느 거리에서 한국에 많이 보이는 포토매틱을 발견했습니다. 디자인도 비슷한 거 보니 어쩌면 이거 독일에서 온 거였나 싶네요. 혼자 다니면서 막상 제 사진은 찍기가 어려워서 아쉬웠는데 이거라도 찍자 싶어서 3유로 짤랑짤랑 넣고 기다려봤어요. 이건 한국 기계처럼 스마트하지 않고 철제 저금통 같이 생겼어요. 눈치로 동전 구멍 옆에 버튼을 꾹 눌렀더니 펑하고 투박한 소리를 내며 플래시가 터졌어요. 진짜 투박한 소리라서 설마 찍힌 건가 했네요. 스크린도 없고 언제 다음 게 찍히는 줄 모르겠지만 열심히 네 가지 포즈를 취해봤는데 마지막 건 좀 에러네요. 90년대 대학생 같이 나왔어요. 에누리 없이 딱 네 방 찍고 끝나더라고요. 5분 걸린다고 적혀있는데 진짜 5분이나 걸려서 '고장 난 거 아닌가.. 나오는 거 맞나' 싶었어요. 투박 하디 투박한 그 기계에서 제 사진이 툭 나왔는데 왜 이리 웃기던지요. 이 사진은 제 방 벽에 꼭 붙여 둘래요. 제 인생에서 가장 기분 좋아지는 사진이 된 거 같습니다. 저 사진을 찍고 정말 좋아서 배를 통통 치면서 방긋 웃으면서 걸어 다녔거든요. 



노을을 기다리는 마음 

 지난 이틀 간은 8시쯤 되면 힘들기도 하고, 한국에서 업무가 조금 남은 채로 떠나 온 거라 월요일이 되기 전에 마무리하려고 일찍 숙소에 들어왔었습니다. 그래서 노을, 야경을 못 봤죠. 계획 없는 하루였지만 오늘 노을은 꼭 보고 싶었거든요. 전망대가 있다는 텔레비전 탑에 무거운 몸을 끌고 갔는데 예약이 마감되어서 못 올라갔고 '에라, 그냥 베를린 돔이나 보자' 하고 가다가 엄청난 스팟을 발견했습니다. 왼쪽에는 베를린 돔이 시원하게 보이고 오른쪽은 강가의 노을이 펼쳐진 곳을요. 저도 난간에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한참을 메모하고 노래 듣고 시간을 보냈습니다. 야경까지 보고 싶었는데 위 사진이 아홉 시 반이에요. 낮이 길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야경 보기는 좀 어려워진 것이죠.


 그러고 보니 저 최근에 노을을 본 적이 없었어요. 저기서 그저 하늘만 빤히 보고 있으니까 진짜 여행하는 거 같았답니다. 4년 전 유럽 여행에서도 전 노을을 볼 때마다 '아 이게 여행이구나' 생각했어요. 밤을 기다린다는 게 일상에서는 은근 어려운 일이잖아요. 노릇노릇하게 모든 게 홍조를 띤 느낌. 별 거 없는 상황도 별 거로 만드는 저무는 해의 붉은빛을 사랑해요. 파란색과 핑크 빛이 아웅다웅 어우러지면서 하늘이 바뀌어 가는 걸 보다가 약간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어요. 열심히 살아서 여기 다시 온 제가 좀 대견하기도 하고. 이렇게 용기를 낸 것도 잘했다 싶어서요. 대학생 때는요. 여행을 하면서 좋은 걸 보면 행복한 동시에 막 슬퍼졌어요. 다시 못 볼 거 같아서요. 이런 기회가 제 인생에 다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그때의 메모는 그 순간 안에 있으면서도 다 아쉽고 그립다고 말해요. 이제 알았는데 그게 제 삶에 대한 낙관이 없었기 때문이더라고요. 뭐 4년이 지난 지금도 한 해가 갈수록 점점 뭔가를 '할 수 있다'라고 믿으며 사는 게 어려워지는 것 같은데요. 그동안 어떻게 해서든 '나는 마음먹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썼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서 저 노을을 보고 있는 거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살아지는 삶에 파묻혀버리지 말자고, 살고 싶은 삶을 조금이라도 지켜가자고 수첩에 꾹꾹 적었습니다. 


오늘 깨달은 게 많아서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읽기 힘드실 정도로 쓴 건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저는 근데 이만큼 쓰고도 할 말이 한참 남았어요. 기회가 된다면 또 어떤 메모가 있는지 같이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해드리고 싶습니다. 그곳은 벌써 아침이 되어 다들 하루를 시작하시겠군요. 한 분이 제가 자기 전 쓴 글을 잠에서 깨어 보는 게 재밌다고 해주셨는데 그 말을 듣고 나니 저도 재밌어졌습니다. 오늘 하루도 조금이나마 기운차게 시작하시길 온 마음 다해 빕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야경 스팟 Three Girls One Boy Statue
https://goo.gl/maps/ytc3WE3MD4pYo67k6


[오늘의 질문] 


- 최근에 외롭다고 생각해본 적 있으세요? 

- 외롭거나 쓸쓸한 기분이 들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 멀리 떠나야만 알게 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왜 평소에는 알지 못할까요

- 4년 전과 지금 달라진 점이 있나요? 가장 큰 변화는 뭘까요 

- 유럽을 여행한다면 짧게 여러 곳 가기 vs 길게 몇 군데만 가기 



RE: [나니의 빨간수첩] 3. 무작정 걷다 보니

2022년 7월 19일 10:20 

- from J


나현 님 이번 글도 너무 좋네요! 


과거의 기억들이 대게 그러하듯, 여행도 추억 속에서 미화되기 마련인 것 같아요. 사실 여행을 떠나면 낭만적이고 행복한 순간들만큼이나 지치고 힘들고 외로운 시간들이 많잖아요. 특히 혼자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서 나와는 다른 외모와 언어를 가진 사람들 속에서 완전한 이방인이 되면 파도 같이 외로움이 다가오면서 '그 많은 돈을 내고 굳이 왜 여행을 왔지?'라는 생각도 드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는 나현 님처럼 먼 타국의 땅으로 혼자 떠난 여행을 준비하고 있어요. 생각해보면 그 '완전한 타인'이 되는 경험을 저는 사랑하는 것 같거든요.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따로 떨어져 있다 보면 주변의 경치나 타인보다는 나에 대해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낯선 곳을 즐기러 가는 해외여행에서 외부가 아닌 내부에 집중한다는 것이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때론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 안에서 보이는 것이 많을 때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외로움이란 집 안에서 내 안을 집중해서 바라보다 보면, 이전의 나와는 조금은 다른 내가 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 묘한 기분이 들면 여행을 떠나기 전 내가 얼마나 지치고 마모되었든 간에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할 힘이 생기곤 하거든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서 다자키 쓰쿠는 본인이 갖고 있는 상처를 직시하고 진전하기 위해 자신에게 상처를 줬던 친구들을 만나러 떠나는 '순례'를 시작해요. 그 '순례'가 특별한 점은 그들을 만나는 약속을 미리 잡지 않는다는 점인데요, 작품에서 쓰쿠루에게 약속을 잡지 않는다면 그곳까지 떠나 친구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데 왜 약속을 잡지 않느냐고 물어보죠. 이 질문에 대해 쓰쿠루는 '떠나서 만나지 못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이 그대로 괜찮다'라는 식의 답을 해요. 순례가 그런 것 같아요. 종착지에 도착하지 못하더라도, 출발할 때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떠났다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는 게 순례니까요. 나현 님의 이번 여행이 순례 같은 여행이 되길 바라봅니다. 


p.s. 프랑스에도 포토 마통이 있는데 생긴 것도 똑같네요? 아마 같은 업체에서 만드나 봐요 ㅎㅎ 파리 지하철 정기권엔 사진을 붙여야 하는데요, 그래서 저는 심야 비행기를 타고 아침 8시에 샤를 드골 공항에서 피곤에 찌든 채 정기권에 붙일 포토 마통을 찍었어요 ㅋㅋㅋ 아직 그 사진이 집에 있는데 지금 봐도 너무너무 못생긴 사진이지만 그때의 제가 떠올라 좋으면서도 싫네요. 


좋은 글 항상 감사합니다~



RE: [나니의 빨간수첩] 3. 무작정 걷다 보니

2022년 7월 19일 15:40 

- from M


나현 님 좋은 시간 보내고 계신가용!

전 업무시간에 땡땡이치면서 '나니의 빨간수첩'을 읽고 있습니다!ㅋㅋㅋ

아냐 일 없다고 하면 일 들어오니까 취소할게요 퉤퉤퉤퉤퉤


신청해두고 아직 못 읽고 있었는데 벌써 3편이라니..!

1편부터 읽을까 하다가 가장 최근 소식이 더 궁금해서 3편부터 열어보았어요ㅎㅎ


근데 뭔가 신기한 게, 오늘 회사 대리님이랑 점심을 같이 먹었는데 이 분 곧 결혼하시는 분이거든요.

내년에 신혼여행으로 유럽 여행을 생각하고 계시다는데 거긴 밤늦도록 해가 지지 않는다고 말하시는 거예요.

저는 정말 극지방 쪽만 그런 줄 알았는데.. 신기하다- 하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문득 나현 님 이메일이 떠올라서, 그것도 3편이 끌려서 딱 열어봤는데

아니 글쎄 저녁 9시 반의 노을 사진이 있지 뭐예요?


'나니의 빨간수첩'과 저 사이에는 뭔가 있는 게 분명해요.(아님)

ㅋㅋㅋㅋㅋㅋ 저는 요게 너무 신기해서 답장을 주저리주저리 쓰고 있습니당ㅎ


/


그리고, 수첩과 메일에 적혀 있는 몇몇 문장들이 머리에 계속 맴돌아요.

'내 여행이, 내 존재가 누군가를 불행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독일은 말이 통하지 않고 내가 이방인인 곳'

'살아지는 삶에 파묻혀버리지 말자고, 살고 싶은 삶을 조금이라도 지켜가자고'

이런 문장들이요!


뭐라 정의할 수 없는 마음과 생각이 들게 하는 문장들이에요.

이렇게 계속 곱씹게 되는 문장들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다가 어느 순간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의미를 알게 되는 순간이 있더라구요! 나현 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잘 씹어보고 있겠습니당ㅎㅎ

건강하고 재미있는, 안전한!!(중요!) 여행되시길 항상 바라요~!~!!


나현 님 메일을 보면서 임나현이라는 사람이 너무 멋있고 더 좋아지고 있어요!

나중에 또 주저리주저리 답장을 써볼게요ㅎㅅㅎ



무작정 보내보는 짧디짧은 답장 // RE: [나니의 빨간수첩] 3. 무작정 걷다 보니

2022년 7월 20일 01:45 

- from D


안녕하세요 나니 님! 레터 정말 잘 읽고 있습니다 :)

항상 메일 답장을 보낼까 말까 고민하는데, 고민을 오래 하다 보면 고민에 지쳐 손에서 탁 놔버리는 스타일이라 못 보내고 있었지만..ㅎㅎ 이번에 받은 여행 레터는 답장을 안 보낼 수가 없었어요!


최근엔 계절학기며 종강이며,, 여행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이 보냈어요. 질문을 읽고 나서야 생각해보니 외롭다는 생각이 틈을 비집고 나올 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외로움은 심심함과 등을 맞대고 있는 감정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해요. 심심하다는 건 결국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는 거고 그렇게 흩어져버린 시간들을 바라보면 허무해지니까요. 여럿이 있어도 외로워지는 건 그 시간이 심심해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그래서 저는 외롭다는 생각이 들면 제가 심심함에서 벗어날 수 있게 일단 몸을 움직여보는 편이에요! 산책을 한다던가, 라면 하나를 끓이더라도 유튜브로 새로운 라면 조리법을 찾아 따라 해 본다던가...

외로움이 심심함이라고 생각하면 좀 귀엽지 않나요!


예전에 어디서 읽었는데, 일반인들에 비해서 예술가들은 평소에 눈을 2~3배 더 많이 움직인대요. 세상을 더 구석구석 바라보느라요. 그렇지만 예술가가 아닌 사람들도 여행을 떠나면 예술가 못지않게 눈을 움직이지 않을까요? 평소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여행을 하며 깨닫는 건 그런 까닭이지 않을까 해요. 우리 모두 평소와는 다른 시선이 내 눈에 장착된 게 느껴질 정도니까요. 시선의 힘은 대단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나니 님이 보내주시는 여행 레터를 읽다 보면 마음에 비어있는 줄도 몰랐던 어느 곳이 충만해지는 걸 느껴요..! 이 말이 조금 부담되실 수도 있으려나요? 나니 님의 시선으로 보이는 베를린이 좋아요. 

오늘은 어쩌다 보니 해가 질 즈음에 메일을 읽었는데요, 보내주신 노을 이야기를 읽으며 해를 바라보니 왠지 오늘따라 노릇노릇해 보이더라구요.(노릇노릇하다는 표현 너무 좋아요ㅠㅠㅜ)

오늘도 독일에서의 즐거운 여행 되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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