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공간 비일상적 경험의 순간
아파트는 팍팍하다. 발걸음 소리를 내는 것도 두렵고, 망치질은 더욱더 두렵기만 하다. 내 머리 위에 있을 그 누군가의 존재도, 내 아래 누워있을 얼굴 없는 그 누군가의 존재도 때론 공포가 되기도 한다. 모여 산다는 집합적 공간임이 분명하지만 아파트는 그 어느 장소보다 분리되어 있음을 느낀다. 이런 팍팍한 삶의 공간은 도시라는 거대한 발명품 아래 당연시되고, 우리는 그 속에서 반복되는 일상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믿고 살아간다.
그나마 테라스 혹은 베란다가 없었다면 아마 더욱더 고독한 공간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거주하기를 바라는 공간은 경관이 트여 바라볼 대상이 불분명한 그렇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이 세계의 혹은 자연의 모습이 보이는 곳이다. 그런 테라스에서 만큼은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 나만의 시간이자 그 무엇인가 불분명한 네트워크와 결합되었다고 믿는다.
페이스북은 불편하다. 이건 흡사 나랑 연결된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다 들어낸다. 때문에 때론 더욱더 가식적이고 꾸미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트위터의 세계를 나는 좋아했다. 산 정상에서 외치는 메아리 같은 느낌의 소통은 저 산 넘어의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불명확한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나는 나는 혼자가 아니라고 안도하고 다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이 외침은 때론 메아리가 되어 되울려 퍼지기도 하고 나 역시도 나의 산속 어딘가에 숨겨놓기도 했다. 아파트에서 테라스는 이런 공간이다. 누군가에게 메아리 치진 않지만 산 정상과 같이, 맞은 편의 아파트에도 누군가가 나와 길게 한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서로를 위로하고 나를 안심시킨다. 경계에 서있다는 것은 일탈에 다가선다는 것이고, 그렇지만 나는 뛰어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문 너머에 세상이 아니라 중간 세상이 있다는 것으로 나를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갈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때문에 팍팍한 아파트의 삶에서 이곳은 무척 중요한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