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공간 비일상적 경험의 순간
우리의 삶은 지리멸렬하다. 텔레비전의 주인공처럼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스펙터클하지도 않다. 우리는 환상을 꿈꾸고 갈망하는 통속적인 동물이다.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진 환상의 이미지 속에 우리를 구겨 넣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 그 열망은 우리가 인식하진 않았지만 이미 각인되어 있으며, 우리가 살아가고 싶은 판타지의 공간이라 믿는 이 이미지는 먼 훗날 비로소 건축하기을 시도할 때 표면으로 드러난다. 때문에 우리가 사는 진짜 공간의 외형은 허무하고 유치하기 끝이 없다. 그것이 우리의 진짜 모습이기 때문이다.
절제된 콘크리트 덩어리가 만들어낸 모던한 교회의 모습도 결국 그들이 고귀하다고 믿는 직접적인 십자가를 달고서야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서양식 오더가 우리의 주거공간을 장식할 때 비로소 우린 품위가 있는 특정 계급에 도달했다고 믿는다. 내면에 숨겨진 열망의 표출이 건축의 표피에서 고형화 되어 딱딱하게 굳어진 상태로 된 것이 일반건축물이 가진 껍데기의 모습인 것이다.
나는 통속의 이 판타지가 꼭 나쁘다고 보지 않는다. 이것은 새로운 자극이다. 색다른 자극은 기존 정보와 다른 관계를 만들어내고 유형을 창의 할 수 있게 한다.
나는 사실 대단하거나 유명한 건물을 관찰하지 않는다. 공간의 미학이나, 형태의 아름다움에서 한 참을 벗어난 일반건축(건축하기가 시도되지 않은 비건축)을 관찰한다. 이것은 우리 집 바로 뒤에 우두커니 서 있는 움직일수 없는 저 거대한 존재에 대한 것이다.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다.
상가
쇼핑몰은 내부적으로 열린 공간을 추구한다. 극도록 절제된 외관을 통해 몇 개의 입구로 사람을 흡입하고, 내부에서 머무르는 동안 시간과 공간의 변화의 인지하지 못한 채 방황하기를 원한다. 열린 공간 열린사회는 거대한 쇼핑몰 안에서 완성되는 듯하다. 오직 이 쇼핑몰에서 우리는 개방된 열린 공간을 받아들이고 함께 소비할 것을 부추기며, 무의미의 산책을 할 것을 강요받는다. 에스컬레이터로의 이동을 통하여 반복적으로 같은 공간을 다르게 탐험한다.
반면 상가는 도시의 길을 통해 접근하고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작동한다. 내부에서의 이동은 엘리베이터로 한다. 또한 쇼핑몰과는 반대로 외부는 투명한 유리로 덮여있다. 투명한 유리를 통해 내부가 공개되고, 다시 정보를 담은 기호로 덮어버린다. 이는 스스럼없이 모든 옷을 다 벗어 버린 뒤 이상한 다른 옷을 입고 있는 것과 같다. 이것이 현수막과 간판이다. 상가의 건축은 이 현수막과 간판이 만들어낸다.
왜 우리는 간판과 현수막을 외부에 붙여대는 것일까? 이미 모든 것을 들어내어 놓고선,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행여 모를까 봐 우리는 이것저것을 써서 몸에 붙인다. 하지만 이는 외부로 향한다. 상가들이 밀집한 상업거리를 향하여 자신의 존재를 들어내고자 한다. 쇼핑몰이 현대 도시에서 암적인 존재로서 모든 도시의 콘텍스트를 흡수할 때, 상가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 몸무림을 친다.
춤추는 상가의 간판은 오늘도 점점 앞으로 돌출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