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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 건축 놀잍ㅓ Jul 29. 2015

옥상, 일상의 경계

일상의 공간 비일상적 경험의 순간

현대인은 도시를 배경으로 매일 특정 공간 속에서 살고 일하며 그 사이를 이동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 반복되는 삶의 여정 사이에서 발견되는 활력소 같은 공간들이 있다. 이곳은 비록 정식 공간은 아니지만 만들고 남겨진 잉여의 공간들이거나, 도시계획으로 인하여 잃어버린 공간, 사용하고 버려진 공간들이다. 때로는 과격하고, 한편으로는 날 것의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속에 숨겨진 본질을 쉽게 마주할 수 없었을 뿐이다. 나는 이러한 공간과 건축을 B라 부른다. 정식 건축이 되지 못한 상태 혹은 저렴한 B급의 건축이기 때문이다. 비건축에세이는 바로 이 일상 속 공간을 관찰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나는 이 B를 통해 아이디어를 제공받고 이에 대한 오마주를 건축 방법론으로 사용한다. 때론 과격하고 날것인 그것에서 새로운 가치와 형태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비건축에세이는 나의 일상에서 마주치는 B의 가치를 다시 들여다보는 관찰의 툴이자 상상력의 원천이다. 도시의 건축이 일상이라는 배경 없이는 성립될 수 없는 존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일상의 관찰을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일상 건축의 가치를 다르게 바라보고 좀 더 나은 건축과 도시를 위한 비건축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비, 건축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으로부터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에 그 잠재력이 있다.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일상의 오브젝트가 비일상의 환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비건축이다.



옥상


어린 시절 살던 집은 불법으로 여러 번 증개축이 된 B급의 주택이었다. 여기서 20살이 될 때까지 살았는데, 나는 옥탑방에 거주하고 있었다. 내 방이라는 게 없던 어린 시절에 옥상은 나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나만의 공간이었다. 외부 계단을 따라 오르면 옥상 위에 집하나, 이곳에서 지내던 혼자만의 시간을 참 좋아했었다. 독립된 나의 공간이 무엇인가를 은밀하게 숨길 수 있는 여분의 틈이 되어주었기에 아마도 사춘기를 무난하게 넘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미생>에서 주요 공간적 배경은 치열하게 일을 하는 사무실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또 다른 중요한 공간은 바로 옥상이다. 잉여 공간으로 취급받으며 잡다한 것들은 보관하거나  폐쇄된 옥상이 이 드라마에서는 주인공들이 쉽게 말 못 할 이야기를 하고 때론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며 고심에 잠기거나 위로를 받기도 했었다. 극상의 중요한 결정을 하거나 고민이 필요할 때 혹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옥상은 훌륭한 배경이 되었다.


  

한국의 옥상은 초록색 방수페인트가 칠해진, 파란색 물탱크가 놓여 있는 일상 속에 숨겨진 낙원 같은 곳이다. 몽롱한 판타지가 피어나는 b급 감성 충만한 일상의 비일상의 경계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나의 옥상들.


고등학생 시절 독서실의 옥상은 독서실의 음침함을 답답함을 해결하는 공간이다. 이곳이 없다면 우리는 그곳에서 모두가 미쳐 날 뛰었을지도 모른다. 소리 나는 것이 죄악이 되는 곳에서 소리가 울려 퍼질 옥상의 존재는 필수적인 것이다.


내가 다니던 건축학과에는 5층 옥상을 개조한 강의실과 설계실이 있었고, 설계실을 통해 창문을 넘어가면 누구나 쉽게 바로 옥상으로 나갈 수 있었다. 아래를 내다보면 움직이는 학생들을 보며 멍하니 있다 보면 나는 마치 신이 된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 설계실에서 200분의 1 모형을 만지다 내려보면 흡싸 이것 역시 내가 만들고 있는 모형은 아닌가 몽롱해지는 것이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옥상에 나 홀로 몽환에  취해지는 해를 보던 24살의 그립다.


명절마다 내려가는 마산 집에는 마음 한구석엔 괜스레 불편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많은 친척들로 방들이 북적되면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꼭 옥상으로 올라가 있었는데 묘하게도 20센티 콘크리트를 경계로 이곳은 고요한 바다가 되어버리고 불어오는 바람과 낮은 집들 사이로 건너편 옥상에도 누군가 올라오는 것이 보이면 왠지 모를 웃음도 나오고 했었다.


내가 서울에서 살던 방은 상가주택의 옥탑방이었다. 1-2층으로 된 방을 두 개로 쪼개어 별도로 세를 주던 그 집의 테라스에서는 강남대로와 양재 시민의 숲이 함께 보이곤 했었다. 내가 서울에 살고 있다는 것을 매번 담배 피우는 그 시간에 나는 소리로 그리고 내 눈으로 확인했었다. 그 집이 춥고 깨끗하진 않았어도 옥상이 있었기 때문에 외롭진 않았다. 따지고 보면 난 반지하보단 옥상이라는 신념으로 최상층에만 5년을 살았다. 여름날 무덥고 겨울날 바람 때문에 더 추워도 무엇인가 바라볼 대상이 있다는 것, 그것이야 말고 옥상의 가장 큰 매력이었기 때문이다.


상하이에서 처음 살았던 교외의 낮은 아파트에도 옥상이 있었다. 빨래를 널기 위한 조그마한 공간지만  그곳에 올라서면 지붕 너머로 하늘과 구름이 제법 잘 보였다. 낮은 다락을 지나 좁은 문을 열어요 갈 수 있던 그 옥상은 흡사 앨리스의 구멍을 지나 다른 세상에 도착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방해받지 않는 어떤 자유를 느끼고 했었다.


이처럼 나도, 마음속에 무언가 답답함이 있을 때 캔커피 하나를 품에 끌어안고 천천히 움직이는 도시의 풍경이나 자연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위로를 받았었고 일상으로 다시 되돌아오곤 했었다. 옥상은 일상과 일탈의 중간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일상의 공간 위에 있는 이곳이 외부를 바라보며 잠시 눈을 돌리지만 우리는 여전히 일상의 영역 안에 존재하기 하고 일탈은 그 일상의 공간을 뛰쳐나간 것이라고 빗대어 보자면 옥상은 그 중간의 영역이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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