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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 건축 놀잍ㅓ Jul 29. 2015

수영장_몽롱한 구름을 가두는 하얀 네모 박스의 공간

일상의 공간 비일상적 경험의 순간

때론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그저 고요함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싶을 때가 있다. 많은 운동들 중에서 수영은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질 수 있는 운동이다. 또한 수영이라는 행위는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는 몸짓이라는 점에서 다른 것과 구별된다.  


인간이 두려워하고 무기력해지는 환경 중 하나는 바로 물이다. 그곳에서 편히 숨 쉴 수 없음에 우리는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허우적거리고 탈출하려 안간힘을 쓴다. 인간의 몸은 태초에 수영하기 위해 진화된 신체구조가 아니다. 때문에 물속을 걸을 때면 우리의 몸은 물의 저항력을 느끼며 매우 부자연스럽게 이동하게 된다.


인간은 알지 못하는 미지의 공간과 질서 속에서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곤 한다. 정제되지 않은 공간, 통제되는 않는 주변 인자들이  많을수록 우리는 더  두려워한다. 이것이 자연 속 물이 가진 본질적 이미지이다. 일상 바로 옆에서 존재하고 있지만 비일상적 환경인 것이다. 마치 우리의 시공간 속에 평행하게 놓여 다른 중력이 작용되는 공간처럼 말이다.  


이 두려움의 대상을 아이러니하게 한 장소에 가두어 두고 그 물의 저항을 이용하여 운동을 한다. 이것이 수영장의 본질이다. 통제되지 않는 주변 환경인자를 제거하고 정제된 공간 속에서, 물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순수하고 부드러운 다른 대상으로 전환시킨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물이 빛에 반사되어 몽롱한 하얀 구름이 되고 그 속에서 우리는 헤엄치며 나아가는 곳이 된다. 수영장의 건축적 본질은 빛이 나는 네모 박스에 담겨져 있는 하얀 구름으로 치환될 수 있다.


 물을 사용하는 것에서 우리는 종종 SPA와 같은 곳으로 생각한다. Spa는 목욕, 즉 몸을 씻고 따뜻한 물속에 잠기어 우리의 신체를 유연하게 함이다. 발가벗은 태초의 몸으로 돌아가 더러움을 씻어 내리려는 곳이다. 반면 수영장은 두려움의 대상을 극복하기 위하여 순수하고 부드럽게 정제된 물속에서 발버둥 치는 것이다. 둘의 차이는 물에 순응하느냐 극복하려고 하느냐에 따른 결과이다. 순응하고자 하는 이에게 빛과 물의 색깔은 중요하지 않다. 물이 담기는 형태 또한 자연과 가까이, 때론 특이한 형태로  디자인되는 것이다. 수영장은 물이 최대한 통제되어 있어야 한다. 때문에 수영장은 반듯하게 네모난 공간과 얼마만큼 앞으로 나아가는지 판단하기 위한 단위 유닛으로서의 파란색 타일이 깔리고 헤엄치는 소리가 고요하고 깊도록 높은 천장을 갖는다. 물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햇빛이 들어오거나 강한 인공조명을 사용하여 조도를 높인다.


또 Spa와 확연하게 구분되는 점은 공간의 확장성이다. 우리는 수영복이라는 수영에 접합하도록 디자인된 특수한 옷을 입고 헤엄친다. 그곳에서는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곳이다. 반면 스파는 특별하게  디자인된 복장이 없다. 되도록 가능하다면 발가벗는 체로 머무르려고 하는 공간인 것이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나아가야 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수영장의 양 끝은 무한히 확장 가능한 유형적 특징을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수영장은 일상의 삶에 숨겨진 작은 평행우주와 같다. 내려오는 햇빛과 부서지는 하얀 물 사이에서 두둥실 떠 있다 보면 나의 존재는 물의 일부분이 되어 구름 속에서 나아가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소리는 물에 반사되고 높은 천장을 따라 퍼져버려 뭉개진다. 꿈꾸고 있는  것처럼 경계 없이 흘러가는 물속에서 이러다 나는 저곳 어딘가에서 고개를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좋은 호텔 수영장이든, 동네 후미진 수영장에서든 관계없이 우리는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수영장의 유형적 가치는 일상을 벗어나는 일탈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사실 일상의 벗어나는 일탈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여기 내가 한상 머무르는 곳에서 오늘도 일어나고 있다.


 예술의 궁극적 목적은 반복되는 일상을 탈피하여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을 부여하는 것이라면, 건축의 예술적 가치는 바로 일상 속에서 일탈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삶과 큰 괴리가 없는 지점에서 모든 사람들이 아는 여기저기에서 일어나는 비일상의 경험을 구체화하고 그것을 반복 가능한 경험이 되도록 붙잡는 것이다. 음악의 본질적 형태가 일상 속에서 존재하는 소리의 화음을 악보에 가두어 다시 재생하고자 하는 곳과 같은 이치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다시 내 주위를 둘러보자 다른 우주로 통하는 웜홀은 없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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