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유한 식물 누나 Jun 08. 2021

스파티필름 너의 그늘을 환하게 밝혀줄게

  

백기 들어! 피스 릴리


식물은 나름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스파티필름은 연민, 공감, 치유의 뜻을 가지고 있다. 꽃말은 세심한 사랑. 서양에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에게 선물하는 식물로 알려져 있다.


Image by Adriano Gadini from Pixabay


스파티필름의 하얀 꽃은 마치 백기를 든 것처럼 보여 이제 그만 전쟁을 멈추자는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스파티필름의 또 다른 이름은 Peace Lily. 하얀 깃발을 든 것처럼 피어난 꽃이 아름답다. (사실 하얀 깃발은 포엽이고, 진짜 꽃은 도깨비방망이처럼 보이는 부분이다)


상실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에게 스파티필름을 선물함으로써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을 전달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게 아닐까 싶다. 힘내라는 공허한 말보다 위로가 되는 선물일 것도 같다.



어두운 시간을 함께 통과하며


스파티필름을 왜 상실과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선물할까? 위에서 언급한 이유 말고도 나름 생각을 해보았는데, 그건 아마 스파티필름이 어두운 곳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이라서가 아닐까?  


스파티필름은 빛이 부족한 공간에도 적응하여 살아가는 대표적인 음지 식물이다. 햇빛이 직접 닿지 않는 깊고 구석진 공간에서도 실내조명의 힘을 빌려 잘 자란다. 햇빛을 완전히 차단한 상태에서도 15일 이상 견딜 수 있다고 하니 대단한 생명력이 아닐 수 없다.  


누구나 마음이 칠흑같이 어두운 시간을 통과할 때가 있다. 그럴 때에도 집안 어두운 구석에 놓인 스파티필름처럼 강건하게 살아있을 수 있다면... 마침내 은은한 빛이 들고 꽃을 피우는 순간을 기다릴 수 있다면... 그래서 스파티필름은 조용한 위로, 세심한 사랑인가 보다. 무책임하게 힘내라는 말보다 어두운 시간을 함께 통과하는 친구같다.



너의 아픔을 크게 소리쳐


스파티필름은 표현력이 풍부해 물이 부족하면 잎을 축 늘어뜨린다. 그제야 놀라 얼른 물을 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기 있는 모습을 되찾는다. 나도 죽은 듯 주저앉은 스파티필름 때문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증산작용이 활발한 봄, 여름에 물이 빨리 마르기 때문에 아차 하는 사이 스파티필름이 잎을 축 늘어뜨리는 경우가 많다. 이때 양동이나 대야에 물을 받아 화분채 푹 담가두면 수시간 이내 회복한다. 드라마틱한 표현력, 회복탄력성 모두 놀라운 식물이다.



식물이든 사람이든 표현을 해야 안다. 혼자서 마음에 꼭꼭 눌러 담아두면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다. 스파티필름은 '나 물 좀 줘!'하고 큰 소리로 말해주는 것 같아 늘 '성격 참 시원시원하네'하고 생각하게 된다.


'마음속으로만 끙끙 앓지 말고 너의 아픔을, 너의 목마름을 큰 소리로 말해줘!' 그게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스파티필름을 선물하는 또 다른 의미가 아닐까?



마음까지 깨끗이 정화해 줄게


스파티필름은 공기 정화 기능 역시 탁월하다. 나사(NASA)에서는 우주선 내 공기 정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식물의 공기 정화 능력을 실험해 순위를 매긴 바 있다. 스파티필름도 공기정화식물 순위 10위에 랭크되었다.


특히, 벤젠, 아세톤, 암모니아 등 생활 속 오염물질을 제거하는데 효과적이라고 한다. 성장 속도가 빠른 식물은 호흡량이 많아 더 많은 오염 물질을 흡수하기 때문에 공기 정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는데, 스파티필름이 바로 그런 케이스인 듯하다.


스파티필름은 폭풍 성장의 아이콘이라고 할 정도로 너무 잘 자라고, 공기정화 능력까지 탁월하다. 우리 마음도 먼지 낀 유리창을 내다볼 때처럼 답답할 때가 있는데, 스파티필름이 켜켜이 먼지 쌓인 마음까지 깨끗이 정화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뱀의 머리 같은 꽃이라고?  


스파티필름은 실내 공기정화식물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사계절 꽃을 볼 수 있다. 주로 봄, 가을 개화하지만, 겨울에도 실내에서는 꽃을 피우기도 한다.


나는 늘 스파티필름 꽃이 우아하고 곱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느 날 책을 읽다가 일본에서는 천남성과(스파티필름도 이에 속한다) 식물의 꽃이 꼭 뱀이 머리를 쳐들고 있는 것 같이 보여서 '살모사풀'이라고 부른다는 글을 보았다.  



부처가 앉아있는 대좌의 후광을 연상시켜 불염포라고도 불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뱀의 머리라니! 이 글을 읽은 후로는 안시리움의 꽃도 스파티필름의 꽃도 자꾸 살모사 머리처럼 보여 마음이 잠깐씩 불편하다. 역시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다. 어느 쪽으로 보는가는 본인의 마음에 달린 거겠지.


완벽하진 않아도 스파티필름처럼 내 마음을 잘 표현하고, 어디서나 적응 잘하고,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잊을만하면 예쁜 꽃을 수시로 피워올리는 것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소소한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도 괜찮겠다.


가끔 뱀머리라고 이유 없이 욕하는 사람이 나타날지도 모르겠지만... 세상 다 그런 게 아닐까... 모두에게 부처님의 후광이 비칠 수는 없는 법인 가보다.


이전 02화 믿거나 말거나 고사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