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행운보다 지금의 행복
너의 이름은?
필레아 페페의 풀네임은 필레아 페페로미오이데스다. 하지만, 식물에 대해 아는 척 할 때 말고는 풀네임을 말할 기회는 없다고 봐야 한다. 필레아 또는 페페라고 많이들 부른다.
필레아 페페는 많은 사랑을 받는 식물인 만큼 많은 별명이 있다. 생각해 보면 꼭 귀엽고 사랑받는 아이들이 별명도 여러 가지다.
서양에서는 coin plant, UFO plant, pancake plant 등으로 불리는데, 다 잎의 모양을 보고 지은 이름들이다. 식물의 잎을 보고 동전이나 팬케이크, 심지어 UFO까지 떠올렸다니 전 세계 식집사들의 사랑과 관심이 대단한 모양이다.
동전을 묻어두면 부자가 된다?
필레아 페페는 Chinese money plant, 중국 동전풀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Chinese가 붙은 이유는 필레아 페페의 원산지가 중국 남부지역 히말라야산맥 일대이기 때문이다.
필레아 페페는 동전 모양의 동그란 잎이 부를 가져다준다고 해서 중국에서는 금전운과 행운의 식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화분의 흙에 동전을 묻어 두면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나의 행운을 한번 시험해 보는 것도 좋겠다.
행운목 꽃이 피면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행운이 온다느니, 금전수가 재물운을 불러들인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흔하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나는 엄청난 부자가 되었어야 할 것 같은데...
이번엔 흙에 동전까지 묻어본다. 웬만하면 500원짜리로 묻어볼까 하다가 식물의 뿌리가 자라는데 방해가 될까 봐 100원짜리로 바꿨다.
나처럼 동글동글하게 살아!
필레아 페페를 수년 동안 키워본 식집사로서 '행운의 식물'임은 확신하지 못해도 '행복을 주는 식물'은 분명한 것 같다. 페페를 키우는 동안에도 작고 소소한 불행들이 나를 찾아왔고 또 지나갔다. 옛 지혜의 말대로 모든 건 흘러갔다.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진 못해도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은 대충 알 것도 같다. 그건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을 확실히 알고 그 방향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웬만하면 동글동글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동전, 팬케이크, UFO 등등을 닮았다는 동그란 잎은 때때로 날이 잔뜩 선 나에게 동글동글 예쁘게 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바라만 봐도 힐링이 되고, 동글동글 기분이 좋아진다. 새 잎이 생겨나거나 잎사귀에 물방울이 또르르 맺힐 때마다 내 마음은 조명이라도 켠 것처럼 환해지는 것 같다.
우정과 나눔의 식물
필레아 페페는 '다산의 여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번식력이 왕성한 편이다. 화초 식구 늘리기는 물론이고 친구나 지인들에게 식물 나눔을 해도 좋다.
어느 책에서 봤는데, 필레아 페페는 원래 서양에서 상업적으로 유통되지 않았고 아는 사람들끼리 나눔을 통해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돈으로 사고 파는 식물이 아니라 우정을 통해 손에서 손으로 전해졌던 식물이라는 뜻이다.
이게 다 필레아 페페가 다산의 여왕이라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행복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여기에 담겨 있다. 화초 식구가 늘어가는 기쁨과 나눔의 즐거움까지 알게 하니 행복을 가져다주는 식물임엔 틀림없다.
Unsplash의feey뜻밖의 행운보다 오늘의 행복을!
도무지 꽃을 피울 것 같지 않은 식물이 어느 날 갑자기 세상 향기로운 꽃을 피웠을 때, 시들시들했던 식물이 생명력을 되찾아 파릇파릇 생기를 뿜어낼 때 우리는 적지 않은 감동과 행복을 느낀다.
작은 화분 하나 키우기 시작했을 뿐인데 일하다가도 문득 그 작은 식물이 생각나고, 물을 줄 생각에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한층 빨라질 때 우리는 사랑을 주는 법을 배운다.
결국 이런 소소한 행복과 사랑들이 쌓여서 행운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을 때 어느 날 갑자기 행운이 짠~하고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행운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찾아온다'는 말의 뜻은 이런 거겠지.
나는 오늘도 뜻밖의 행운보다는 오늘의 행복을 믿는다. '행운을 주는 식물'보다는 '행복을 주는 식물'이라고 믿고, 오늘도 가만히 너를 들여다본다.
Unsplash의Xinyi Zh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