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너 때문에 더럽게 힘들다 - 10편
나는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다.
웬만하면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생각했고,
조금 곤란한 일쯤은 내가 참고 넘기면 된다고 여겼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예술의 가치를 ‘밥 한 끼 값’ 정도로 여기기 시작했다.
“내 얼굴 좀 그려줘, 밥 한 번 살게!”
그림을 배워본 적 없는 사람들은 가볍게 웃으며 말한다.
하지만 그 한마디가,
내 안에 오랜 시간 쌓여온 무게를 가볍게 무시해 버린다.
나는 고2 때부터 입시미술을 시작했다.
고3, 재수를 거쳐 서울 대치동 입시학원까지,
고시원비, 학원비, 재료비…
엄마의 등골을 뽑아가며 미술을 했다.
대학교 입학 후 곧바로
200명이 넘는 입시반 중 상위 실력자로 강사 제안을 받았고,
그 이후 단 한 해도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리고, 가르쳤다.
서울 4년제 미술대학 등록금은 의대 다음으로 비싸다.
나는 그 안에서 그림을 그렸고, 판화, 회화, 입체, 미디어까지
안 해본 게 없을 만큼 공부했다.
그렇게 살아온 나에게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그림 잘 그리시잖아요, 그냥 간단하게 하나만~ 밥 살게요.”
피카소가 한 말이 떠오른다.
카페에서 냅킨에 2분 만에 그린 낙서.
“2만 달러입니다.”
“2분 만에 그렸잖아요.”
“아뇨, 60년 걸렸습니다.”
나는 피카소는 아니지만,
나도 26년째 그림을 그리고, 23년째 가르치고 있다.
예술은 길고, 손을 놓으면 퇴보한다.
항시 깨어 있어야 하는, 노동 이상의 삶이다.
요즘은 예술교육 기획자로도 활동하다 보니
이제는 이런 말도 듣는다.
“이제까지 하신 게 많으니, 안 쓰는 프로그램 있으면 좀 주세요.”
마치 맛집 레시피라도 되는 양.
“남는 거 있으면 하나만~”
그 한마디에
수년간의 시간과 고민, 나의 노력이
너무도 가볍게 무시당하는 기분이 든다.
나는 ‘착한 예술가’로 살아왔다.
항상 친절하고, 성실하고,
누군가에게 유익한 사람처럼.
그래야
다음 프로젝트가 들어오고,
소개가 들어오고,
관계가 유지되니까.
하지만 이제야 깨닫는다.
그 ‘착함’이 내 진짜 모습을 가리고 있었다는 걸.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나는 얼마나 많은 ‘싫음’을 삼켰을까.
얼마나 많은 감정과 생각을 눌러왔을까.
이제는 말하고 싶다.
나는 더 이상 착한 예술가로 살고 싶지 않다.
불친절하겠다는 게 아니다.
그저 나의 시간을, 나의 작업을
존중받고 싶을 뿐이다.
내가 만든 기획, 내가 그린 그림,
내가 전한 교육에는
수많은 시간과 실패, 공부와 연습이 녹아 있다.
그 모든 것을
‘밥 한 끼’나 ‘남는 거’쯤으로 취급당하고 싶지 않다.
이제는 ‘착한 예술가’가 아니라,
‘진짜 나다운 예술가’로 살고 싶다.
다음 편 예고
〈좋아서 시작했는데, 일이 되어버렸다는 것〉
– 좋아서 시작했던 그림이,
어느새 버텨야 하는 일이 되어버린 순간들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