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한, 1월 1일이 공휴일이 아닌 나라는 사우디가 유일하다. 서양력을 거부한다면, 이슬람력 1월 1일은 쉬는가? 아니다! 이 역시 휴일이 아니다. 사우디의 공휴일은 종교 휴일인 이드 알 피트르, 이드 알 아드하와 사우디 국가 건국일뿐이다. 아주 깔끔한 나라다. 건국의 역사가 짧아도 이래저래 국가 지정 휴일이 더러 있기 나름인데, 사우디는 전혀 없다. 사우디의 시간은 길게 늘어진다. 사실 시간은 흐르는 것이다. 계속. 몇 년도의 마지막 날/ 새해 첫날이라는 의미부여는 맺음이라는 것에 가치를 부여한 인간들의 가름일 뿐이다. 사우디에선 그런 맺음이 적어도 12월 31일엔 없다.
터키 초창기에 ‘해바라기’가 나의 감정을 지배하는 소재였다면, 사우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시간’이다. 사우디에선 쇼핑을 잘 안 하게 된다. 내가 쇼핑하고 싶은 시간과 쇼핑이 준비된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우디의 기도 시간은 낮 시간의 쇼핑을 어렵게 만든다. 하루 다섯 번의 기도가 끝나는 오후 8시 이후가 그들의 쇼핑 시간이다. 하지만 나에게 8시 너머의 쇼핑은 매우 생소하다. 사우디의 쇼핑 시간과 나의 쇼핑 시간은 맞지 않는 것이다.
아랍과 터키, 이슬람 권의 저녁식사 시간이 왜 늦는지 이제야 알았다. 모든 것이 이들의 기도 시간과 연관된다. 해 질 녘에 시작되는 마그렙과 이샤의 시간 간격이 좁기 때문이다. 한국 기준으로 5시부터 8시까지는 한창 식사를 준비하고, 저녁을 먹는 시간이지만, 이슬람권에서는 한창 기도를 준비하고 드려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 약 3시간 동안 기도가 두 번이나 있기 때문에 충분히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이샤가 끝나는 대략 8시부터 이들의 저녁 준비가 시작되니 실제로 9시나 10시가 되어야 식사가 가능한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저녁식사의 늦음을 이상하게 여기고 때로는 모른 체 비난하기도 한다. 이슬람은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그들만의 배꼽시계를 만든 것이다. 모든 사회는 그들만의 배꼽시계를 만든다. 우리네 농경문화에서는 해가 지고 나면 휴식이 시작되므로 해질 녘에 식사 준비가 들어가서 약 7시~8시 사이에 식사를 마치게 되는 문화를 가졌다. 우리네 배꼽시계는 저녁 7시에 울리는 것이고, 사우디인들의 배꼽
시계는 저녁 9시에 울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