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가 아니더라도 대부분 우리나라 소설책에는 뒷부분에 역자의 작품 해설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작품 해설을 읽을 때마다 그는 약간의 긴장과 희열 혹은 또 다른 혼란으로 인한 좌절을 경험하는데, 이는 그가 어릴 때 교과목 문제집의 뒤편에 실린 ‘정답지’를 대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과 어느 정도 일치함을 본다면 ‘정답을 맞혔다’는 안도감과 희열이 들고, 다른 관점과 초점의 얘기를 하고 있는 작품 해설을 대할 때면 더욱 혼란스럽고, 며칠 혹은 몇 달에 걸친 그의 독서가 부정당하는 듯한 좌절에 빠진다. 하지만 독서의 내공을 기른 지금, 어느 정도 text의 독립성이라는 금과옥조로 맷집을 기른 그는 독서 후의 생각과 정리가 역자의 주장과 다르다고 해서, 그렇게 심하게 좌절하지 않는다. 그는 이 다름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데리다 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작품 해설]을 읽어가며 어렴풋하던 중요 개념들이, 역자의 정제된 용어로 ‘차르르’ 소리를 내며 차분하게 머릿속에 가라앉는 느낌을 받았다. 한번, 아니 몇 번의 독서를 해도 모든 이해의 개념을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가 떠올린 개념은 분명하지 않은, 안개에 싸인 것이지만, [작품 해설]을 읽음으로써 좀 더 분명하고 정제된 개념으로 가라앉는다. 이렇게 [작품 해설]은 독자의 뿌연 생각들을, 혼탁한 개념들을 정제해 주는 장점이 있다.
그는 역자 송병선 님의 [작품 해설]이 그의 독서 후의 감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다만 역자는 좀 더 보르헤스를 ‘포스트 모던’으로 기울인 듯한 인상이다. 그의 독서도 이와 비슷했다는 것을 여러분도 아실 것이다. 하지만 그는 [바벨의 도서관]에서 ‘포스트 모던’으로만 보르헤스를 색칠해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는 망치를 휘두르는 파괴의 모습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 풍성한 다양성의 세상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우아한 희망’을 품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바벨의 도서관]에서 보여준 ‘우아한 희망’의 행성은 ‘틀뢴’처럼 다양성으로 가득한 풍성한 세상이고,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에서 보이는 시간의 그물망으로 엮인 환상의 세상이다. 즉, 그가 읽은 보르헤스는 포스트 모더니스트의 파괴적인 모습과 희망과 가능성의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구도자의 모습을 모두 간직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