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각론- [남부]

by YT

‘서문, 1956년의 후기’에서 보르헤스는 [남부]를 ‘내 최고의 단편’으로 꼽았고, ‘보이는 서사 외에 다른 방식으로도 읽힐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이런 보르헤스의 직접적인 가이드에 따라 이 단편이 왜 최고인지, 또 작가가 말한 다른 방식은 무엇인지를 발견하기 위하여 꼼꼼히 다시 읽어 나갔다.

‘다른 방식’을 쫓다 보면, 자연스럽게 첫 번째 이유가 드러날 것이다. [남부]를 읽으며 그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픽션들]을 구성하는 두 권의 작은 소설집 속 마지막 단편들은 서로 통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소설집의 대표 소설인 마지막 단편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에서 중심 주제인 ‘시간의 갈라짐’은 [남부]에서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끌어들여 소설 속에서 실현된다. 실제 39세의 보르헤스는 소설 속 달만처럼, 열어 놓은 창에 머리를 부딪혀 패혈증으로 사경을 헤맨 경험이 있다. 그는 당시의 혼란스러운 심리 상황에서 패혈증보다, 결투 속에서 죽는 다른 상황을 상상했었다. 이런 그의 상상은 소설 속에서 [천하루 밤의 이야기](아라비안 나이트, 천일야화)를 매개로 환상의 세계로 인도된다. 이 단편에서 [천하루 밤의 이야기]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속 토끼처럼 주인공을 상상, 환상의 세계로 안내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사고를 당한 이유도, 열병을 앓으면서도, 남부로 가는 기차 안에서도, 결투의 직전에도, 이야기의 중요한 분기점에는 [천하루 밤의 이야기]를 읽으려고 하는 그가 있다. 그래서 달만은 남부로 떠나는 기차여행에서, 마치 과거로 여행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 달만이 아플 때 상상했던 순간이 현실에 펼쳐지는 것으로, 현실과 상상이 결합된 것이다. 여기서 그는 시간의 갈라짐을 깨달았다. 아픈 현실 속 달만은 회복되어 남부를 여행하고, 계속 아픈 현실 속 달만은 상상 속에서 모르는 이들과 결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어떤 것이 현실인지, 어떤 것이 상상 속 상황인지 혼란스럽게 변한다. 하지만 문학적으로 이 혼란은 서사의 풍성함을 만들어 낸다. 주인공 달만에게서 시간은, 마치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처럼, 두 방향으로 분화된다. 그리고 두 개의 시간은 순차적인 것이 아니라 동시적인 것이다. 이런 시간의 문제는 그가 기차를 타기 전 방문한 카페의 고양이를 쓰다듬는 장면에서도 그의 연속의 시간과 그 경험이 주는 고양이의 시간이 유리로 구분되어 있는 듯하다는 느낌을 통해 은유된다. 계속 흐르는 그의 시간 속에 타인(고양이)의 시간이 훤히 볼 수 있는 유리를 통해 붙은 것이다. 그래서 만약 달만의 시간이 계속 선택에 의하여 분화된다면,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에서처럼 거대한 시간의 그물망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기억이 살아나는 공간으로, 모든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혼란스러운, 하지만 보다 풍성한 세상이고 보다 환상적인 세상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머리 한구석이 밝아 오는 것을 느낀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안내로 만난 보르헤스로 이르는 ‘환상문학’이라는 그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보르헤스의 시간의 그물망은 필연적으로 풍성한 환상을 낳을 수밖에 없고, 이것은 마르케스에 닿게 되는 것이다. 보르헤스의 한 면은 포스트 모던과 닿아 있지만, 다른 한 면은 남미의 환상 문학과 닿아있는 것이다.

그는 이제 왜 보르헤스가 [남부]를 자신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남부]는 그가 전달하고 싶었던 시간의 문제, 풍성함(환상)의 문제를 온전히 드러내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다른 단편 들에서 시간과 풍요의 문제는 이론적인 건조한 설명 투로 다뤄졌지만, [남부]에서는 소설의 형식으로 제대로 풀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그는 이 [남부]를 자신의 최고 작품으로 스스로 평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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