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카겔
2019년 말, 전역을 석 달 정도 앞두었을 때였다. 부대에서 당직 사관님께 코로나19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19에 대한 속설이 난무했다. 당직 사관님은 나에게 “중국에서 무슨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했다더라, 박쥐를 먹어서 생긴 질병이라더라, 전염성이 엄청나다더라, 공기로도 전염된다더라, 영화 <감기> 본 적 있느냐, 그게 현실이 되었다.”라는 식의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는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나는 부대 안에 있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금세 내 삶까지 침투했다. 부대에서는 병사들에게 마스크를 지급했다. 언제나 마스크를 쓰고 다니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훈련할 때도, 체력 단련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답답함에 불평을 하는 우리에게 중대장님이 말했다.
“지금 밖에서는 마스크를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다. 감사하게 생각해라! 알겠나?”
우리가 아무리 갇혀있어도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믿으란 말인가. 마스크를 못 구한다니. 나중엔 코를 너무 많이 풀어서 휴지도 못 구한다고 하겠네. 개인 정비 시간에 엄마와 통화를 했다. 엄마는 말했다.
“아들 잘 있지? 마스크는 있어? 밖에는 마스크를 못 구해서 아주 난리다.”
휴가를 나가기 이틀 전, 전 장병 휴가 통제를 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믿을 수 없었다. 부모님 선물도 이미 다 사두었는데…….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다. 휴가 복귀를 하는 인원들은 격리가 되었다. 풋살도, 농구도 하지 말라고 했다. 체력단련실도 못 가게 했다. 아빠는 군대가 가장 안전하니 거기 콕 박혀 있으라고 하셨다. 어떻게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할 수가 있나. 그래도 시간은 흘러 전역 날이 되었다. 코로나19로 못 나간 휴가 덕분에 한 달 정도 일찍 전역할 수 있었다.
바이러스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다시 복직한 학교엔 아이들이 오지 않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 집합 금지 등 다양한 방역 조치가 시행되었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이 코로나19에 걸렸다. 나도 두 번이나 걸렸다. 무지하게 아팠다.
코로나19는 경제적으로도 큰 타격을 주었다. 많은 사람의 생업이 무너졌다. 공연계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대형 콘서트부터 작은 클럽 공연까지 줄줄이 취소되었다. 함성과 열기로 가득해야 할 무대는 침묵과 한숨으로 가득 찼다. 고리는 늘 가장 약한 곳에서 끊어진다. TV에 출연하는 가수들은 그나마 견딜 만했지만, 공연장을 위주로 활동하는 인디밴드들은 눈앞이 막막해졌다. 생계 때문에 무대를 떠난 밴드들이 많았다.
2021년. 코로나바이러스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매년 8월에 개최하던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은 일정을 10월로 바꿨다. 당시엔 10월쯤 되면 세상이 괜찮아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끈질긴 바이러스는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비대면 유튜브 라이브 방송으로 진행되었다. ‘비대면 락 페스티벌’이란 단어는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차가운 온천수’, ‘어두운 형광등’만큼 우스꽝스러웠다.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 열리는 ‘달빛축제공원’의 무대는 우리 집 거실 창문으로 보였다. 그곳에서 연주하는 모습도 흐릿하게 볼 수 있었다.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 한 번 가보자. 가까이 가면 들릴 수도 있어.”
부푼 마음으로 공원에 갔다. 무대는 통제되어 있었다. 최대한 무대 가까이 갔다. 그곳에서 ‘실리카겔’을 처음 봤다. 아내가 말했다.
“저기 베이스 치는 애 나랑 초등학교 같은 반이었어.”
호기심이 생겼다. 그들의 무대를 집중해서 봤다. 관객도 없는 무대 위에서도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민원을 의식해서였는지, 볼륨이 너무 작았다. 노래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중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1년 뒤, 2022년. 말도 안 되는 비대면 온라인 락 페스티벌이 아닌, 진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 열렸다. 3년 만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나와 아내는 3일권을 끊었다. 8월의 무더운 날씨, 한낮의 락 페스티벌은 더위와의 싸움이었다. 첫째 날 크라잉넛, 넬과 함께 뛰며 우리 체력은 이미 많이 소진되었다. 둘째 날은 해가 지면 천천히 갈까 고민했다. 그런데 타임테이블에서 실리카겔이 보였다. 오후 1시 40분 시작이었다. 올해는 진짜 제대로 한 번 보고 싶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오후 1시, 가장 더운 시간에 집을 나섰다. 공연장에 도착하니 이미 땀이 범벅이 되었다. 우리는 땀을 식힐 맥주를 먼저 샀다. 우리는 맥주를 홀짝이며 천천히 무대로 걸어가고 있었다. 저 멀리 실리카겔이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몇 초 뒤, 첫 곡 ‘No Pain’의 기타 리프가 울려 퍼졌다. 처음 들어보는 곡이지만, 아내와 나는 단숨에 흥분했다.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거 완전 락이네!’. 맥주가 흐르지 않게 팔을 최대한 고정하고, 빠른 걸음으로 무대쪽으로 갔다. 아무도 없던 1년 전 비대면 무대와 달리, 수많은 관객이 있었다. 실리카겔은 순식간에 무대를 장악했다. 사운드뿐만 아니라 퍼포먼스도 좋았다. 떼창을 하는 팬들도 많았다. 내년 락 페스티벌부터는 그들을 대낮이 아닌, 해 질 무렵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https://youtu.be/qg40imnWXG8?si=QLXcdmUOFQW-1PAR
내가 만든 집에서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
소외됐던 사람들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
우리만의 따뜻한 불, 영원한 꿈, 영혼과 삶
난 오늘 떠날 거라 생각을 했어
날 미워하지 마
No Pain, No Fail. 음악 없는 세상
Nowhere, No Fear. 바다 같은 색깔
No Cap, No Cry. 이미 죽은 사람 아냐, 사실
<No pain – 실리카겔>
범인(凡人)은 깊은 예술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치마를 입은 그들의 모습이 내 눈엔 여전히 우스꽝스럽다. 나는 그들이 쓰는 가사가 무슨 뜻인지 당최 모르겠다. 보컬 ‘김한주’의 희번덕한 눈이, 나는 가끔 무섭다. 그들의 뮤직비디오나 퍼포먼스가 기괴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분명한 건, 실리카겔은 중독성 있는 밴드다. 그들의 사운드는 죽인다. 2024년 유튜브 뮤직에서 내가 1년 동안 가장 많이 들은 음악 1위는 실리카겔의 No pain이었다.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아티스트 TOP 5에도 실리카겔이 있었다.밴드 붐이 오려면 밴드 음악이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야 한다. 스타성 있는 밴드가 있어야 한다. 실리카겔은 충분히 가능성 있는 밴드다. 그들의 독창적인 사운드, 강렬한 비주얼, 실험적인 퍼포먼스는 이미 대중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최근 가수 ‘카더가든’ 씨가 ‘제1회 스쿨오브 락 가요제’를 열었다. 밴드를 꿈꾸는 어린 학생들에게 공연할 무대를 제공해주었다. 미래의 록스타들은 무대에서 마음껏 본인의 끼를 뽐냈다. 실리카겔은 이날 축하 공연을 했다. 학생들은 열광했다. 눈물을 보이는 학생도 있었다. 보컬 김한주는 학생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넸다.
“저희도 여러분처럼 10대 때 밴드부 경험이 있어요. 그때 즐거웠던 감정들이 뭔지 너무 잘 알고 있어요. 오늘 여러분 덕분에 그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어서 여러분께 너무 감사해요. 다시 이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미래의 록스타에게 가장 큰 희망은 현재의 록스타이다. 그들은 지금 밴드 붐을 기다리는 수많은 이들을 기대하게 한다. 나는 믿는다. 밴드 붐은 반드시 온다고. 그리고 실리카겔은 그 선두에 설 것이라고.
https://youtu.be/4dioshgq6k4?si=8IeYUm7shlYBJ99m
Ryudejakeiru
백만 가지 재앙 속에서도
성실하게
지킬 뿐이라고
내 입속에 태양이 들었다고
오오-
<Ryudejakeiru – 실리카겔>
<비둘기 추천 실리카겔 플레이 리스트>
1. No pain
2. Tik Tak Tok
3. Ryudejakeiru
4. APEX
5. Ryudejakeiru
6. Kyo181
7. Budland
8. I'MMORTAL
9. Andre99
10. Desert Ea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