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입니다

암 환자가 되다

by 비둘기

금요일 오전, 학교에서 수업 준비를 하는 중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간호사님께서 말씀하셨다.

“환자 분, 추가검사 문자가 자꾸 오셔서 많이 불안하셨죠? 검사 결과가 나왔다고 해요. 원래 진료가 다음 주 수요일인데, 혹시 오늘 바로 오실 수 있을까요?”

“네, 오늘 오후에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결과가 나왔으면 지금 알려주면 되는 거 아닌가?’.



수업을 다 마치고, 급히 조퇴를 했다.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택시 기사 아저씨께서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셨다. 우리나라 국토는 호랑이의 모습인데, 지금 허리가 끊어져서 힘을 못 쓰고 있다. 하지만 무작정 이 허리를 다시 이어 붙이는 것은 위험하다. 자동차에도 범퍼가 있듯, 남한과 북한 사이에도 완충 장치가 있어야 한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비무장지대이다. 따라서 남북한이 통일을 하더라도 비무장지대는 유지해야 한다.

‘아, 그렇군요..’



택시 기사 아저씨의 이야기를 말없이 듣다 보니 병원에 도착했다. 지난주에 왔던 이비인후과로 가서 진료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간호사님이 내 이름을 불렀다. 병원 대기실에서 진료실로 다섯 걸음 정도를 걷는 동안 마음속으론 한 단어만 되뇌었다.

‘제발, 제발, 제발’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교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환자분, 혈액암입니다.”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도 의대의 커리큘럼 속에 녹아 있는 것일까. 나는 아무렇지 않을 수 없었다.

“교수님, 혹시 죽는 병인가요?”

“치료해야죠. 이 쪽은 제 전공이 아니라서 자세히 말씀은 못 드립니다. 혈액종양내과에서 더 자세히 검사받으실 겁니다.”

“오늘 할 수 있나요?”

“다시 예약 잡으셔야 합니다. 밖에서 기다리시면 항암 간호사님께서 안내해 주실 겁니다.”



충격적인 결과를 듣고, 혼이 나갔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잠시 후 간호사님께서 몇 장의 서류를 주셨다. 산정특례 대상자 신청 서류라고 하셨다. 산정특례는 중증질환 환자에게 국가에서 치료비의 95%를 지원해 주는 제도이다. 슬픔도 잊고 열심히 서류를 작성했다. 작성을 마치자 간호사님께서는 내 병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대표적인 혈액암이 백혈병이 있는데, 이건 림프종이라는 다른 종류의 혈액암이에요.” 이어서 림프종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는데,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궁금한 건 오직 하나였다.

“저, 살 수 있나요?”

“림프종이 워낙 종류도 많고 사람마다 상황이 달라서 제가 섣불리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다음 주에 더 자세한 검사 마치면,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실 거예요.”

간호사님께서는 정답을 말해주셨지만, 내가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다. 평소에 하나마나한 말을 하는 것도, 듣는 것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살 수 있을 거예요!’라는, 세상에서 가장 하나마나한 말을 듣고 싶었다.



작성한 서류를 제출하러 원무과를 갔다. 데리러 오기로 했던 아내를 병원 1층에서 만났다. 눈을 제대로 마주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서류를 내야 한다고 말하며 눈을 피했다. 산정특례 서류를 원무과에 제출했다. 10분 정도 걸린다고 의자에 앉아서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하셨다. 그렇게 아내와 나란히 병원 의자에 앉았다. 이제 아내에게 사실을 말해야 했다.

“나 암 이래.”

담담하게 대답하고 싶었지만, 눈물이 폭풍처럼 터져 나왔다. 평소에 눈물이 많은 아내는 울지 않았다.

“괜찮아. 같이 이겨내면 돼.”

나는 울고, 아내는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렇게 10분이 지났다.



나는 이제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암 환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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