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좀 살려주세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이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하느님,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늘 제가 필요할 때만 당신을 찾는 것 같아서 죄송할 따름입니다만, 그래도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한 적은 많습니다. 당신을 맹렬하게 공격하는 과학자의 책에 빠져든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조차도 하느님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늘 당신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당신이 보기에 부족한 점도 많겠지만, 그래도 당신을 믿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 애썼습니다.
얼마 전 병원에서 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참 뜬금없지요. 제가 올해 3달 전만 해도 풀코스 마라톤을 달렸던 사람입니다. 두 달 전에도 하프 마라톤을 완주했죠. 가진 것은 없지만, 건강만큼은 자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암 이라니요.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와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옆에 앉아있는 아내.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 누나, 친구들. 특히 아내와 부모님께는 너무 미안하더군요. 결혼하고 아내에게 제대로 해준 것도 없습니다. 제가 어지럽히는 집을 치우느라 아내는 이미 충분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제 병간호까지 해야 하나요? 부모님은 어떻고요. 부모님은 저에게 평생 무엇도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딱 하나 바라셨던 게 있다면 제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는 겁니다. 그런데 그거 하나 해드리지 못하는 아들이라니. 그런 불효가 있나요? 제 암 소식을 들으면 부모님은 분명 우실 겁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당신은 정말 하늘에 계신 겁니까?
저는 도무지 당신의 뜻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하느님이라면 없는 편이 차라리 낫겠습니다.’
제가 뱉은 저 말 때문에 혹시나 당신이 노하셨을까 봐. 그래서 저를 벌하실까 봐. 그날 밤,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너무나 두려워서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습니다.
그날 이후, 하루가 정말 소중해졌습니다. 매일 걷던 거리도 참 아름다워 보입니다. 깔끔하게 자른 머리도 정말 마음에 듭니다. 몇 년 동안 미루던 책장 정리도 했습니다. 책은 뭔가 버리기가 아까웠는데, 과감하게 중고 서점에 팔아버렸습니다. 이렇게 쉬운 걸 그동안 왜 못했을까요. 책장도 정말 깔끔해졌고, 5만 원도 벌었습니다.
그 돈으로 아내와 이틀 연속 영화도 봤습니다. 어제는 <하이파이브>, 오늘은 <소주 전쟁>을 봤는데, 두 영화 모두 볼만합니다. 하느님도 한 번 보시길 바랍니다. 너무 바쁘셔서 모두 보기 힘드시다면 <하이파이브> 먼저 보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게 더 재밌었거든요.
아내와 처음으로 나노블록도 맞췄습니다. 집중할 대상이 생기니 눈물 흘릴 시간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근데 처음이라 조금 오래 걸렸네요. 톰과 제리를 만들었는데, 귀여워서 마음에 듭니다.
저에게 남은 삶이 어쩌면 그리 길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하루를 헛되이 보낼 수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암 환자가 된 마당에 정말 어처구니없긴 하지만, 올해 들어 가장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느님 혹시 이게 당신이 저에게 가르쳐주고 싶으셨던 것인가요? 제 생애 이보다 강렬한 가르침은 없었습니다. 당신의 가르침을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하느님.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