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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TheBall Dec 01. 2022

제일 흉악하고 악랄한 괴물, 그 이름은 권태

40세를 사회중년생으로 부를 수 있을까?

절대적인 나이보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여 매일이 비슷해진 사람을 '사회중년생'으로 부르기로 했다.


사회중년생이 되자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지 않게 되고,

가끔 나도 모르게 우울해지거나 얼굴이 굳어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기분의 이유를 찾아내려고 고민이 길어지곤 했다.


왜 기분이 안 좋은지, 슬럼프나 번아웃 증후군처럼

어떤 종류에 의한, 어떤 이유에 의한 기분 나쁨은 아닌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계절을 탄다느니 날씨 때문이라느니 하는 변명이 통하지 않았다.


슬럼프나 번아웃 증후군으로 전문가에게 진단을

받았다 해도 그게 무슨 소용인가

병명을 알았다고 해서 병이 저절로 낫지 않는 것처럼

내가 느끼는 안 좋은 기분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뿐이다.


내가 주위에 슬럼프임을, 번아웃 상태라는 것을

밝혀봐도 그렇게 크게 위안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결국 다시 제자리에서 자신의 쳇바퀴를 고심해서 굴려야 하니. 


그러던 와중 모 교수님의 책에서

슬럼프는 곧 게으름 또는 나태라고 하는 것을 봤다.

다른 말로 나태에 빠져 있는 주제에

슬럼프로 포장하지 말고 정신 차려라 이런 글이었는데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만

나는 그게 또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어쭙잖게 슬럼프, 번아웃 같은 단어를 모아다가

나를 감싸도 도움 되지 않을 거

그냥 정신이나 차리라고 시원하게

욕을 한 바가지 들은 느낌이었다.


예전에도 어떤 글에서

이상하게 위로가 되는 게 있었는데

우연히 보들레르의 <독자에게>라는 시에서 본

아래와 같은 문구였다.

제일 흉악하고 악랄하고 추잡한 괴물
그 이름은 권태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회사에 들어와서

매일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더 이상의 위기감이나 흔들림 없이 포만감에 사로잡혀 

서서히 달궈지는 냄비 속의 개구리 같다고 스스로 얘기를 많이 했었다.


권태와 나태 따위의 단어에 이상하게도 위로를 받았던 건

그때가 어떤 상황인지 몰랐다가

한순간에 알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권태라는 것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제3의 존재로

나에게서부터 떨어트려 놓고 보니

기분이 후련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마치 나는 잘못이 없고

그 권태라는 괴물 놈만이 잘못인 것처럼.


나태는 게으름

권태는 지루함이라고

쉽게 써놓고 내려다보니

괴물을 물리치는 쉬운 방법은

현재의 상황에 게으름과 지루함을 타파할 것을

가져다 놓으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앞으로도 스스로 권태로움을 느끼고

어느 순간 나태해져 기분이 안 좋아졌다면

또 그놈이 찾아왔구나, 게을러졌구나,

지루하게 느끼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더 색다른 것을 찾아서 해보려고 한다.


불멍, 물멍처럼 멍 때리는 것이 머리를 식혀주는 방법이라고 한다면

상대적으로 삶을 활성화시키는 방법은 새롭게 찾아봐야 한다.

나를 포함한 권태로운 사회중년생을 위하여.



아래에는

보들레르의 시 <독자에게> <권태> 중

일부를 남겨본다

 <독자에게 中>      -샤를 보들레르-
  허나 승냥이, 표범, 암 사냥개,
  원숭이, 독섬섬이, 독수리, 뱀 따위
  우리들의 악덕의 더러운 동물원에서,
  짖어대고, 포효하고, 으르렁 대고 기어가는 괴물들,
 
  그중에도 더욱 추악 간사하고 치사한 놈이 있어!
  놈은 큰 몸짓도 고함도 없지만,
  기꺼이 대지를 부숴 조각을 내고
  하품하며 세계를 집어삼킬 것이니,
 
  그놈이 바로 〈권태〉! - 뜻 않은 눈물 고인
  눈으로, 놈은 담뱃대 물고 교수대를 꿈꾸지.
  그대는 알리, 독자여, 이 까다로운 괴물을
  -위선의 독자여,- 내 동류(同類)여,- 내 형제여!
  <권태 中>                       -샤를 보들레르-
낮고 무거운 하늘이 덮개처럼
오랜 권태에 사로잡혀 신음하는 정신을 짓누르고,
지평선 사방을 감싸며
밤보다 더 우울한 검은빛을 퍼붓는다.

땅이 축축한 지하 독방으로 바뀌자,
거기서 희망은 박쥐처럼
소심한 날개를 벽에 부딪히다가,
썩은 천장에 제 머리 박으며 가버린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빗발은
거대한 감옥의 쇠창살을 닮고,
소리 없는 더러운 거미 떼가 와서
우리 뇌 속 깊은 곳에 그물을 친다.

갑자기 종鐘들 성나 펄쩍 뛰며
하늘을 향해 무섭게 울부짖는다,
악착같이 불평하기 시작하는
정처 없이 떠도는 망령처럼.

북소리도 음악도 없는 긴 영구 행렬이
내 넋 속에 서서히 줄지어 서고,
희망은 패하여 눈물짓고, 잔인하고 포악한 고뇌가
기울인 내 머리통에 검은 깃발을 꽂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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