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옷으로 주스를 마신다

by 홍화

사람에게는 오감이라는 것이 있다.

보는 것의 '시각', 듣는 것의 '청각', 맡는 것의 '후각', 맛보는 '미각', 그리고 만지는 '촉각'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방법 중 가장 확실한 건, 그때의 사진을 보는 일이다.

사진 한 장 속의 하늘빛과 표정만으로도, 그날의 바람과 냄새가 되살아난다.

그 시절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이 든다.


하지만 나에게는 조금 다른 타임머신이 있다.

바로 '노래'다.

비가 오는 쌀쌀한 날씨에도 그 노래만 들으면, 나는 여전히 제주도의 따뜻한 햇살 아래 서 있는 기분이 든다.


결혼 촬영을 위해 아내와 함께 제주도를 찾았던 그때의 기억이다.

우리는 둘 다 사진에 자신이 없어서 스튜디오 촬영은 부담스러웠다.

'그래, 제주도 자연 속이라면 우리도 조금은 자연스럽게 나올지도 몰라'.

그 순진한 믿음 하나로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새벽부터 시작된 엄청된 강행군이었다.

그날 새벽부터 메이크업에 드레스와 정장을 챙겨 입은 뒤, 제주도 바닷가와 숲 속, 들판, 마지막에는 갈대밭까지 돌았다.

처음에 바닷가와 숲 속까지는 햇빛이 들어 따뜻했는데 들판쯤 가니 정말 추위에 벌벌 떨며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다.


다음날 아침, 목 아래가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와 정말 강행군이었구나'

그제야 실감이 났다.


그래도 기분이 홀가분했다.

큰 산을 하나 넘은 사람처럼, 남은 일정은 오롯이 여행의 몫이었다.


사진 다 찍고 남은 2박을 제주도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어보자고 아내에게 제안을 한 가지 했다.

"이번 여행 내내 한 곡만 반복해서 듣자. 나중에 그 노래만 들어도 이 순간이 계속 떠오르게끔."


그리하여 우리의 제주도 여행은 단 한곡으로 채워졌다.

'릴러말즈 - Trip'

그 음악이 흘러나오는 동안 우리는 결혼 준비하면서 웨딩사진 촬영이라는 굉장히 큰 일을 끝낸 홀가분한 마음으로 바다를 보고, 햇살을 맞고, 웃고, 즐기며 여행을 다녔다.


그러고 시간이 흘러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 노래를 들을 때면, 정말로 그때 제주도에서 드라이브하면서 맞았던 햇살과 바람이 피부에 느껴진다.

노래는 그렇게 '청각의 타임머신'이 되어 있었다.


퇴근길에 다시 'Trip'을 틀어본다.

순식간에 제주도의 하늘빛이 떠오른다.

그리고 문득 구좌의 한 당근주스 가게가 생각난다.

100% 당근을 갈아 만든 주스였다.


맛은 기억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주스를 쏟아서 내 옷이 다 마셔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시 옷으로 당근주스를 마신다.

그 얼룩 같은 기억이 이상하게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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