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20대의 10년과 30대의 10년이 똑같은 10년으로 느껴지지가 않을 때가 많다(당연히 10대는 가장 긴 시간으로 느껴진다). 물리적으로는 같은 10년인데 왜 다르게 느껴질까에 대해서 40이 넘고서 내린 결론은 나이별로 느끼는 '시간의 속도감' 이었다. 어른들이 흔히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말씀하신다. 30대에는 30킬로 40대에는 40킬로, 50대에는 50킬로의 속도로 시간이 간다고 한다. 그 말씀처럼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가니까 짧게 느끼나보다 그러고 살고 있었다.
오늘 오후엔 오랜만에 동네길을 걸었다. 도로가에 심어진 은행나무의 노란 은행잎이 바닥에 참 많이 떨어져 있었다. 올 가을에 은행잎을 제대로 본 게 처음이다. 그런데 그게 나무에 붙어 있는 잎이 아니라 바닥에 우수수 떨어진 잎이다. 이렇게 많이 떨어질 동안 나는 은행잎이 초록색일 때도 제대로 본적도 없고, 그것이 노랗게 변하는 것도 본 적이 없었다. 이제서야 본 거다. 아주 흔한 풍경을 너무 오랜만에 보면서 함께 걷던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기야, 걸으니까 보이는게 많네, 이제서야 단풍구경 하네~차를 가지고 다니니까 이런 풍경도 잘 못보고 지나친거 같아. 그러고 보니까 내가 운전을 하고 차를 가지고 다니면서부터 추억이 줄어든 거 같아. 추억이 많았던 시간들은 대부분 내가 걸으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했던 시간들인 것 같아. 그런거 같지 않아?"
"음.. 그러네~"
대학 4학년 졸업을 앞둔 나는 겨울 방학에 아무 생각없이 운전면허를 땄다. 그런데 차도 없고 공부하는 시간을 연장해 놓은 상태였으니 면허는 장농면허로 10년을 채웠다. 그러다 결혼하고 작은 아이가 생기고부터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따로 내 차가 있었던게 아니라 남편차를 조금씩 운전하는 정도였지만, 애 둘을 데리고 다니려면 운전정도는 꼭 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연습했다. 그리고 내차를 갖게되면 두 아이를 멋지게 태우고 다니는 엄마이고 싶었다. 그러다 차곡차곡 돈도 모아서 내 차를 갖게 되니 너무 행복했다. 아주 비싼 고급차가 아니어도 남부러울 게 없었다. 운전할 수 있다는 게 좋았고, 두 아이를 태우고 다니는 즐거움도 쏠쏠했다.
내차 운전 10년의 역사는 광주살이와 함께 했다. 처음 광주에 와서 살게된 집이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 역과는 멀었고, 마트나 편의시설들도 먼 그런 곳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자차운전은 더 중요한 문제였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운전 경력을 광주에 살면서 채웠다. 그렇게 운전경력 10년 & 광주살이 10년이다.
엄마 곁을 떠나서 산 그 어떤 도시보다 오래산 도시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광주가 많이 낯설다. 더 짧은 시간을 살았던 곳들도 문득 문득 떠오르고 추억할 때가 많다. 심지어 광주에 오기 직전 살았던 남편의 첫 근무지였던 아주 작은 도시는 3년정도 머물렀을 뿐인데도 그리울 때가 있다.
오늘 알았다. 내가 왜 아직도 광주가 낯설기만 한지. 나는 광주에서 두 다리로 천천히 걸으며 본 풍경이 별로 없다. 심지어 동네를 도는 버스도 몇 번 타본적이 없다. 그러니 찬찬히 여유있게 광주를 느껴 볼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운전을 할 수 있어서 내차가 있어서 너무나 편하고 좋았지만, 그 만큼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놓쳐버린 것들이 많았음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걸으면서 자꾸 시간을 느껴야 겠다. 시간에는 속도만 있는게 아니고 보고 만져보고 느껴야할 부피와 질량도 있음을 오늘에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