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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달래 Jun 28. 2024

마늘진에 손이 아려! (제주살이 9)

울며 까네

제주살이도 며칠 안 남았다.

시간이 마치 물 흐르듯이 흘러간다.

쉬면서 느낀 거는

하는 일 없이 살아도 바쁘게 살아어차피 24시간이 흐른다는 것이다.


막상 이곳을 떠나려고 하니  그동안 지내온 날들이 스친다


이른 아침에 산방산 앞에서 사계바다까지 1킬로 산책길, 숙소 앞 돌담길에 이름 모를 야생화와 벌들,

대정리 노을길의 돌고래들도 그리울 것 같다.

군산오름의 한라산 전경과  엉또 폭포로 올라가는 귤밭산책, 샛별오름의 노루의 만남도 송악산둘레길의 바람도, 걷는 길마다 황금빛 유채도 날 반겨주었지. 오일장에서 만난 심 좋은 고사리 파는 어르신도 아르바이트하는 동남아 처녀도 , 천혜향이 끝물이라고 봉지에 한가득 담아주신 시장 한라봉가게 어르신도 오래오래 기억될 듯하다.


1시간 남짓 달리기하며 둘러본 비바람 속의 대마도와 서귀포 모슬포항의 고등어회도 잊지 못할 맛이다.

첫날 자려다가 지네가 출몰해 놀랐던 그날 밤도, 다음날 숙소 주인이 미안한지 놀란 우리를 달래려고 그런 건지 나눠 먹자작으로 가마솥에 펄펄 우린 육개장도 꿀맛으로 기억될 것이다.


산책길에 매일 만난 마늘밭 어르신과 눈인사도 나누고 산지에서 사면 조금 더 싱싱할까 해서 밭에서 바로 햇마늘을 1접을 샀다. 몇 개 작은 알들까지 한 접은 더 우수리로 주셨다.


"바로 이 맛이지!"

밭에서 사면 덤으로 한주먹은 더 주실거란 앙큼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셨다.

제주 하면 당근, 무, 말, 각종 귤과 한라봉이 떠오르는데 걷는 곳마다  마늘이 이렇게 많이 나는 줄 몰랐다

대정리가 특히 마늘농사를 꽤 짓는 것 같다.



우수리 덤마늘조각들

딸애 손가락


마늘을 까는데  이 정도로 마늘진이 한 줄 몰랐다.

생마늘의 allcin(알리신 )이 이렇게 손가락을 화상 당한 것처럼 껍질을 홀딱 벗길 줄이야.


첫날은 얼얼

둘째 날은 붓고 뜨겁고

셋째 날은  껍질이 벗겨져 지문도 뵈질 않아

검색해 보니  '마늘화상'을 입은 것이다.

약도 없다.



 60년 가까이 살면서 이렇게 많은 양을 까보질 않아서 독한 맛은 첨 본다.


마늘 몇 알 까볼 때 하고는 증상이 확 다르다. 안 까본 사람은 말을 마시.

"엄마, 깐 마늘을 사지 왜 이렇게  쌩고생을 하는가?"

"싱싱해서 한번 사봤지 어르신도 밭에서 팔아서 캘 때 팔면 덜 힘들 것 같고 해서.."

아이도 한 30분 까다가 안 해본 일이라  어깨허리 아프다고 두 손에 묻은 덕찐덕한 진을 씻고 사방팔방에 튄 마늘 껍질들을 쓸어 모아 버린다.

그러더니  검지손가락이 아가손같이 여린 피부라 아리다고 하길래 얼음 한 개 올려 비비려고 해주었다.

"에고 도와주려다가 손 배렸네.." 하고 손사래로 물러나게 했다.

미안하고 기특했다.

너무 많아 남은 건 서울 가서 말리며 천천히 손질하기로 한다.


산지에서 애쓰시는 농사짓는 어르신들

마늘값 잘 받으셔서 애쓴 노고에 꼭 보답받으면 좋겠다  우수리로 주신 마늘 하나하나를 보며

'너는 작고 벌어지고 볼품없지만 고유의 향을 지닌 귀한  찐마늘이는구나.'

자잘한 마늘을 바라보니

내가 살아온 세월,  청춘을 지나 중년을, 이제 노후를 설계하는 나와 비슷한 처지임을 발견한다.


"딸아, 이 자잘한 마늘하고 나하고 닮은 것 같다!"

"왓~~~!?"

"시장에 내다 팔지도 못하고 우수리로나 넉넉히 주는

값이 안 나가는 거 말이야."

"그건 아니지. 엄마의 생도 나름 값이 나가는 생이지."

"그럴까? "

"엄마가  희생해서  우리를 키워 세상에 값나가게 내놓았잖소"

"이만큼 살다 보니  뭐 한 일이 그다지 없는 것 같이 초라하네"


"이제부터는 엄마는 누리고 즐겁게 살면 되는 거고  엄마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 돼. 누구의 눈치 같은 거 보지 말고!"


그동안 그랬네. 교육자 아버지의 이름에 누가 될까 봐  여자 혼자되면 젤 쉬운 게 물장사 보험 이런 거라지만 곁눈질 안 했고 남들에게 손가락질당할까 봐  아이들에게 해가 될까 봐 참고 한 길만 걸어왔네. 아이들에게 아빠의 부재를 메우려고 오버도 했네.


다음 생에 태어난다면 내 아이들의 아이로 태어나서  응석도 부리며 살아보고 싶다.

엄마노릇이라는 게 쉽지 않음을 너희도 해보면 알 걸!

상상을 하다 보니 배시시 웃음이 절로 났다.


제주의 밤이 깊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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