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길 3부작-1. 시체
오늘도 시체는 떠오르지 않았다. 수색 인력은 점점 줄어들었다. 벌써 2주가 지났다. 시체는 물론이고, 그가 어디쯤 잠들어 있는지 알 수 있는 단서 하나 떠오른 게 없었다. 한 달이 이 수색작업의 마감 시한이라고 경찰은 가망 없이 말했다.
- 앞으로 2주밖에 안 남았습니다.
- 앞으로 2주나 남았습니다.
희망을 놓을 수 없는 나의 목소리는 절망적이었다. 그를 이렇게 놓아버릴 수는 없었다. 오늘도 어제처럼 아무 수확 없이, 수색자들이 떠난 자리에 어둠이 찾아왔다. 또 하루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 나는 조용히 짙어져 가는 어둠 속에 계속 서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뽀글뽀글 수면 위로 물방울이 올라왔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곧이어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그의 몸이 수면 위로 천천히 떠올랐다. 장엄하게 곧고 반듯하게.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그의 전신이 물 위에 오롯이 떠 있었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그가 떠올랐다고. 그러나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무도 도움을 줄 수 없었다. 나는 허겁지겁 바다를 향해 뛰어들었다. 인어처럼 헤엄쳐 그에게 빠르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의 몸을 붙잡아야만 한다. 내가 온 힘을 다해 물속을 헤쳐 그에게 다가가는 동안 그의 몸은 점점 잠기고 있었다. 나는 미칠 듯이 발과 다리를 움직였다. 그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달려 나가며 그의 이름을 목 놓아 불렀다. 내가 그의 팔을 간신히 붙잡으려는 찰나 그는 물속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울부짖었다.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흥건한 물이 내 몸을 적셨다. 눈을 떴다. 꿈이었다. 축축한 아침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는 바다를 무척 좋아했다. 언젠가 선호하는 죽음의 방식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는 바다에 빠져 죽고 싶다 했다. 그래서 일부러 수영을 배우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5월의 우기, 다낭의 어느 풀빌라 수영장에서 인어처럼 헤엄치고 있던 나를 보며 와인을 홀짝이던 그가 말했다. 결혼 1주년 기념 여행에서였다. 나는 물속에서 헤엄치는 몸의 자유, 그 자유가 주는 정신적 일탈의 달콤함은 와인의 적당한 취함을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늘어놓으며 그를 설득해 보았지만 끝내 그는 수영을 배우지 않겠다고 결연하게 선언했다. 그때 내가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면, 그래서 그가 수영을 배웠더라면 이렇게 죽지는 않았을까. 나는 그 밤으로 돌아가 그의 마음을 다시 돌리고 싶었다. 제발 수영을 배우라고. 네가 수영을 배우지 않는다면 나는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정작, 그 말을 먼저 뱉은 건 내가 아닌 그였다.
-나,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그날 밤, 결혼 1주년 기념 여행, 그를 향한 뜨거운 마음이 넘쳐흘러 그의 몸을 찾던 나에게, 빗소리를 들으며 그와 한 몸이 되는 순간을 좋아하던 나에게, 내년에도 그 이후에도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하자고 고백하던 나에게 등을 돌린 채 그가 말했다. 사정없이 퍼붓던 빗소리보다 그는 더 사정이 없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가 수면등에 의존해 침실 벽 위에서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인생이란 얼마나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가.
그것도 인간의 사정 따윈 어느 순간도 봐주지 않고 아무 때나 함부로 무자비하게.
-그게 지금 이 순간에 할 소리야?
그가 진심을 말하고 있다는 걸 나는 온 힘을 다해 외면하고 싶은 마음을 움켜 잡고 겨우 물었다.
-너의 감정이 가장 높은 곳에 있을 때 너를 떨어뜨려야 했어.
최대의 충격에서 너를 버리는 게 나를 향한 최대의 벌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웃기고 있네.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봤자, 위선자, 배신자, 궤변론자에 불과해, 넌!
무너진 인생은 또다시 굴러간다.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당사자만 알 뿐이다. 다낭에서 돌아온 후 내 인생이 어떻게 굴러갔는지는 오직 나만 알 뿐인 것처럼. 그가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의 삶을 짐작할 수 없었던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와 헤어지고 한 1년 후 그날, 나는 빗소리를 들으며 홀로 호텔 수영장에서 이혼 1주년을 기념하고 있었다. 결혼 1주년 기념여행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지만 떠오르는 걸 어찌할 수는 없었다. 샤워를 하고 라커룸 문을 열었다. 휴대폰 진동음이 사정없이 울리고 있었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 나는 받지 않았다. 옷을 다 입고, 머리를 다 말릴 때까지 진동음은 멈추지 않았다. 급기야 나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질러줄 참이었다. 어디에 화풀이를 하고 싶었는데 잘 됐다 싶었다. 오늘 내 기분이 얼마나 엉망인지 쏟아내 볼 참이었다. 수신 버튼을 누르고 태세를 마친 내 귓가에 낯선 여자의 나직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이동진 씨... 전 아내 되시죠?
-......
-그가 죽었습니다. 제가 가 볼 수가 없어서...
인생이 무너지는 순간은 한 번뿐이 아니었다. 내 기억 속에서 그를 죽이려던 그날 밤, 아무리 해도 죽지 않던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소식을 전한 사람은 그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된 배후였다.
나는 그가 좋아하던 제주도 바다 앞에 서서 오늘도 그의 시체가 떠오르길 기다린다. 경찰의 수색작업은 끝났고, 누구도 찾지 않는 그의 시신은 이제 스스로 떠오르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런데, 그는 물에 빠졌지만 살아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와 헤어진 후, 반성의 의미로 수영을 배워서 물개처럼 돌고래처럼 물속을 헤엄쳐 다만 사라진 게 아닐까. 그가 남겼다는 유서는 허구가 아닐까. 그의 시체가 나오지 않는 한 그의 죽음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불과하지 않을까.
오늘 제주도 바다는 지나치게 잔잔하다. 간밤의 사정없는 파도는 온 데 간데없다. 너에게 물어볼 말이 너무 많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바다 앞에서 기다린다. 네가 떠오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