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학기 초마다 부모님의 직업을 조사했다.
직업이 무엇이며, 집에 TV 있는 사람, 자동차 있는 사람, 전화기 있는 사람...
왜 조사를 했는지는 그때도 모르고 지금도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건 농부라는 직업에 손을 들고 나면 싸하게 변하는 선생님들의 눈빛이다.
그래서 부끄러웠다.
농부라는 직업이.
잠깐 부동산을 하시기도 했지만 주 업이 농부인 아빠.
동네에는 논 농사짓는 분도 계시고 젖소 키우는 분, 황소 키우는 분 다 계셔서 학교를 가기 전에는 농부라는 직업이 꽤 좋은 직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그 직업이 싫었나 보다. 은근 무시하는 걸 보면.
그래서일까? 난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
정말 싫어한다.
내가 어른이 된 지금도 그 말에 변한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더더 확실히 느낄 뿐이다.
직업이 나의 전부를 나타내는 건 아니지만 직업은 반드시 귀천이 있다.
그리고 난 그 귀천 때문에 아빠가 돌아가신 후 더 펑펑 울었다.
지금의 내 직업이 부끄러워서.
아빠가 열심히 키워주셨는데 내 모습이 너무 보잘것없어 죄송스럽다.
더 좋은 직장에서 번듯한 자리에서 많은 월급 받고 살았더라면 아빠 가시는 길에 이렇게 미안하진 않을 텐데..
후회된다.
몇 번의 선택이.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 웃을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