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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 Oct 14. 2022

7. 다같이 혼자서

배달 일을 시작하고부터 도로 위의 오토바이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주말 저녁 시간이면 신호를 받느라 동시에 열 대 가까이 되는 오토바이들이 열 맞춰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말 한마디 섞어본 적 없고 인사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그들이지만 업계 동료라는 생각이 들어 괜시리 반가운 마음이 든다. 해가 강한 날이면 햇빛 때문에 피부 다 망가지겠다 싶고,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날이면 오늘은 일할 맛 좀 나겠구나 싶다.


사람은 자기가 관심있는 것만 보게 된다더니. 언제부턴가 자전거로 배달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도로와 인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모습에서 프로의 향기가 스친다. 음식님을 뒷자리에 태우고 조심히 빠르게 사라지기까지 막힘없는 일련의 움직임은 마치 어떤 무용의 한 동작을 보는 듯 하다.



처음 도보 배달을 시작했을 때 네이버 카페 배다트(배달과 다이어트)에서 넘치는 후기들과 달리 이 동네는 나 밖에 없나 싶을 정도로 실제 배달 가방을 메고 걷는 이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두 달 정도 지났을까. 먼지같은 비가 흩뿌리며 습기 가득하던 날이었다. 천장이 막혀있는 시장 근처로 비를 피해 걷던 중 저 멀리 낯익은 민트색 배낭을 메고 종종 걸음으로 움직이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나와 똑같은 가방을 메고 있는 다부진 체구의 남자였다. 처음 마주치는 도보 동료의 모습에 놀랍고 반가워 눈을 뗄 수 없었다. "힘드시죠, 요즘 콜 상황은 좀 어때요?"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저 마음 속으로 응원을 보낼 수 밖에 없다. 

'우리 힘내요. 힘들 때도 있지만 즐겁게 걸으면서 건강하게 일합시다. 화이팅입니다.'






배달은 온전히 혼자 하는 일이다. 타인과의 문제(있어도 꾹참고 견디다 홧병이 생겨도 어쩔 수가)없는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 이 일을 망설임없이 선택하게 된 이유에는 그 부분이 가장 컸다. 

혼자 있을 때 에너지가 충전되고 행복감이 차오르는 성향을 지닌 사람이 사회에 나가 여러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일을 한다는 것은 타인이라는 지옥을 견뎌내는 일이었다. 그게 싫어 사회로부터 도망 아닌 도망을 쳤을 정도니 남과 관계를 이루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실제는 예상보다 훨씬 더 혼자가 되는 일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일하는 내내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것도 가능했다. 하는 말이라고는 픽업을 하면서 "안녕하세요. 안녕히계세요."가 고작인데 그나마도 필요 없을 때가 있다. 많이 바쁜 곳은 입구 바로 앞에 음식만 놓여 있고 사람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 배달지에 가서도 '문앞에 놓고 가주세요' 요청이 가장 많은 편이라 역시 입 한 번 뻥끗 하지 않고 업무 수행이 가능하다. 


인간이란 존재는 원래 그런 것일까. 타인과 함께 있으면 혼자이고 싶고 혼자 있으면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존재. 

몇 시간째 입 한 번 열지 않고 열심히 걷기만 하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슬슬 혼잣말이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하 오늘은 진짜 똥콜 밖에 없네." "10분만 더 기다려보고 그냥 들어갈까."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입 밖으로 툭 튀어나온다. 인간이란 결국엔 입을 열어 말이라는 것을 밖으로 내뱉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인 것인가. 


영화 캐스트어웨이에서는 무인도에 표류한 주인공 척이 외로움을 견디다 못 해 배구공을 친구로 만들어 버린다. 윌슨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부르며 언제든 함께 한다. 살아 숨쉬는 생물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대화를 건넬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감각. 그것만으로도 척은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었다. 

윌슨이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게 되자 척이 미친듯이 오열하는 장면을 잊을 수 없다. 무인도도 아니고 머리카락 달린 배구공도 없지만 뭐든 혼자 해내며 살아가고 있는 입장에서 척이 울부짖는 모습은 남같지 않았다. 꺽꺽거리며 흘린 눈물이 내가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음을 증명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 장면이었다. 나의 윌슨은 무엇일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했던가. 홀로 살 수 없고 타인과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 관계를 이어가며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 속해야 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닐거다. 나 역시 결국엔 다시 회사라는 사회 안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걸까......


라는 생각 따위는 들지 않는다. 전혀. 가끔씩 찾아오는 허전함을 마주하는 일을 온 몸이 경직된 채 종일 타인에 둘러쌓여 지내는 일과 감히 비교할 수 없다. 만족도를 논하자면 압도적, 절대적. 늘 혼자 다니다 보니 조금 쓸쓸하고 입에는 단내가 살짝 날 뿐이다. 사람 스트레스가 없다는 것.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 일은 치명적인 장점을 지니고 있다.


직접 함께 하진 않지만 좋은 날에도 궂은 날에도 한결 같이 길 위에서 각자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그들이 있어 힘이 난다. 

다음의 무엇을 꿈꾸며 현재의 한 걸음에 최선을 다 하고 있는 모든 이들이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 또한 조금 늦더라도 끝까지 목표를 향해 씩씩하게 걸어 나가기를 바란다. 


오늘도 그들을, 그리고 나를 응원하며 새로운 하루를 힘껏 살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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