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은 모두 자신만의 작업공간이 있었다. 시험 기간이 되면 우선 책상 정리부터 하고 싶어지듯이 글 쓰기 본격 돌입에 앞서 어디서 쓸 것인가 장소를 정하는 일이 시급했다. 작가들의 작업 루틴을 검색하다보니 다들 개인 작업실처럼 사용하는 카페가 있을 정도로 의외로 밖으로 무조건 나간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대작가들도 카페를 여러군데 전전하며 작업을 위한 최상의 환경 조성을 위해 애쓴다는데 나 따위가 뭐라고 종일 방 안에서 편한 자세로 뒹굴거리고 있었던가. 무조건 나가야겠다.
집에서는 확실히 집중력이 떨어진다. 어질러진 바닥은 둘째 치고, 의외의 복병이 있었으니.
온도가 문제였다. 심신을 안정시켜주는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살짝 열어둔 창문 사이로 불어 들어오는 살랑 바람과 과하지 않은 햇살, 아이스 커피가 몇 모금 필요한 정도의 온순한 공기. 이 정도의 기후 조건을 내 방에서 만나게 되는 날이 365일 중 며칠도 채 되지 않는다는 걸 몰랐다. 지어진 지 워낙 오래된 집이라 겨울이면 외풍(feat 곰팡이)과 싸우고, 여름이면 습기(feat 곰팡이)와 싸운다. 봄과 가을은 집 안에서 거의 느낄 수 없다.
수족냉증이 심해 기온이 조금만 내려가도 금방 손발이 차가워진다. 서늘하게 식은 두 손을 목 뒤와 겨드랑이, 엉덩이 아래로 바삐 움직이며 정상 온도로 데우는 동안 집중력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그러다 수면양말, 기모바지, 패딩조끼까지 껴입고도 버티기 힘든 겨울이 오면 그제야 보일러를 틀기 시작한다. 그렇다 해도 훈훈해진 공기만큼 곰팡이의 개체수도 늘기 때문에 역시 괴롭다.
여름은 말해 뭐해다. 작년 여름 이대로 자다가 나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날, 간신히 저가 벽걸이 에어컨을 주문했다. 그러나 장기화된 백수생활에서 비롯된 깊은 죄책감으로 인해 거의 새 것 같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천장에 달린 굴비 한 번 보고 밥 한 술 뜨고의 훈련으로 마인드컨트롤하던 자린고비의 심정이 되어, 창문에 걸린 에어컨 한 번 보고 선풍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바람 한 번 느끼고를 반복하며 견뎌 낸다. 의자와 엉덩이 사이에서 데워진 후끈한 열기를 느낄 때마다 몰입이란 녀석은 점점 멀어져 갔다.
집 근처 새로 생긴 카페에 들렀다.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을 구경하다 움찔했다. 저자가 작업을 위해 들렀던 여러 카페에서의 순간들을 모아 엮은 책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내가 작년부터 생각(만)해 본 아이디어 였는데...... 놓쳤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찾아 몇 쇄를 찍었나 확인한다. 출간일이 몇 개월 채 되지 않은 시점에 2쇄라니. 내가 쓴 글도 아닌데 내 아이디어가 쓸 만 했다는 인정을 받은 기분이다. 당혹스러움이 아주 잠깐 뿌듯함으로 바뀌었다가 이내 씁쓸한 감정이 압도했다.
역시 게으름은 백해무익이다. 발전과 성장을 좀먹는다. 한 때 반짝였지만 결코 실행되지 못 했던 아이디어가 타인의 번듯한 결과물이 되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는 인생은 슬프다. 좌절과 절망만 남는다. 무언가 도전해서 실패를 한 것도 아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가만히 있기만 했는데 실패한 기분이 된다.
가만히 있을거면 생각도 아예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혼자만 너무 바쁘다. 생각을 멈추거나 느리게 조절할 수 없으니 행동이 생각을 따라가도록 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인데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내가 너무 예민한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것도 쉽지 않다. 커피원두 갈리는 소리와 믹서기 진동음, 사방에서 들려오는 말소리들. 책 읽기는 무리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뭐든 해보려 하지만 노트북을 펼친 시야가 벽이 아닌 이상 집중이 잘 안 된다. 문이 열릴 때마다 입구에서 달랑거리는 종 소리를 따라 시선은 새롭게 들어오는 손님을 향한다. 평일 낮에 모여 몇 시간씩 수다를 떠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백수가 되고서야 알았다. 카페에 온 건지 시장에 온 건지 헷갈릴 때가 많다.
카페는 안 되겠으니 도서관에 갔다. 하루의 성패는 옆자리에 누가 앉느냐에 달렸다. 움직임이 거의 없는 조용한 사람이 앉거나 자리만 맡아놓고 오지 않는 사람일 때에만 어느정도 무언가를 해 낼 수 있었다. 대부분의 날들이 실패였다.
헛기침을 1분에 한 번씩 하며 책장에게 분풀이 하듯 찢어질 기세로 페이지를 넘기는 아저씨, 쉬지 않고 다리를 떨면서 옆자리 책상까지 흔들릴 정도로 격하게 필기하는 학생, 취식금지를 무릅쓰고 야무지게 챙겨온 빵을 부스럭거리며 가방에서 몰래 꺼내 뜯어 먹으며 멍하게 벽을 바라보다 도서관 전체를 내 입김으로 날려버리겠다는 기세로 큰 한숨을 길게 내뱉는 아주머니.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이들이 참 다양하게 존재했다. 그들은 왜 하필 매번 내 옆에 앉았다.
최후의 보루. 결국 다시 돌아가 집에서 해보기. 책상 위 물건들을 다 치우니 한결 집중이 잘 됐다. 그런데 문제는 또 새로운 곳에서 튀어 나왔다. 겨우 열 페이지 지났을까. 책 몇 장 읽고나니 입이 심심하다. 밥 먹은지 한 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그저 입맛이 돋았을 뿐이다. 몇 발자국만 움직이면 먹을 것이 있다. 처음엔 '역시 집에서 하니 이런 편한 점이 있군.' 했다. 좋았다.
한 번에 하나씩만 집어 온 초코칩 쿠키 봉지는 점점 쌓여갔다. 함께 마신 커피는 2번 리필되었고, 그만큼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다. 마음은 평온했으나 점심먹고 3시간이 지나도록 뭔가를 어느정도했다 싶은 게 없었다. 딱히 놀았다 싶은 것도 아니고 책 조금 읽었을 뿐인데 어느새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어둑해진 창 밖을 보니 '저녁 뭐 먹지?' 라는 생각만 머리에 가득했다. 뱃속 거지는 책상에 앉기만 하면 꼭 나타났다. 집에서는 살 찌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쉬지 않고 먹기만 하다 시간이 다 갔다.
카페 안 된다. 도서관 안 된다. 집도 안 된다.
그럼 도대체 어디에서 되는 것일까. 글러 먹은 걸까. 글 쓰겠다며 여기까지 와놓고 고작 한다는 소리가 여기는 이래서 안 되고 저기는 저래서 안 되고. 다 안 된단다. 글 쓰고 싶다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길이 너무 험난하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예민한 성향 때문에 집중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변명이 될 수 있을까.
과연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게 맞을까?
맞다. 사실 이건 매우 어이없고 바보같은 질문이다. 고민하는 것에 있어서 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홀로 많은 시간을 투자해왔다고 자부한다. 늘 혼자 생각하고 고민하고 또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내 평생 동안 해 온 일의 전부다. 그만큼 오래 고심해 온 결과가 지금이고 여기다.
글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아직 뭐 하나 이룬 게 없고 딱히 잘 되고 있는 것도 없다. 작게라도 인정 비슷한 걸 받아본 적도 없으며 앞으로의 인생은 막막하기만 하다. 써 놓은 글은 대부분 자기혐오로 시작해 반성과 성찰로 마무리되는 전형적인 소녀의 일기장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그렇다해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살면서 지금까지 오랜 시간 집요하게 놓지 못 하고 있는 유일한 것이 나에겐 글쓰기 뿐이라는 걸 깨닫는다. 예민한 만큼 세상의 많은 것들에 눈길을 주었고 그 때마다 모든 것들에 마음을 빼앗겼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 했다.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달. 미친듯이 모으고 즐기고 빠졌다 싶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더이상 감흥이 없어지고 지겹다는 생각이 들기 일쑤였다. 그런 식의 마음 변화는 작은 물체를 수집하는 것에서부터 취미생활이나 무형의 감정, 노동의 영역까지 해당됐다.
수많은 관심사들을 물리치고 끝까지 마음 속 깊이 간직해 온 것이 책과 글쓰기라는 사실. 이 당연하고 분명한 진실을 주기적으로 잊고 산다.
맞다. 그랬었다. 평생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고 확신하던 순간이 있었다. 찰나의 흥분도 아니었고 내면의 진심을 오랜 시간 굴려 빚어낸 결론이었다. 급할 것 없다. 평생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는 몰라도 어쨌든 평생해도 좋은, 잘 하고 싶은 일을 찾았으니까.
오늘은 여기서도 안 되고 저기서도 안 되지만 다음 달과 내년은 모른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오래 앉아있을 수 있기를, 다음 달은 이번 달보다 조금 더 많이 쓸 수 있기를, 그리고내년에는 올 해보다 더 잘 쓸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