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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 Oct 23. 2022

다른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어

내가 되고 싶기에 나를 잊고 무대에 선다.

뮤지컬을 하기 전에는 발레 개인 레슨을 받고 있었다. 뮤지컬 못지않게 관심을 두는 분야인데, 아름다운 몸짓으로 가볍게 살랑거리는 발레리나의 모습을 동경했다. 나는 타고나게 뻣뻣한 데다 안무를 바로바로 습득하지 못할 정도로 둔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동경하는 건 인간의 습성인 건지 태생적인 한계를 알면서도 발레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동경하는 건 그 일부라도 뚝 떼어서 내 인생에 가져오는 걸 잘하는 사람이었다. 결국 서른이 넘어서 취미 발레를 시작했다. 


발레 선생님과는 중간중간에 서로의 이야기도 하며 재미나게 지냈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시간 외에는 공연을 올리셨는데, 선생님이 참여하는 공연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었다. 겨울과 봄 사이에 있는 회색빛의 어느 날, 선생님의 공연을 보기 위해 뚝섬역 부근에 있는 한 공연장을 찾았다. 선착순으로 좌석 선택권을 주었고 나는 선생님을 더 잘 보기 위해 맨 앞줄에 앉았다. 이윽고 공연이 시작되기 위해 불이 꺼졌다. 어둠 속에서 무용수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아는 사람이 무용수가 되어 무대 위에 있는 걸 보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외양은 익숙한 선생님의 모습일지 언대 선생님의 존재는 어느새 공연을 하는 퍼포머(performer)가 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은 그 느낌이 생경하면서도 신선했다. 그리고 동시에 경외감을 자아내기도 했다. 내가 아는 선생님이 아닌 무용수로서의 선생님에 집중하자 표정, 눈빛, 숨소리 이 모든 게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나에게 다가왔다. 선생님을 비롯한 다른 무용수들은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속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자신을 잊고 공연하는 또 다른 자신 안에 들어가는 것, 흔한 말로 '몰입'이라고 부르는 그 순간이 느껴졌다. 


자신의 원래 모습을 잊어야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당연한 통과의례 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통과의례를 제대로 겪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선 나조차도 나라는 사람의 껍질을 벗어던지기가 어려웠다. 자의식이 강했기에 내 안에는 항상 나로 들어차 있었다. 게다가 내 모습은 여러 형태로 존재했다. 이기적인 나와 이타적인 나, 관습에 얽매인 나와 자유로운 나, 이성적인 나와 감성적인 나 등 충돌하는 자아 때문에 늘 어지러웠다. 이런 나들이 진짜 나인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자존심 강한 나의 허상인 건지도 알기 어려웠다. 혼란스러운 내 안에 다른 사람들을 초대할 수는 없었다. 무대에 서려면 '나'라는 사람을 잠시 비워내야만 했다.


어쩌면 나도 나를 잊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온전한 자신이 되고자 내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너무 외로웠다. 바라지 않는 내 모습까지도 마주해서 헤집어내야 한다는 게 힘들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타고나게 생각이 많고 감수성이 풍부한 내 모습을 이제는 좋아하지만, 예전에는 종종 형벌처럼 느꼈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는 섞일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형벌을 어떻게든 감내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사는 게 또 다른 벌인 것만 같았다. 그래서 아주 잠시 잊고 싶었다. 내 안에서 그만 나와 보고 싶었다.


뮤지컬 무대에 오르기 위해 나를 벗고 배역을 입는 건 보호장구를 장착하는 느낌이었다. 뮤지컬 속 캐릭터들은 강렬하고 생생할수록 사랑받았다. 아무도 극에서 맹숭맹숭한 캐릭터와 전개를 보고 싶어 하진 않는다. 지루하게 늘어지는 삶을 견디다 허상의 세계로 도망쳐온 사람들은 공연이 극적일수록 좋아했다. 캐릭터가 살아있을수록 환호했다. 그런데 일상에서는 누군가가 자신의 넘치는 개성을 드러내면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우리 모두 똑같이 살아가는 인생 속에서 누구 하나 자신만의 무대에 오르려고 하면 끌어내리려고 애썼다. 나로서는 오르기 힘들었던 무대를 배역을 입으면 조금 더 쉽게 오를 수 있었다. 현실의 나는 나를 숨겨야 했지만, 배역 속 나는 나를 드러낼수록 환영받았다. 그렇게 무대에 오르기 위해 나를 잊었다. 


또 하나 역설적인 건 나를 잊고 무대에 오르자 내가 원하던 내가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 앞에 서는 걸 좋아하는 나, 무대에 오르는 것 자체를 행복해하는 나,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나. 현실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내 모습이 나왔다. 내가 되기 위해 나를 잊고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는 아이러니. 나는 극 속에서 이런 아이러니를 보았다. 나로서는 오를 수 없는 무대이기에 배역을 걸쳤지만, 나도 배역도 모두 무대에서 제값을 발하길 바랐다. 프로가 아니기에 아마 완전한 몰입 상태에 이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건 많은 연습을 거쳐야 가능한 일일 테니까. 하지만 공연을 보면서 동경했던 퍼포머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닮아가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 좋았다.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게 어려웠지만, 다른 사람의 일부를 내게 가져오면서 조금씩 나와 타인을 통합하게 되었다. 그렇게 진짜 내가 되는 길에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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