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실패'를 반복하다.

by 워크코드랩

내 인생 처음인 날들.

처음은 낯설고 설레고 어렵고.

희망이고, 또 아지랑이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1년에 한 번 건강검진을 하는데 그 달은 유독 몸이 좋지 않았어요.

31살 봄, 산부인과에 간 날 의사가 권하는 호르몬 검사를 간단히 마치고 돌아오는 길 문득 서러웠어요.


30살 봄, 결혼했어요.

결혼이 무엇인지 모르겠는 시기 '이 사람이면 결혼해도 되겠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진행했죠. 사실 결혼 자체는 좋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좋다고 생각한 결혼은 결혼식이란 단어 정도의 범위였을까요. 결혼이 뭔지 잘 몰랐고, 그 범위가 얼마나 큰지도 몰랐으니까요.

처음에 남편과 한 집에 사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좋은 일, 나쁜 일이 번갈아 생기는 동안 누구도 저를 보호할 수 없었고, 도망쳐 머루를 곳도 딱히 없었어요.

회사를 다니는 것도 어려웠어요. 회사를 이직한다는 건 소속이 바뀌고 내가 받는 돈의 크기가 바뀌는 것이라는 표면적인 것만 생각하고 진행한 이직이었죠. 변경된 역할에 적응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새로운 대화법에 호흡을 맞춰가야 하는 과정이었죠. 저는 뭔가를 배우거나 습득하는데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거든요.

대나무가 한 뼘 자라고 다음 성장을 위해 마디를 남기는 것처럼, 저는 제 안에 성장과 마디를 새기며 시간을 보냈어요.



검사 결과 상으로 제 호르몬 수치는 평균 30대 여성의 것과는 달라서 아이를 원한다면, 지금 당장, 빨리 시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웃기죠? 아이 낳으려고 사는 것도 아니고 지금 내 인생에서 아이가 젤 먼저가 아닌데, 왜 갑자기 지금 당장이야 무슨 소리야. 싶어요.

간단히 말해 의사의 설명은 제 호르몬 수치로 보면 저는 '폐경의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다'였어요. 집에 가는 길, 앞으로 에 대한 걱정이 시작되었고 불안해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 결혼과 남편에게 가까워진 것 같지 않았고, 회사 생활에도 여전히 적응 중 상태였어요. 의사 말에 자극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호르몬 수치, 즉 숫자 때문에 '아이를 가져야겠어' 다짐하기엔 저의 매일이 잔잔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1년 정도가 지났어요. 남편과 진지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부부로의 삶을 유지한다면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32살 가을, 아이를 가지자라고 결심한 우리에게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에 '노산'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셨나요? 지식백과에서는 '고령 임신'이라는 단어로 자동 매칭되어 결과가 노출됩니다.

'고령 임신 - 만 35세 이상의 여성이 임신을 하는 경우. [정의]만 35세 이상 여성이 임신을 하는 경우를 고령임신이라고 하며, 여러 임신 합병증이 증가하기 때문에 고위험 임신에 속한다.'

나이로는 만 35세가 아직 남았지만, 제 호르몬 수치는 이미 초과해 버렸다는 게 문득 상기되며 심장이 쿵쾅거리고 식은땀이 났어요. 갑자기 저한테 아이란 존재가 필요해졌어요, 지금 당장 말이에요.

저와 남편은 난임센터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길고 긴 대기시간을 거치며 인공수정에 실패했습니다.


살면서 실패한다는 게 선명하게 느껴진 일은 많이 없었어요. 제가 겪어온 바로는, 학교에서는 '시험을 잘 못 봄', 회사에서는 '보고하다 깨짐', 집에서는 '찌개 맛이 왜 이러지' 정도의 내가 한 행동에 대한 결과가 있는 삶이었어요. '실패'라는 결과를 들어본 적은 없었죠. 그런데 아이를 갖고자 하는 부분에서는 결과 '실패'가 그냥 난데없이 주어지더라고요? 이게 그렇게 폭력적이더라고요. 살면서 어떤 걸 하던 저라는 주체가 노력한 행동이 쌓이고 이에 따른 결과가 나오는데, 이 임신이라는 건 그렇지 않더라고요. 생각지도 못하게 임신하는 경우도 있고, 아무리 마음을 다해도 임신이 잘 안 되는 경우도 있죠. 저한테는 이 '실패' 결과를 받아들이는 건 매번 어려운 일이었어요.


해내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들어 시험관으로 방향을 틀고 병원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회사를 휴직했어요. 3개월 휴직만 허락되었습니다. '이 시간을 들여 최선을 다해보자, 그래도 안되면 받아들이자'라고 다짐했습니다.


33살 12월, 첫 번째 시험관 시술을 했어요. 기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고는, 결과 '실패'를 받았습니다. 친정엄마와 함께 들었는데, 계속 눈물이 나더라고요. 의사 선생님이 엄마에게, '따님이 이렇게 마음이 약해요? 이런 것도 이겨내지 못하면서 어떻게 아이를 키우나'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말이 끝나고 조금 뒤, 정말 놀랐어요. 저를 분리시켜 보게 되더라고요. 스스로를 안타깝게 보고 자기 연민에 빠진 제가 보였어요. 그리고 계속 그 모습이라면 저는 제게 약속한 3개월을 충실히 보내지 못할 거라는 걸 깨달았죠.

아이가 저를 선택할 수 있도록 더 좋은 모습을 갖춰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시 정신을 추스르고, 음식을 조심하고, 산책도 많이 하며 시험관 시술하는 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두줄을 확인했어요. 그렇게 제 스스로에게 약속한 3개월이 지났습니다.


난임이란 주변에 알리기에 좋은 주제는 아니었어요. 제 얘기를 다른 사람이 옮기는 것을 보고 상처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을 공개하고 회사를 잠시 쉰다, 저 스스로에게 시간을 한정시킨다는 용기를 낸 건, 너무 잘 결정한 일이었어요. 정말 많은 생각과 자책을 해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좋은 몸 상태를 유지하기 어려웠어요. 저는 무얼 하든 시간을 충분히 들여야 하는 사람이거든요. 이제와 생각해 보면 제 몸도 아이를 품고 키우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아이를 갖는데 관련한 그 낯선 처음의 경험들을 모두 겪고 받아들인 후 저는 아이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