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운 자본주의 속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다는 건 마치 한쪽에서는 목적을 찾으라고 부추기면서도, 그 목적에 다가가기가 쉽지 않은 길 위에 서 있는 기분이다.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치는데, 공허함은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왜 이런 마음이 드는 걸까?
회사에서 퇴근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지하철 안에서 무심코 손에 든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오늘의 일정과 할 일을 다시 확인했다.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이며 일했던 탓에, 마치 아무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하루를 잘 보낸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문득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공허함이 밀려왔다. "나,잘 살고 있는 걸까?" 매일 같은 루틴을 반복하고 끊임없이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도, 왜 이렇게 허전할까? 노력한 만큼 채워지지 않는 마음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이상적인 삶과 현실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일지도 모르겠다. 기대했던 결과가 멀어질 때마다 생기는 조급함과 스스로에 대한 의문, 살면서 ‘잘 산다’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는 한다. 하지만 삶을 잘 살아낸다는 건 정답이 없는 질문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어떻게 하면 나를 납득시키고, 만족스러운 일상을 살 수 있을지,매뉴얼을 찾아도 명확한 답이 없어 가끔은 막막해진다.
하지만 충만했던 순간들도 분명히 있었다. 주말 새벽에 늘 가는 공원에서 러닝을 하던 때, 달리는 순간만큼은 오로지 발걸음과 호흡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순간에는 복잡한 생각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아 그 순간을 알차게 잘 사용한 듯 싶은 마음이었다. 어떤 날은 혼자 조용히 책을 펼쳐들고 페이지를 넘기며 누군가의 ‘흑심’에 빠져들 때, 책 속의 세상에 몰입하는 순간만큼은 내가 다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충만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들은 나를 다시 충만하게 하고, 바쁜 일상에서 잠시 나 자신을 뒤돌아보게 했다. 어쩌면 삶을 잘 산다는 건, 이런 작은 몰두와 충실함에서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몰두하지 않을 때, 마음이 더 지치곤 했다. 모든 게 잠시 멈출 때마다 머릿속을 가득 메우는 끝없는 생각들. 이들은 멈추려 할수록 더 깊이, 더 거세게 떠오른다. 마치 무엇이든 꼭 채워 넣어야만 하는 빈 공간 속에 내 마음을 놓아둔 듯, 상념은 더 무거워지고 마음은 더욱 공허해진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순간에, 무언가로 채워지지 않은 그 시간 속에서, 생각들이 나를 둘러싸고 점점 짙어져 머리를 무겁게 만들고 마음을 지치게 하는 듯하다. 머릿속이 복잡해질수록 마음은 공허해진다. 여유가 주어졌는데도 마음은 여전히 분주하다. 오히려 그 여유가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드는 순간들. 난 차라리 바쁠 때가 더 편하게 느껴지곤 한다.
이 모든 게 자본주의라는 시대의 한 단면일지도 모르겠다. 더 잘 살기 위해, 더 열심히 살기 위해 쉼 없이 달리는 이 길 위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는 법을 찾고 싶었다.
여유는 분명 우리 곁에 있지만, 그걸 느끼는 능력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다. 가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도 손은 다시 스마트폰으로 향하고, 머릿속은 수많은 생각으로 가득 찬다. 본능적으로 난 지배당해 버렸다. 그리고 때로는 내가 이런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끊임없는 자극 속에서 우리는 내면의 고요를 잃어가는 것 같다. 성과와 생산성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바쁘지 않으면 무가치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쉬고 있을 때조차 마음속 한편에 불안감이 자리 잡는다. 마치 여유조차도 생산적인 무엇으로 채워야 할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쉬고 있어도 쉬지 못하는 이 불안감이 바로 그 이유일 것이다.
소셜 미디어 속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엿보며 자신과 비교한다. 누군가는 나보다 더 열심히 살고, 더 멋지게 여유를 즐기고 있다. 그러다 보면 나의 여유는 왠지 초라해지고, 불안함이 찾아온다. 타인의 삶과 여유 속에서 나 자신은 더 불편해진다. 이런 불편함이 진정한 여유를 방해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늘 우리를 따라다닌다.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오늘의 여유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금 이 순간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머리로는 그걸 알면서도 자본주의 사회에 놓인 우리는 조급히 흘러가는 이 시대 속에 자신도 모르게 여전히 미래의 걱정에 빠지곤 한다.
어쩌면 우리는 여유를 즐기는 방법을 잊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고요함을 불편해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우리는 정말 여유를 즐기고 있는 건가 싶다. 일상은 늘 바쁘게 돌아가고, 휴식조차 빠르게 지나간다. 여유 속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 필요할 때가 왔다. 바쁜 일상 속에서만 자신을 가치 있게 여기는 습관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여유는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채우고 재충전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생각을 잠시 멈추고, 고요가 찾아오는 그 순간,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잃어버렸던 낭만을 다시 찾을 수 있다.
헌터 S. 톰슨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의 참맛은 무덤까지 안전하게 도착하는 데 있지 않다. 완전히 기진맥진한 몰골로 ‘끝내줬어!’라는 말과 함께 먼지 구름 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묘미다.” 우리의 치열한 일상은 열심히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지만, 이 안에서 쉼과 여유 또한 치열하게,깊이 있게 누릴 줄 아는 사람만이 인생을 온전히 살아낸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오직 목적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흐름을 오롯이 누리려고 살아가고 있다. 너무 바삐 달리기만 하여 흔들리고 힘들고 지쳤다면 잠시 멈추고, 여유를 즐기자. 여유를 즐기는 순간에야 비로소 내가 놓지고 있었던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잠시 일을 쉬었을 때가 있었다. 항상 바쁘게 달리기만 했던 내게 여유로운 시간은 낯설게 느껴졌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내가 의미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일에서 벗어나자 불안이 서서히 찾아왔고, 그 불안감은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나는 무능한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떠다녔다. 그럴수록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짓눌렀다.
하지만 그 압박감은 나를 더 묶어두는 것 같다. 더 해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결국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나는 그런 나를 책망하게 된다.
왜 우리는 자신을 이렇게까지 몰아붙이는 걸까?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가치 없는 사람일까? 바쁘지 않으면 나 자신이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이 습관이 오히려 나를 더 갉아먹고 있는 건 아닐까? 멈춰서 생각해보면, 내가 그저 나일 때에도 나는 여전히 존재하고, 그 자체로 충분했다.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공허함 속에서도 나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물론 그걸 믿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바쁘지 않은 나도,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어떨까? 일을 하지 않는 그 시간에도, 나라는 존재는 여전히 가치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법을 익힌다면 어떨까? 아마도 그 답은 아주 단순한 곳에 있을 것이다. 그저 잠시 멈추고, 그 순간을 받아들이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느끼는 순간, 나 자신도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결국, 내가 나를 괜찮다고 인정하는 그 순간이 중요하다. 여유로움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나이고,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사실. 바쁘지 않은 시간에도, 나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힘든 시기,힘든 마음,어차피 시간이 지나 10년 후 뒤돌아보면 모두 다 점 같은 일일것을 구태어 마음을 써서 될 일도 안되게 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지금 그저 존재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