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 4일 멜버른 여행
멜버른 여행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여행 며칠 전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고열에 시달렸던 아야네는 여행 시작 당일, 잠깐 괜찮은가 싶더니 곧바로 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지듯 잠든 아야네를 두고 장을 보러 나왔다. 과일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겠다는 그녀의 말 때문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날씨는 너무나도 환상적이었다. 숙소 근처 부둣가를 걷는 것만으로도 브리즈번을 떠나왔음을 실감했다. 발코니에서 홀로 스파클링 와인과 치즈를 먹으며 떨어지는 텐션을 끌어올리려 애썼던 첫째 날.
둘째 날의 시작은 퍼핑빌리 기차 투어였다. 아야네가 가장 고대하던 시간이었지만 그녀는 도저히 야외활동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혼자 떠난 투어. 버스 옆자리에 함께 앉게 된 분은 어머니뻘의 중년 여성분이었다. 스스럼없이 먼저 말을 걸고 있는 나를 마주하곤 정말 성격이 조금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연 속에서의 신비로운 순간도 잠시, 아야네로부터 급히 약을 사다 줄 수 있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가능한 한 최대한 빨리 약과 함께 호텔로 돌아온 나는 어둠 속에서 울고 있는 아야네를 발견했다. 이곳은 호주였고, 심지어 낯선 멜버른이었으며 보호자라곤 나뿐이었다. 나는 곧장 그녀를 부축해 근처 응급실로 향했다.
거의 1000불에 육박하는 하루치 병원비를 보자 눈앞이 깜깜해졌다. 언제까지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신없이 입원수속을 마치자 긴장이 풀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능숙하지 않은 영어로 아야네를 대변하고, 의료진들과 소통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런 와중 멀리서나마 나를 지탱해 준 몇몇 친구들에게 정말 고맙다. 돌아오면 꽉 안아주겠다던 그 친구에게 특히나.
병실에 간이침대 하나 없는 까닭에 이른 새벽 시간 나는 호텔로 돌아왔다. 아야네의 상태가 조금 호전되어 일반 병동으로 옮겨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같은 시기에 멜버른으로 여행을 온 친구들을 만났다. 이제야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최근 성수에 생긴 브랜디멜빌은 웨이팅이 엄청나다고 했다. 그러나 멜버른 지점은 비교적 한산했다. 과소비는 순간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가장 완벽한 방법이었다. 입는 옷마다 핏이 예뻐서 뭐 이런 브랜드가 다 있어, 싶었지만 옷걸이가 괜찮기 때문이라고 나 좋을 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냥 그런 기분전환이 필요한 날이었다.
한참 동안 매장을 구경하다 내 영어 이름이 각인된 목걸이를 발견했다. 장난 삼아 친구들에게 자랑했더니 비니가 이건 네 거라며 본인이 선물하겠다고 했다. 선물의 명분은 필요하니 얼마 전 연애를 시작한 본인이 행복한 마음에 선물한 셈 치자는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냈다. 이 유쾌한 친구를 정말 어쩌면 좋지.
친구들과 헤어져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면회는 8시까지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그대로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멜버른을 떠나는 날. 여전히 아야네와 함께 돌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눈을 뜨지 마자 아야네의 짐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꼬박 하루 만에 만난 그녀의 상태는 더 나빠져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얇은 팔에 IV를 잔뜩 꽂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려왔다. 비행시간은 저녁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그날의 일정을 모두 캔슬한 채 그 친구 옆에 있기를 선택했다.
아야네는 이미 이곳에 더 머물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이미 너무 민폐를 끼쳤다고 생각했는지 부모님 이야기까지 꺼내면서 내가 본인과 함께 이곳에 남는 걸 극구 사양했다. 1인 병실 안에는 방문객을 위한 의자조차 없었고, 끊임없이 들어오는 의료진에 내가 방해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살면서 이 정도의 무력감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비행시간이 다 되어 적어도 매일 한 번은 연락할 것을 약속받고 병원을 떠났다. 촉박한 보딩 타임에도 꾸역꾸역 매직 커피를 한 잔 마셨다. 하늘에선 더 이상의 생각을 멈추려 노력했다.
비록 자정을 넘겨 시티로 가는 에어트레인도 끊긴 상태였지만, 익숙하리만큼 후덥지근한 브리즈번의 공기는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같은 비행기를 탄 사람들이 홈리스 마냥 길거리에 주저앉아 택시 앱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20분 정도 고군분투한 끝에 겨우 택시 하나를 잡을 수 있었다. 택시비는 중요치 않았다.
예약해 둔 재즈바도 가지 못했고, 램브란트의 그림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난 꼭 다시 멜버른을 찾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준 여행이었기에 단 한 톨의 후회도 남기지 않고자 한다.
현재 아야네는 무사히 브리즈번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