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권 Feb 23. 2024

학창 시절 풍속사(風俗史)

34. 사춘기 쓰나미와 고3 담임과의 악연(惡緣)

사춘기 쓰나미와 고3 담임과의 악연(惡緣)     


#담임의 첫인상

 남자치고 하얀 피부와 긴 얼굴. 약간 말라 보이는 체형에 올백 스타일의 머리. 넓지도 좁지도 않은 이마. 우스꽝스러운 팔자걸음과 뒤로 젖혀진 허리. 치켜든 고개에 눈을 가늘게 뜨고 내리깐 시선, 어디를 바라보는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눈길. 독백처럼 끝없이 계속되는 중얼거림.      


 담임의 첫인상은 유쾌하지 못했다. 학생들 모두 골치깨나 아프겠다고 한숨지었다.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첫 조회, 담임 선생과의 첫 만남에서 불길한 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학생들은 저마다 내심 못마땅하다는 듯 혼자만의 볼멘소리를 주절댔다.      


#공포의 조회(朝會) 시간

그날 이후 담임은 지치지도 않는지 조회 때마다 영혼 없는 잔소리를 늘어놓았고 우리는 매번 들키지 않을 만큼의 불만과 싫증이 나는 얼굴로 1교시 시작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입시 전선의 맨 앞에 서서 이제 막 진격한 수험생들로서는 매 순간 신경이 날카로울 수밖에 없는 판에 예기치 않게 맞닥뜨린 담임의 일장(一場) 훈계(訓戒)가 날마다 확장 반복되면서 어느새 모두의 심기를 거스르는 예사롭지 않은 악재가 되고 말았다.     


#학생들이 꺼리는 담임의 유형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학생들이 꺼리는 담임의 유형은 대개 위압적인 호랑이 스타일과 말 많은 잔소리꾼으로 압축된다. 첫 번째 스타일은 걸리면 얼차려와 체벌(體罰)을 각오해야 하는 카리스마형이다. 두 번째 스타일은 하는 말이 맨날 똑같아 성가시고 하나 마나 한 일방적인 훈시를 남발해 학생들이 짜증을 내는 이른바 꼰대 형이다.      


카리스마형 담임은 이름만 들어도 오금이 저리는 권위적이고 엄한 보스 기질이 강한 대신 화끈한 성격이라 뒤끝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학생의 본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고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의외로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아 마음으로 따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고등학교 2학년 담임 선생이 그랬다.     


꼰대 형은 지루하고 답답하기만 할 뿐, 내용도 없고 논리도 없고 감동도 없고 설득력도 없는 불통(不通) 스타일에 소심하고 고집까지 세 뒤끝이 만만찮다. 한 번 찍히면 후유증이 길어 정신적인 피로도가 상당하다.     


고등학교 3학년 같은 반 친구들. <사진=대건고 30회 졸업 앨범>     


#실효성 없는 담임의 잔소리

 불행히도 고3 담임은 두 번째 유형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은 조회 시작과 동시에 나오는 기이한 첫마디였다. 담임은 항상 반사적으로 고3은 공부 말고 할 게 없다. 공부 열심히 해라고 하면서 그때부터 녹음기를 틀어 놓은 듯이 조회가 끝날 때까지 길고 불편한 당신만의 할 말을 이어갔다.      


공부에 집중하라면서 조회 시간 내내 늘어놓는 실효성 없는 잔소리가 오히려 공부 분위기를 해치는 자극적인 방해 요소가 됐다는 사실을 담임만 몰랐을 것이다. 외람된 말이지만 1학기 개학 후 시간이 흐르면서 담임의 존재는 점점 학생들 마음속에서 지워지기 시작했다.


그 무렵 봄방학 때부터 들이닥친 뒤늦은 사춘기 쓰나미에 가뜩이나 제정신이 아니었던 나는 심한 담임 트라우마까지 생기는 바람에 스스로 무장해제를 한 입시 최전선의 낙오병(落伍兵) 신세로 추락하고 말았다.     


#사춘기 공황(恐慌)

 사춘기 광풍(狂風)의 한복판에서 전투의지도, 전투준비도 없이 치른 1학기 첫 시험을 망친 나를 대하는 담임의 태도는 돌변했다. 담임의 눈 밖에 난 고3 생활의 하루하루는 악몽 같았고 알몸으로 광장에 서 있는 것 같은 정신적 방황은 더 악몽 같았다.     


심리적 방어기제를 상실해 학습 전투력을 팽개치다시피 한 공황 상태는 집안 분위기에도 악영향을 미쳤고 학교 가기가 죽기보다 싫은 나날이 계속됐다. 여름이 지나고 서늘한 바람이 불 즈음에야 뒤늦게 정신을 차렸지만, 앞선 주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을 만큼 저만치 달아나 있었다.     


졸업할 때까지 나를 대하는 담임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담임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라는 말을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받들어야 한다고 여긴 것 같았다. 반 아이들이 귓등으로 듣고 흘리고 만 조회 훈시의 내용이 합리적인 유추의 이유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은 담임이 철석같이 믿었을 금과옥조의 유래와 숨은 뜻을 과연 알고 그랬을까, 하는 것이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의 숨은 뜻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전근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중장년 세대 이상이라면 익숙할, 선생을 일컫는 널리 알려진 표현 중 하나일 것인데,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게 아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사적인 소회일 뿐이니 눈에 쌍심지를 켜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스승의 사전적 정의는 자기를 가르쳐 이끌어 주는 사람이다. 지식을 전달하는 학문적 가르침에 더해 인성(人性) 교육까지 책임진다는 스승의 정의는 스스로 학식과 덕행의 사표(師表)가 돼야 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미루어 짐작건대, 스승은 앞장서 학생의 모범이 될 때 존경을 받고 스승다울 수 있는 법이다. 지식 교육과 인성 교육을 도맡는 스승의 본분은 시대에 따라 다를 수도 없고 이념이나 진영논리의 영향에서도 자유로워야 한다는 데에 이견이 있을 리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속에는 권리보다 의무와 책무가 더 막중한 스승의 지향점이 투영된 역설적 표현이 숨어 있지 않을까. 저절로 우러러보고 싶은 스승의 그림자를 일부러 밟으려 할 제자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의 유래는 당나라(618~907) 때 덕과 인성 함양에 필요한 규범을 기록한 책 교계율(敎誡律)로 알려져 있다. 교계율 중 스승을 섬기는 방법을 기록한 사사법(事師法)에 스승을 따라 걸어갈 때는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도록 일곱 자 떨어져야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일본 중세 시대의 어린이 교육용 교재인 동자교(童子敎)에 똑같은 내용이 등장하면서 일본 속담으로 이어져 내려와 우리나라로 유입된 것으로 전해진다.      


 돌이켜보건대, 인생에서 가장 되돌리고 싶은 시기 하나만 꼽는다면 서슴없이 고3 때라고 말할 수 있다.      


 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고 부덕(不德)에 소치(所致)다.          

이전 05화 학창 시절 풍속사(風俗史)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