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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권 Feb 27. 2024

학창 시절 풍속사(風俗史)

35. 대학 입학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대학 입학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초유의 대량 미달 사태

 대학 입시 면접 대기장은 휑했다. 학생들이 듬성듬성 앉아 있어 빈자리가 많았고 수험생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사전 고지된 입실 시간이 임박했는데도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았다. 이상한 예감은 면접시험을 안내하는 한 조교(助敎)의 말에서 현실로 드러났다.      


미달이네, 미달. 여러분 전부 합격이야.     


1981학년도 주요 대학 입시에서는 사상 유례없는 사태가 발생했다. 면접시험에 출석해야 할 응시자들이 대거 이탈한 대량 미달 사건. 졸업 정원제가 전격 도입되면서 벌어진 입시 참사나 다름없었다. 졸업 정원제는 대학별로 책정된 졸업 정원에서 30% 가산된 인원을 입학정원으로 선발해 졸업할 때까지 증원된 인원만큼 탈락시켜 졸업 정원에 맞추는 방식이었다.      


2개 대학까지 원수 접수가 가능한 대신 면접시험에는 한 군데만 응시해야 하는 이 해에 수험생들 사이에 치열한 눈치작전이 펼쳐졌다. 30% 늘어난 입학정원의 틈새를 노려 상향 지원한 대학의 면접시험이 초읽기에 몰리면서 불안 심리가 증폭해 막판 포기 현상의 속출로 초유의 미달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명문대학 인기 계열일수록 입학정원의 미달 폭도 컸다. 졸업 정원제는 1987년에 폐지됐다.     


#의미를 상실한 면접시험

 최종 합격자를 가려내야 할 면접시험은 의미를 상실했고 합격자 발표와 무관하게 합격이 결정됐다. 대학 정문 근처 교내 게시판에 공지된 합격자 명단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감흥이랄 것도 없는 내 이름이 박혀 있었다. 내 이름인데 내 이름의 느낌이 없었다.     


캠퍼스는 아담하고 꾸밈이 없었다. 교문을 나서다가 우연히 초등학교 옛 친구를 만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그 친구는 경영학과에 합격했고 훗날 한 학기 동안 같은 하숙집에서 지내기도 했다.     


 때아닌 격랑(激浪) 속에서 가슴앓이한 1년간의 후유증은 대학 입학 후에도 여전했고 대학 생활 내내 나를 괴롭혔다. 무색무취했던 나의 대학 생활은 그렇게 신입생 오리엔테이션과 함께 시작됐다.     


경주 유스호스텔 입구에서 찍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기념사진.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생면부지의 얼굴들

2월 중순, 새내기 대학생들이 참가한 오리엔테이션은 2박 3일 일정으로 천년 고도(古都) 경주 유스호스텔에서 치러졌다. 첫날, 전국 각지에서 모인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얼굴들을 숙소에서 만났다. 생김새도 다르고 말투도 다 달랐다.


서울 말씨를 쓰는 학생들이 많았고 경상도 사투리와 전라도 사투리도 많이 들렸다. 느릿느릿하면서 구수한 말투도 있었는데 충청도 사투리를 직접 들어본 것은 철들고 나서 처음이었다. 강원도 출신들은 경상북도 북부 지방과 억양이 비슷한 듯 달랐고, 드물게 바다 건너 제주도에서 온 동기들도 보였다.     


 고향이 서울인 신입생들은 재수생이 적지 않았다. 삼수생도 있었고 다른 대학에 다니다가 들어온 20대 중후반의 늦깎이 중고 신입생도 몇 명 있었다. 장발 머리를 한 재수생들은 연신 담배를 빼 물었다. 1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들은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담배를 피워댔다. 폼나게 담뱃불을 붙이고 묘기를 부리듯 담배 연기를 내뿜어 뭉게구름을 잘도 만들어 냈다.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지 않고 토해 내면서 피우는 입담배만 할 줄 알았던 나에게 담배를 가르쳐 준 것도 재수생이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며 빨아들인 담배 연기가 식도(食道)가 아닌 기도로 잘못 들어가 사레가 들리는 바람에 캑캑거렸다. 불안하고 무질서하게 뿜어져 나온 담배 연기가 눈에 들어가 눈물이 나면서 매캐했다. 콜록거리는 나를 보며 재수생들은 키득키득 웃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학번이 기준일 때라 재수생과 삼수생들과도 말을 트고 지냈다. 재수생이 고등학교 선배인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는 당연히 말을 높여 선배 대접을 했다.     


#동문 탤런트 정한용

 낮에는 호텔 강당에서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했고 밤에는 숙소 방에서 삼삼오오 어울려 음주(飮酒) 가무(歌舞)를 즐겼다. 오리엔테이션 때는 졸았고 음주 가무 때는 말똥말똥했다. 오리엔테이션은 학교 소개와 대학 생활 안내, 졸업생 선배와의 만남, 여흥 프로그램 따위의 뻔한 내용이었지만 나름대로 신선했고 재미도 있었다.     


동문 탤런트 한 명이 오리엔테이션 초빙 손님으로 나왔다. 올해로 고희(古稀)가 된 15대 국회의원 출신 정한용(1954~)이었다. 81년 당시에는 대중적 인지도가 없던 27살의 무명 연기자라 낯설었다. 두툼한 목도리를 두르고 청바지와 스웨터 차림으로 무대 단상에 오른 정한용은 경제학과를 나온 동문 선배 연기자라고 자기소개를 했는데 그를 알아보는 신입생들은 없었다.      


그는 낮과 밤을 거꾸로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남들 깨어 있을 때 자고, 남들 잘 때 깨어 있다고 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연기자의 숙명이라고 스스로 해석했다.     


 2박 3일간의 오리엔테이션은 금방 끝나고 1시간 남짓 거리의 고향 대구로 다시 갔다. 43년 전 이맘때다. 고향 집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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