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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권 Mar 18. 2024

학창 시절 풍속사(風俗史)

43. 하숙촌(下宿村) 오디세이 ①대흥동 하숙집

하숙촌(下宿村) 오디세이 대흥동 하숙집      


#대학가 원룸과 하숙촌

 매년 1월~2월이면 대학가 주변 부동산 중개업소마다 희한한 풍경이 벌어진다. 중년의 아주머니, 아저씨들과 그들의 아들딸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학생들로 부동산 사무실이 시끌벅적하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내방객(來訪客)들의 말투는 다 다르고, 부동산 사무실은 사투리 경연장이나 다름없다.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遊學)을 온 자식들이 기거(起居)할 원룸을 구하기 위해서다. 쾌적하고 마음에 드는 원룸일수록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조건이 까다로워 매번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학부모들의 조바심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목 좋고 시설이 우수한 신축 원룸과 대로변에서 한참 벗어난 한갓진 곳의 낡은 원룸 사이에서 고민하는 부모님들의 선택을 결정짓는 가장 큰 변수는 역시 경제적인 부담이다.


번듯한 원룸은 원룸대로, 오래된 원룸은 원룸대로 결국 그들의 주인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주인이 원룸을 원망한들 달라질 것이 없어 다 부질없는 일이고, 원룸은 저간의 사정을 알고나 있었던 것처럼, 기꺼이 주인을 보듬어 안았을 것이다. 어차피 공존 공생이고 상생(相生)의 운명인 둘이다. 지방 출신 대학생들의 주거 공간의 상징, 원룸의 임대료는 식사 비용과는 하등의 관련도 없어 자식들의 한 달 생활비 걱정에 부모님들의 등골이 휘어지고도 남을 일이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단기 임대 주거 형태인 하숙(下宿)이 전성기일 때가 있었다. 내가 대학에 다닌 80년대 초도 그랬다. 하숙은 보증금도 없고 월 사용료만 내면 자고 먹고 할 수 있었다. 당시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들의 주거 형태는 하숙 아니면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며 생활하는 자취(自炊)였다. 자취는 하숙보다 싼 대신 밥을 해 먹는 번거로움과 사 먹는 부담 때문에 선호도가 낮았다.      


 대학가마다 문전성시를 이뤘던 80년대 하숙촌 이야기다.      


#생애 첫 하숙집

 1982년 2월 하순, 난생처음 하숙집을 구했다. 하숙집은 대학교 후문에서 도보로 5분 남짓 거리의 2층 양옥(洋屋)이었다. 지금의 6호선 대흥역 근처의 골목 주택가였고 하숙을 치는 집들이 많았다. 개강을 며칠 앞두고 서둘러 짐을 옮겼다. 짐이라고 해 봤자 접을 수 있는 지퍼식 천 옷장과 옷가지, 이불과 베개, 책 몇 권이 다였다. 입주(入住) 다음 날 중고 가구점에서 쓸만한 책상과 의자를 운 좋게 헐값에 샀고 생필품도 구매했다.      


하숙집 1층에는 주인 가족이 살았고 하숙생들의 거주 공간은 2층이었다. 대문 안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통로는 1층 주인집을 통하지 않고 외부 계단으로 따로 나 있었다. 하숙집 실내에서도 나무계단을 통해 1층과 2층을 오르내릴 수 있었다.      


하숙생들이 모여 사는 2층의 구조는 마룻바닥 거실을 사이에 두고 독방 하나에 2인 1실 셋, 화장실로 이뤄졌다. 거실은 생각보다 넓었다. 삼삼오오 거실에 둘러앉아 심심풀이 고스톱을 치거나 새우깡을 집어 먹으며 맥주를 홀짝거리기도 했다.     


#브리지 전화와 인터폰

 하숙이라 아침, 저녁 두 끼는 주인집에서 먹었고 점심은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신촌 일대 하숙집들은 아침, 저녁, 두 끼만 제공했다. 식사 때는 실내 나무계단을 이용해 1층으로 내려갔다. 2층에 주인집 전화와 브리지 방식으로 연결한 하숙생용 전화가 있었다. 전화를 받는 것만 가능했고 걸 수는 없었다. 2층에는 또 1층 주인집과 통하는 인터폰도 설치돼 있었는데 밥 먹으라는 기별을 하거나 아무개 전화 받으라고 전할 때 사용했다.      


 7명이 화장실 하나를 공동으로 사용하다 보니 아침만 되면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하숙생들로 야단법석이었다. 수세식 변기와 세면대, 샤워기가 설치된 화장실은 빨래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세탁기는 따로 없었고 대개 보름에 한 번씩 밀린 세탁물을 한꺼번에 치대느라 수선을 떨었다.      


#극한의 노동손빨래

나도 그때 빨래를 처음 해봤다. 속옷과 양말, 겉옷, 바지 따위를 다 빨고 나면 몸통의 절반이 없어진 빨랫비누처럼 온몸이 녹아내렸다. 화장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두 손을 번갈아 부지런히 놀려야 하는 손빨래 자세는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10분만 지나도 오금이 저리고 30분 이상 지속하면 다리에 쥐가 나 버티기 어렵다.     


날마다 온종일 가사노동에 시달렸을 옛날 어머니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알고 싶으면 손빨래 한 번만 해 보시라. 백문(百聞)이 불여일행(不如一行)이다.     


#충청도 토박이 주인아주머니

 하숙집 주인아주머니는 충청도 토박이였다. 느릿느릿한 말투와 달리 깐깐한 인상대로 매사 하지 말라는 간섭이 심했고 성격도 급해 하숙생들이 눈치를 봐야 했다. 아주머니는 수시로 2층에 올라왔다. 거실 바닥을 쓸고 닦거나 화장실 청소를 하기 위해서였는데 그럴 때마다 꼭 안 해도 될 잔소리를 한마디씩 흘리고 내려갔다. 


가령 때 되면 알아서 밥 먹으러 내려오라거나 화장실 변기 물 내리는 손잡이를 너무 세게 누르지 말라기도 하고 세면대에서 발 씻지 말라는 식이었다. 식사 시간이 매번 일정하고 날마다 화장실을 청소하는 아주머니로서는 할 말을 한 것뿐이었겠지만 객지 생활이 처음인 남자 하숙생들로서는 귀담아듣기에 대수로울 것 하나 없는 그렇고 그런 말이었다.     


하숙생들도 하루가 멀다고 듣는 아주머니의 지청구에 단련이 됐는지 한두 달이 지나면서부터는 그러려니, 하고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렸다. 하숙생들끼리는 심술보 아주머니라고 불렀다.     


#철제 대문과 식탁 메뉴

 하숙집 대문은 늘 잠겨 있었다. 철제 대문 옆 벽에 벨 두 개가 나란히 부착돼 있었는데 하나는 주인집용이고 다른 하나가 하숙생들을 위한 것이었다. 벨을 누르면 하숙생 중 누군가가 2층에서 잠금 해제용 또 다른 벨을 눌렀고 철컥, 하는 소리가 나면서 대문이 열렸다. 2층에서 아무 반응이 없으면 어쩔 수 없이 주인집용 벨을 눌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     


식탁에는 보름에 한 번꼴로 고추장으로 버무린 돼지고기 양념구이가 나왔고 생선구이는 1주일에 한두 번 밥상에 올라왔다. 고등어구이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갈치나 삼치구이는 가끔 먹을 수 있었다.     


#여름방학 때 있었던 일

 이런 일도 있었다. 2학년 여름방학 내내 고향 집에 내려가지 않고 하숙집에 머무를 때였다. 룸메이트가 고향 집으로 내려가고 없어 혼자 있던 차에 고등학교 친구가 대구에서 올라왔었다. 방으로 들어온 친구의 반 팔 티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나는 얼른 샤워하라며 수건 한 장을 건넸다. 더위를 쫓는 방책이라고는 달랑 손부채 하나뿐이라 수시로 찬물을 끼얹어야 하는 무더운 날이었다.      


샤워를 마친 친구가 수건으로 머리에 남은 물기를 막 털어내고 있을 때쯤, 별안간 주인집 아주머니가 열린 방문을 두드렸다. 아주머니는 다짜고짜 안 그래도 2층 수도료가 많이 나와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했다며 친구를 힐끔 쳐다보고선 나가버렸다. 


학기 중에는 아무 말도 없다가 하필이면 하숙방이 텅텅 빈 방학 때 와서 왜 그럴까, 싶어 입이 근질거렸으나 속으로만 삼켰을 뿐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친구는 무안(無顔)해서 어쩔 줄을 몰랐고 그런 친구의 모습을 본 나는 더 어쩔 줄을 몰랐다. 우리는 그날 밤 신촌의 한 대폿집에서 고갈비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진탕만탕 마시고 취했다. 다음 날 아침, 아주머니도 미안했던지 친구의 밥까지 차렸다며 인터폰으로 연락을 해왔다.     


 첫 번째 하숙집과의 인연은 여름방학 때까지였다. 2학기가 시작되면서 정문에서 10분 거리의 또 다른 하숙집으로 옮겼다. 이곳에서 대입 합격자 발표 때 만났던 초등학교 동창을 다시 만났다. 그 친구는 독방을 썼고 나는 1학기와 마찬가지로 2인 1실에서 생활했다.     


 1982년 대학 2학년 1학기 때 머물렀던 하숙집은 지금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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