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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권 Mar 26. 2024

학창 시절 풍속사(風俗史)

47. 신입생 환영회

신입생 환영회     


#고등학교 동문 선후배 사이

 1981년 3월 중순, 고등학교 동문(同門) 모임에 처음 참석했을 때 일이다. 입학 동기 네 명에 2학년 선배 둘, 3학년 선배 하나, 복학생 선배 둘 해서 모두 아홉 명이 모였다. 물설고 낯선 서울 땅에서 만난 생면부지(生面不知)의 고등학교 선배들을 보는 순간 동문이라는 정서적 동질감이 진하게 묻어났다.      


한국 사회에서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를 휘감는 공동체적 유대감은 남다르다. 서로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면서도 선배는 바로 후배에게 낮춤말을 쓰고, 후배는 그 자리에서 깍듯하게 선배를 예우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 오래된 인연을 만난 것처럼 단숨에 끈끈한 관계가 형성되는 경우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얼굴을 본 것도 처음, 이름을 들은 것도 처음인 선배들은 대학에 갓 입학한 나와 동기들을 친동생처럼 살갑게 대했고 막내인 우리도 선배들을 친형처럼 따랐다. 신입생 환영회가 벌어지는 고등학교 동문 모임은 술과의 전쟁이라고, 한 선배가 말했고 그 말의 의미를 깨닫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잉어집의 추억

 동문회 장소는 재학생들의 단골 주점(酒店)으로 소문난 곳이었다. 학교 정문에서 신촌 로터리 방향으로 내려가다가 대로변 오른편에 자리한 술집 겸 음식점인데 잉어집이라고 페인트로 쓴 허름한 간판에서 노포(老鋪) 분위기가 났지만, 노포는 아니었다. 원통형 스테인리스 탁자 두 개를 붙이고 9명이 등받이 없는 플라스틱 의자를 바싹 당겨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주점 이름치고는 흥미로운 상호(商號)의 사연이 궁금하던 차에 우연한 기회에 주인아주머니로부터 작명(作名)의 배경을 알게 됐다. 잉어는 예부터 복(福)을 가져다주는 길(吉)한 물고기라 잉어의 기운을 듬뿍 받아 가게가 번창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가게 이름을 잉어집으로 지었다는 것이다.     


상호에 새겨진 여주인의 바람대로 잉어집에는 날마다 학생들이 들끓었고 신입생 환영회나 고등학교 동문 모임, 학과 모임, 동아리 회합(會合) 장소로 인기가 많았다. 주머니 사정이 변변찮은 대학생이 주 고객이라 술안주로는 돼지목살을 푸짐하게 넣은 김치찌개와 잡탕찌개, 고갈비가 많이 팔렸다.     


 주인아주머니는 키가 훤칠한 미인형에다 성격도 시원시원해 학생들이 서슴없이 따랐다. 술은 소주, 안주는 잡탕찌개를 시켰고 밑반찬으로 김치와 콩나물무침, 번데기, 껍질째 삶은 다슬기, 콩자반 따위가 나온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바람잡이 역할을 자처한 2학년 선배 한 명이 주도(酒道)를 가르쳐주겠다며 몇 가지 유의 사항을 일러주었다.      


#선배가 가르쳐준 주도(酒道)

 첫째, 술은 오른손으로 따르고 받을 때도 오른손으로 받을 것. 둘째, 선배에게 술잔을 받을 때는 두 손으로 받고 잔에 입을 살짝 갖다 댄 뒤 탁자에 내려놓을 것. 셋째, 선배가 따라준 술은 한 방울도 남김없이 원샷으로 마신 뒤 곧바로 선배에게 화답(和答)의 술을 권할 것. 넷째, 선배의 술잔이 비어 있으면 두 손으로 술을 따라 채울 것. 다섯째, 술이 가득 든 술잔을 앞에 두고 고사(告祀) 지내듯이 멍때리지 말 것. 여섯째, 술을 따를 때는 소주병의 라벨이 상대에게 보이지 않게 오른 손아귀로 감쌀 것.     


엄격한 주도의 원칙을 다 반영한 것은 아니겠으나 술자리에서 지켜야 할 대략적이고 기본적인 수칙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내용일 것이다.


#수작(酬酌)과 구토(嘔吐)

선배들은 소주를 마시는 법도(法道)의 기본은 술잔을 주고받는 수작(酬酌)이라며 정신없이 술잔을 돌렸다. 한 순배(巡杯)가 돌고 두 순배가 돌고 몇 순배가 돌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때쯤, 동기들은 차례대로 죽상을 지으며 속에 든 것들을 거침없이 토하기 시작했다.      


 하염없이 쏟아져 들어온 알코올을 몸이 감당할 수 없을 때쯤, 식도(食道) 아래의 괄약근이 약해지면서 위장 속의 내용물들이 역류해 입 밖으로 나오는 구토(嘔吐)를 피할 수 없는데, 이때의 징후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의 다른 이름이었다. 속이 메스껍고 울렁거림이 심해지면서 하늘이 노래지고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헐떡거리는 우리 동기들을 보면서 선배들은 마치 예견하고 있었던 것처럼 껄껄 웃었다.      


두어 차례 구토와 힘겹게 씨름한 끝에 기진맥진한 가운데에서도 헛구역질이 자꾸 잇따라 역한 냄새를 밀어 올리며 멀건 물만 나왔다. 헛구역질할 때마다 명치끝을 쥐어짜듯 통증이 엄습했고 온몸의 기가 다 빠져나갔다.      


#구토와 헛구역질

 구토가 묵직하고 술자리의 승부를 가르는 카운터펀치라면, 헛구역질은 잊을만하면 솟구쳐 괴롭히는 잔 펀치였다. 구토는 충격이 컸으나 뒤끝이 개운했고, 헛구역질은 충격이 미미했으나 역한 냄새를 밀어 올리며 끈질기게 켕겨 기분이 나빴다.     

 

내 생각에 구토는 음식물을 따라 위 속으로 흘러들어온 알코올이 뿜어대는 독기(毒氣)에 다른 음식물 잔해들이 혼절(昏絶)한 나머지 정상적 소화계통이 마비된 육체적 반작용(反作用)이자 정화작용의 결과가 아닐까, 혼자만의 추측을 해봤다.     


술자리에서 구토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내가 이 많은 음식을 다 먹었나, 하는 생각에 놀랐다. 분해되다 만 음식물 덩어리가 서로 뒤엉켜 불그죽죽하고, 끈적끈적한 체액과 뒤범벅된 알코올에 음식물 냄새가 파묻혀 코를 찔렀다. 구토물의 실체를 보는 순간 만정(萬情)이 다 떨어졌다.      


술자리는 어느 시점에서 파했을 것이 분명할 텐데 나나 동기들은 그때를 기억할 수 없었다. 아침 느지막이 깨어보니 바람잡이 역할을 한 선배의 하숙방이었다. 속이 쓰리고 메스꺼우면서 헛구역질만 나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혼자서 소주 네 병

 일반적인 소주잔 기준으로 소주 한 병(360ml)에서 일곱 잔이 나온다고 가정했을 때, 선배 다섯 명을 상대로 주고받고 세 순배만 돌아도 30잔이라 혼자서 소주 네 병 이상을 마신 셈이다. 술을 따를 때와 받을 때, 잔끼리 부딪칠 때 흘리는 양을 감안(勘案)하더라도 취하지 않을 도리가 없고 짧은 시간에 원샷으로 급하게 마셔 취기가 오르는 속도는 훨씬 빨랐을 것이다. 80년대 초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25도였다.


신입생 환영회 술자리는 혹독한 체험이었고 그날 이후 알코올에 대한 내성(耐性)도 차츰 생겨나기 시작했다.  


신입생 환영회 풍경은 여전히 뇌리에서 맴돌지만, 잉어집은 사라진 지 오래다. 대학 교재나 영한사전을 맡기고 외상술도 많이 마셨고 술값을 갚지 못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주인아주머니가 떼인 외상 술값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주인아주머니가 살아 계신다면 아마 80대 후반이나 아흔 줄, 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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