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샘 Feb 28. 2023

내 친구, 음악

#19일 차, 베풂을 기쁘게 받는 것도 좋은 일

때로 누군가 베풀어주는 것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받는 것도 좋은 일이다.
너무 도덕적이어서(?) 무언가를 거저 받는 것이 왠지 찜찜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정성을 베풀었을 때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받는 것 또한
좋은 태도인 것 같다.
상대방에게 행복감을 주니까.



이동 : Ledigos --> Bercianos





오늘은 거의 27km를 걸었다.


중간에 지루하고 힘든 구간이 있어 또 음악을 들었다.

산티아고를 걸으면서 음악을 듣는 것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깨도 아프고, 힘이 들기도 해서 음악을 들었는데 

음악을 들으며 걸으면 늘 발걸음이 가볍고, 어깨 아픈 것이 잊힌다.


참, 신기한 일이다.

음악은 내게 참 좋은 친구다.

그저, 나에게 주기만 하는 친구다.

사람친구들의 경우 때로 상대방을 신경 써야 할 때도 있고,

때로 섭섭할 때도 있고, 원하는 모든 것을 바랄 수 없다.


그런데 내 음악친구는 그저 주기만 한다.

내가 만약 우울한 기분이 들면, 내 음악친구는 그 우울함을 꼭 안아서,

내 마음속으로 더 깊게 밀어 넣는다. 

저 깊은 곳까지 우울함이 쑥 들어가고 나면, 이내 우울함의 입자들이 작아져서 힘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나는 다시 편안해진다.


내가 육체적으로 힘들어하면, '내게 집중해. 그러면 네 고통이 좀 누그러질 거야.' 하며,

열심히 자신의 멜로디에 날 집중시킨다.

그러고 나면 육체의 고단함이 잊힌다.

늘 주기만 하는 내 친구, 음악.

만약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 몇몇을 선택하라고 하면, 난 음악을 우선으로 꼽을 것 같다.




새벽하늘은 늘 아름답다.

보름을 지나, 오늘은 그믐이다.

그리고 주변으로 아름다운 별이 보인다.

새벽에 하늘을 보며 걸으면 상쾌하고 가볍다.



물론 잔은 늘 길을 찾느라 바쁘고, 애를 쓰는데 

나는 그럴 필요 없이 뒤만 졸졸 쫓아다니니,

오히려 새벽의 여유를 즐기는 것 같다.


우리는 첫 마을이 가까이 있으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우선 좀 걷다가 아침을 먹는다.

주로 따뜻한 카페콘레체와 크루아상 류의 빵을 시켜 먹는다.


오늘은 다음 마을의 알베르게에서 파는 아침식사를 했다.

바게트 빵의 토스트와 티 그리고 작은 파운드케이크였다.

가격은 3유로. 적당한 편이다.

한국 스타벅스에서 그 정도면 1만 원은 받았을 것이다.




사하군에 도착하기 전 캐나다 부부를 또 만났다.

오늘은 부인 캐시가 더 많이 아픈지 다리를 더 많이 절었다.

하지만 씩씩하게 “걸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며 웃는다.

그 웃는 얼굴이 또 참 아름답다.


캐시가 내게 캐나다 동전을 선물로 주었다.

어제 준 리본에 대한 답례품이겠지만 그 마음이 고맙다.


사실 누구라도 산티아고를 걸으면서 기념품을 가져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나도 무엇을 가져올까 고민하다 노란 리본을 가져오긴 했는데,

그저 가볍기도 하고 의미도 있어서 가져왔을 뿐이지, 

내가 누구에게 기념품을 되받고 싶어서 가져온 것은 아니다.

나는 정말 그저 누군가에게 뭔가를 주고 싶었을 뿐이다.

어찌 되었든 캐시가 동전을 준비한 것이 무척 고맙다.


캐나다 달러로 1달러인데 뒤에 오리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캐나다에서는 그 동전을 ‘루니’라고 부른단다.

함께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곧 헤어졌다.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사하군에 도착하기 전 작고 오래된 예배당엘 들어가니 스탬프를 찍어주시는 분이 스위트와인이라며 한번 맛보라고 준다.

스탬프를 찍고 잠시 기다리다 그냥 고마워서 노란 리본을 주었다.

그랬더니 또 너무나 고마워하신다.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냐고 했더니 함께 찍잔다.

그래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까미노를 걷다 보면 예배당을 많이 만난다.

큰 타운에는 큰 교회가 있고, 작은 마을에는 그저 기도처 같은 작은 교회가 있다.

우리들은 가끔 쉬고 싶을 때, 작은 교회에 가서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의자에 앉아 십자가를 바라보며 쉰다.

기도도 드린다.



때로 그런 작은 교회에서 우리에게 스탬프를 찍어준다.

때로 그런 작은 교회에서는 기부금도 받는다.




그런데, 오늘 머물렀던 예배당에서는 기부금도 받지 않고,

오히려 우리 순례자들에게 산뜻한 와인과 과자를 제공해 주었다.


그동안은 늘 우리가 뭔가를 베풀어야 할 것만 같았는데,

오늘은 그 작은 교회에서 우리들에게 무언가를 베풀어주니 기분이 좋았다.



때로 누군가 베풀어주는 것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받는 것도 좋은 일이다.

너무 도덕적이어서(?) 무언가를 거저 받는 것이 왠지 찜찜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정성을 베풀었을 때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받는 것 또한 좋은 태도인 것 같다.

상대방에게 행복감을 주니까.


만약 그 정성이 고마워서 어떤 식으로든 또 베풀고 싶다면, 아주 색다른 방식으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 좋겠다. 오늘 나는 그저 작은 노란 리본 하나로 그분의 정성에 감동했음을 보여드렸다.


사하군에서는 마을투어를 좀 했다.

교회도 구경하고 뮤지엄도 구경했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바로 이곳 베르시아노스까지 왔다.




이곳 알베르게는 도네이션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침대를 배정받고 샤워를 하고 침낭과 온갖 빨래를 또 말리는 중이다.

어젯밤에는 가려웠지만 참고 잘 잔 것 같은데, 

오늘은 어떨지 모르겠다.

잔이 어제 본인이 먹고 있는 항히스타민을 주어서 먹고 있는 중이다.

일단 3-4일 먹어보고, 빨래는 확실히 말리고……. 

그렇게 빈대에서 해방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어제는 속이 좋지 않아 저녁을 굶었다.

지금은 좀 괜찮아진 것 같다.

오늘은 맛난 저녁을 먹어야지…….



2015년, 9월 8일 베르시아노스에서

이전 01화 온화한 캐나다 부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