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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샘 Feb 28. 2023

온화한 캐나다 부부

#18일 차, 기록해 두고 싶은 사람들

두 사람은 참 온화해 보였다. 내 느낌이 그랬다. 
부인은 늘 우아하게 말했고, 남편은 한없이 너그러웠다.



이동 : carrion de los condes --> ledigos 






까미노를 나서기 전 어제의 자원 봉사자들 중 3명이 입구까지 나와 부엔까미노라고 작별인사를 해 준다. 

이른 아침이었는데…….

끝까지 감동을 주는 그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담아 꼭 안아주었다.


그런데, 어젯밤은 정말 끔찍했다. 

빈대에게 물린 것이 확대가 되었다.

와인을 먹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내 침낭 속에 빈대가 알을 까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ㅜ

아무튼 내 피부는 여기저기 가려웠다.


걷다가 우리들을 바라보던 다른 순례자들이 다들 무슨 일이냐며 걱정을 했다. 

베드버그에 물렸다 했더니, 본인들이 가지고 있던 항히스타민제와 연고를 건네준다. 

약국에서 약을 사지 않아도 여기저기 도와주는 사람들 덕에 가려움증이 가라앉을 것 같다. 


오늘은 그렇게 힘든 코스를 걷진 않았다.

가려움을 잊으려고 중간에 음악을 들으면서 걸어보았다. 

역시 난 음악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 음악을 들으니 힘들지 않게 걸었다.


ledigos에 새로 생긴 알베르게가 있어 빨래도 돌릴 겸 들어왔다.

깨끗하고 새로 생겼기에 침구류도 깨끗할 거 같아 들어왔는데 세탁기가 없단다.

그래서 막 우기며 슬픈 표정을 지었더니 자기네 세탁기를 쓰게 해 주었다.

어찌 되었든 난 그 세탁기에 내 침낭과 대부분의 옷가지들을 높은 온도로 돌려 햇볕에 말렸다. 




자주 만나는 사람들 중에 캐나다에서 온 부부가 있다.

이들 부부를 만난 것도 한 일주일 전쯤 된 것 같다. 

그때도 길을 걷다가 혼자 쉬다가 두 분이 천천히 걷는 걸 보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다가 만났다. 

그들 부부는 캐나다에서 왔고, 부인은 캐시, 남편은 톰이었다. 


두 사람은 참 온화해 보였다. 내 느낌이 그랬다. 

부인은 늘 조용하고 천천히 우아하게 말했고, 남편은 늘 웃으며 들었다. 한없이 너그러운 사람처럼.

우리들이 각자 나라에서 와서 일행이 되어 걷고 있다니, 무척 신기해하면서도 좋아 보인다고 했다. 

자기들은 혼자 걷는 건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면서……. 


이 부부는 이따금씩 만났다. 

같은 숙소에 머문 적도 있고, 

같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 후, 서로 맛있는 메뉴를 추천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부인이 다리가 아픈지 한쪽 다리를 절었다. 

남편이 배낭을 두 개나 메고 걷는다.

몸조심하라면서 두 분 다 좋아 보인다고 말하니, 남편이 "내가 더 좋지요?" 그런다. 

그리고는 걸을 땐 노래를 부르는 게 좋다면서 노래를 불렀다. 

두 개의 배낭을 메고, 부인의 손을 잡고, 두 분이 함께 노래 부르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기억하고 싶어서 이곳에 써 본다.

얼른 나으시라고 노란 리본을 드렸다.

좋아하신다.

노란 리본 가져오길 잘했다……. 




오늘 잔은 세탁기를 돌리며 쉬는 시간에 에디트피아프 노래를 듣더니 철학토크쇼를 듣는다. 

모든 전자기기에서 멀리하고 싶다는 잔이었는데, 오늘 같이 한가한 날은 각자 시간 보낼 거리가 필요하다. 

나는 일기를 쓰고, 메일을 열어보고, 캐시는 딸과 문자를 주고받는다. 


조금 있다가, 잔이 민주주의에 대해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환경, 불법이주민 등에 대한 문제가 속출하는 걸 보면, 민주주의도 문제를 갖고 있다고. 

나는 그것이 민주주의의 문제라기보다는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문제인 것 같다고 했다. 

정부는 민주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되, 너무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에서 파생되는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할 것 같다고. 

그리고 얼마 전 읽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느낀 바를 이야기해 주었다. 

각자 일상을 살면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지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잔은 개인적으론 그럴 수 있겠지만, 국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며 논란의 여지가 있다 했고, 우린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음악을 전공한다면서 역사와 철학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잔은, 

음악가로서 그저 음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진 음악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젊은 래디컬리스트 (radicalist)와 함께 걷다 보니, 생각할 거리도 많았다. 




오늘 우리가 묵은 알베르게는 새로 지은 알베르게라 침대 시트도 깔끔했고, 

한밤중에 도보순례자 2-3명이 더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밖에 없어서 그동안 도보 길에서 묵었던 숙소 중에서 가장 쾌적한 밤을 보냈다. 


나도, 잔도 우리가 가진 모든 옷가지들을 빨고 침낭 그리고 배낭들을 햇볕에 말려 살균했다. 

베드버그로 고생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쾌적한 숙소가 무엇보다 필요했던 날이었다.




2015년 9월 7일, 레디고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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