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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샘 Mar 07. 2023

꼭 또 만나요, 캐시! 톰!

#30일 차, 아름다운 날들이다...

캐시와 톰을 산티아고에서 다시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 해도 감격에 겨울 그런 기대를 하며,
우린 서로를 꼭 안아주었다.


이동 : Sarria --> Gonzar




오늘도 29.9km를 걸었으니까 정말 많이 걸었다.


아침 일찍 알베르게에서 어제 슈퍼에서 사 온 햄과 치즈로 바게트를 해 먹고 희미하게 빛나는 사리아 가로 등을 따라 걸었다.

도보자들이 확실히 늘어났다.

사리아에는 알베르게도 참 많았다.


우리는 어제의 도보가 끝나는 지점에서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았는데,

걷다 보니 사리아를 다 지날 때까지 정말 많은 알베르게가 보였다.

알베르게마다 불이 켜졌고, 그곳에서 지팡이와 배낭을 멘 순례자들이 천천히 나왔다.


사리아를 거의 다 지날 때쯤 캐나다 부부를 다시 만났다.

캐시와 톰이었다. 얼마나 반갑던지…….





캐시는 여전히 다리가 불편해 보였다.

그동안 우리가 왜 못 만났을 까?

알고 보니, 평탄한 길은 아주 천천히 짧게 걷고,

높은 산을 넘는 코스는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고 한다.

캐시와 톰의 얼굴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괜찮으냐고 물어보니, "이렇게 걸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라고 오히려 웃으며 되묻는다.


오늘도 거의 우리의 반절 정도를 걷고는 그곳 알베르게에서 쉰다고 했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다시 걷기로 했다.

이제 또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 못 만날 줄 알았는데, 다시 만난 것처럼 꼭 또 만날 것 같았다.

그.

런.

데,

우리는 서로가 뜨거운 이별인사를 나눴다.

왠지 그러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말로는 우린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라고 했다.

진심이었다.


캐시와 톰을 산티아고에서 다시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 해도 감격에 겨울 그런 기대를 하며,

우린 서로를 꼭 안아주었다.




오늘은 또 핀란드 친구, 세리에를 만났다.

걷는 길에 갑자기 잔이 무릎통증을 호소했다.

캐시는 먼저 앞서 걷고 있었다.


일단 좀 쉬라며 무릎을 주물러주고, 에바가 준 근육통 연고를 발라주었다.

그리고 내 손수건을 꺼내, 아픈 부분을 꼭 동여매 주었다.

좀 낫다고 한다.

사실, 잔이 잘 걷긴 했지만 잔은 늘 물집상처와 통증을 견뎌내고 있었다.

오늘은 내 스틱을 하나 강제로 쥐어 주었다.

그동안에도 힘들 때마다 내 스틱을 빌려준다고 했었지만 늘 거부하던 잔이었는데, 오늘은 받아 든다.

그렇게 받아 드니, 오히려 내가 더 기뻤다.


잔이 잠깐 쉬는 동안,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잔에게 한 마디씩 위로를 보내주었다.

괜찮은지? 어디가 아픈지? 근육통 약을 주겠다는 사람도 있고, 함께 걸을 수 있도록 부축을 해 주겠다는 사람도 있고, 구급차를 불러주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가 세리에를 만났다.

너무나 반가웠다. 세리에도 우릴 만난 것을 무척 반가워했다.

마치 잔이 아파서 잠시 쉬는 때를 틈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세리에를 우리에게 보내준 것처럼.^^

세리에가 통증을 완화시키는 약을 주어, 그 약을 먹고 좀 더 쉰 후 천천히 걸었다.





멀리서 캐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캐시는 이미 잔이 다리가 아파서 쉬고 있던 상황을 다 알고 있었다.

캐시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자,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젊은 남자를 기다리느냐고 물어보았고, 그렇다고 하니까 저기 아래서 통증으로 쉬고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께 걷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의 안부를 전해주곤 한다.


시간이 지나니 잔이 좀 나아졌다고 한다. 오늘은 잔과 문학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잔은 자기는 러시아음악가와 러시아 음악이 좋다면서, 왠지 슬로베니아와 러시아 민족이 비슷한 민족이어서 그런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6번 교향곡이라며 꼭 들어보라고 했다. 언젠가 나도 들어봤던 곡인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중에 들어봐야겠다.

난 레미제라블 읽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정말 감동적이었지만 역사와 문화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문학을 완벽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고. 잔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오후 늦게 좀 힘든 코스를 걷게 되었다.

지난번에 힘들 때 음악을 들으며 걸었을 때 도움이 되었던 것이 기억나 이어폰을 꺼냈다.

잔이 음악을 듣느냐고 해서, 힘들 때 음악을 들으며 걸으면 조금 덜 힘들다고 이야기해 주었더니, 자기도 좀 들어봐도 되냐고 한다.


"원래, 모든 음악과 단절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니?"

"아니요, 거의 한 달을 음악을 안 들으니까 죽을 것 같아요."



마침,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듣고 있었다.

한국의 가요라고 하니, 더 들어보고 싶단다.

한참을 듣고 나더니, 말은 못 알아들어도 너무나 아름다운 음색의 아름다운 언어라고 해준다.




도착해서 샤워하고 빨래하고 저녁을 먹는데, 세리에와 함께 저녁을 먹다 보니, 할 이야기가 많아 금방 10시가 다 되었다. 잔은 샤워도 하지 않고 클래식 음악 있냐고 자기가 오늘은 꼭 클래식음악을 듣고 싶다고 한다. 내가 갖고 있는 곡들을 죽 보여주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월광", "열정", "발트슈타인"과 31번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협주곡 1번

베토벤 심포니 5번, 7번 그리고 9번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전곡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

그리고 한국의 가요와 팝송들


내가 가지고 있는 곡을 훑어보더니, 베토벤 심포니 7번을 발견하고, 너무나 좋아하는 곡이라며 듣고 싶다고 한다. 잔은 내 아이폰의 이어폰을 귀에 대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두 손으로 지휘를 하며, 깊은 음악 속으로 빠져들었다.


난 충분히 이해한다.

나처럼 아마추어 클래식애호가에게도 음악은 너무나 큰 위로와 안식이 되는데,

어렸을 적부터 음악과 함께 살아온 클래식뮤지션에게 베토벤 심포니 7번이 얼마나 큰 휴식을 줄지…….


그렇게 단호하게 자신의 고집을 갖고 있던 잔이 점점 고집을 줄이는 걸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스마트폰으로 연신 사진을 찍어대는 그러한 우리나라 젊은이와는 영 다르게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잔이 조금씩 다가와 ‘사진 찍고 싶어요. 사진 찍어 주세요.’ 하고 말하는 것도,

이제는 클래식음악이 너무나 듣고 싶다며, 음악을 건네받아 평화로운 얼굴로 음악 속에 빠져드는 모습도.

아마 도보를 통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 편해지고, 그래서 고집을 굳지 피우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이가 된 것이다.

우린 정말로 까미노의 가족이 되었나 보다.




잔이 음악을 듣는 동안 한국인 오누이를 만났다.

누나가 힘들어 먼저 잠이 든 동안 남동생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처음 만났는데, 알고 보니 그 누나는 오늘 잔이 아팠을 때, 우리에게 위로의 인사를 하고 갔던 그 한국인 여성이었다.

그 둘은 나보다 늦게 출발해서 그동안 잘 못 만났는데,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만나게 된 것 같았다. 누나는 회사를 다니다 쉬고 있고, 자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빵 만드는 것을 배우는 중인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를 고민하다가 까미노에 오게 되었단다.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아르바이트하며 모은 돈으로 왔기 때문에 가능하면 돈을 아끼려고 음식을 거의 해 먹는다는 그들 오누이가 대견해 보였다. 나중에 혹시 기회가 되면 음식 해 먹을 때 나도 초대해 달라고 했다.


오늘 나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상냥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누군가에게 상냥하게 대하면 내 마음이 참 따뜻해지는 것 같다.


아름다운 날들이다…….




걷는 중에 사리아를 좀 지나 기념품점 파는 상점에서 라면과 햇반 그리고 김치를 샀다. 그곳에는 한국음식들이 그득했다. 정말 한국 사람들이 이곳에 많이 오는 모양이었다. 잔과 캐시가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한국음식이라며 맛을 보겠냐고 했더니, 당연히 그러고 싶다고 한다.



"그럼, 오늘은 내가 한국음식으로 한 턱 쏠게~"


하필 오늘 우리가 머물게 된 알베르게에는 주방 시설이 없어 다음으로 미뤄야 해서 아쉬웠지만 내일은 반드시 주방이 있는 알베르게에 머물러야 한다는 목표가 생겼다.(^^)



2015년 9월 19일, 곤자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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