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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숙 Nov 28. 2022

목에게

너를 위한 사랑의 문법을 부단히 배워볼게

 올해였던 것 같아. 언제였는지 명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나를 발견했어. ‘나는 목이를 알 수 없겠구나. 나는 목의 마음을 절대 알 수 없겠구나.’

 “수고했어!”, “오늘도 애썼네.” 같은 말로 너의 하루를 쓰다듬을 수 없다는 것을 올해는 유독 체감했던 것 같아. 뭐라고 말을 건네고 싶은데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서 커서가 깜빡이는 메시지창을 보며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러다 도달한 결론 같아. ‘나는 네 삶을 다 알 수가 없겠구나.’라고 말이야.

 그래서 내가 작아져. 너는 네가 져야 할 짐이라고 이야기하겠지만 나는 아주 잠깐만이라도, 또는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네 짐을 가볍게 해주고 싶은데 나는 방법을 몰라.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내 앞가림하기도 벅찬 나로서는 심리적인 것도, 물질적인 것도, 삶에 대한 지혜나 태도에 관한 것도 너에게 해줄 수 있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없는 것 같아. 한 번씩 생각해. 너의 짐을 잠깐이라도 덜 수 있으려면 나는 어떻게 살았어야 했을까? 내가 어디쯤 서 있으면 조금의 힘이 될 수 있었을까? 


 목아 나는 네 뒤를 보고가. 나는 너의 무엇이 그렇게 멋있는 걸까? 너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지금도 해. 너를 닮고 싶었어. 너랑 발을 맞추고 싶었어. 실질적인 무엇도 줄 수 없다면 삶의 궤도를 비슷하게 말야. 가까이 가고 싶었어. 너를 좀 더 알 수 있기를 바랐어. 너에게 걸맞은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어. 지금도 변함없는 마음이지만 역시나 쉽지 않네. 쉽지 않았지만, 너에게 내 삶이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너를 보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너를 떠올리면서 내 알을 하나씩 깨고 있어. 둥지 밖으로 발을 내밀고 있어. 이렇게 네 뒤를 따라가기 바쁜 나는 네게 할 수 있는 게 없기는 하다.

 이런 모양뿐인데도 힘들 때 날 찾아줘서 고마워. 혼자 감당하는 시간이 훨씬 많을 테지만 내 목소리를 찾아줄 때면 고맙고, 속상하고, 그래도 고맙고 그래. 


 목아, 언젠가 네가 했던 말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어. “내 삶은 사실 그런 곳에 있는 건데 요새 나는 중요치 않은 무언가에 너무 시달리는 느낌이랄까.” 

 나는 인덕원역 4번 출구로, 너는 회사로 향하는 갈림길에서 한참 네 뒷모습을 흘끔거렸어. 검정 후드티를 입고 출근하는 네 뒷모습이 그날은 왜 그렇게 속상했을까? 

 “그만둬.”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이 숱하게 많았지만 많은 순간 말을 삼켰어. 어떻게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있겠어. 네 삶을, 비슷한 무게를 살아보지 않은 나로서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 네가 그렇게 하지 않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지. 그런데 너와 전화를 마친 어느 밤에는 네게 한 가지 묻고 싶더라. “목아, 너 여기서 손 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라고. 그리고 한 가지 더 묻고 싶었어. “너에게 중요한 건 뭐야?” 두 질문 다 나에게는 쉽지가 않네. 


 목아,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걸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질문은 지워지지 않네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홀로 걸어가네 가히 고 신해철 님은 노래하는 철학자가 맞나봐. 이 노래가 떠오르네. 나는 네 짐을 대신할 수 없고, 너도 내 짐을 대신할 수 없고… 저항하고 싶지만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철저하게 홀로 걸어가는 게 맞는 것 같아. 하지만 목아, 곰곰이 생각해보면 7년 전 너를 만나고 나서부터 나는 혼자여도 혼자가 아니었던 것 같아. 서글프게 외롭고 비참할 정도로 외로운 순간들이 있었지만 내 세계를 넓게 볼 때 난 혼자가 아니었어. 

 나는 너에게서 혼자 존재하는 법을 배웠어. (지금도 배워가고 있지.) 7년 전 ‘나는 혼자야’라는 명제에 나를 가두고 병적으로 네 옆자리에 집착하던 내가 혼자 존재하는 법을 천천히 터득한 것처럼, 홀로 걸어가는 게 익숙한 네가 조금은 내게 기대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었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려나. 


 목아, 난 언젠가부터 널 떠나보낼 준비를 조금씩 하고 있는 것 같아. 너는 누구보다 조직과 규율에 잘 맞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인 동시에 언제든 훌쩍 자유를 향해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니까. 훌쩍 떠나는 것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말이야. 네가 떠날 곳이 장소이든, 사람이든 무엇이 되었든 언젠가 닥칠지도 모르는 날을 염두에 두고 준비해야겠구나 싶더라. 그럴 때면 혼자 존재하는 법을 제법 배웠다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서늘해지지만 말이야. 

 그럴수록 지금 주어진 것에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우리 이렇게 제 삶을 살아내면서 언제든 맘만 먹으면 함께 할 수 있는 지금이 얼마나 소중해 그치? 


 목아, 나는 너를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사랑하는 법을 배울 거야. 나를 위한 사랑이 아닌 너를 위한 사랑의 문법을 부단히 배워볼게. 


지금껏 너와 함께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해. 

나의 자랑, 앞으로도 잘 부탁해. 생일 축하해.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그대여



2022년 11월 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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