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투자론이나 경제학은 모든 사람이 합리적투자자(rational investor)라고 가정한다. 합리적 투자자란 같은 기대수익률에서는 위험이 적은 투자안을 선택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가정하에서 분산투자가 최고의 선택이라는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 화려한 수학이 돋보이지만 말로 표현하면 이게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이론의 핵심이다. 자세한 사항은 필자가 이미 적은 아래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그러나, 과연 모든 인간이 이렇게 행동할까? 먼저 사람들의 위험성향(risk attitudes)을 살펴보자. 500만원을 투자하면 무조건 1,000만원을 주는 투자안(A)과 0원(50% 확률)이 되거나, 2,000만원(50% 확률)이 되는 투자안(B)가 있다고 하자. 둘 다 기대값은 1,000만원으로 동일하다.
위험회피형(risk averse) : 확실한 A를 선택한다. 기대수익률이 갈으니,위험이 적은 걸 선택하는 것이다. 용어만 보면 위험을 무조건 낮추려고 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는데,
만약 B안에서 2,000원이 3,000원으로 바뀐다면 고민할 것이다. 그래도 A를 선택한다면 위험회피성향이 높은 것이고(보수적 투자자), 기대수익률이 높으니 B를 선택한다면 위험회피성향이 낮은 것이다(공격적 투자자). 둘다 위험회피형이며, 바로 이것이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합리적인 투자자이다.
위험중립형(risk neutral) : A나 B나 상관없다. 세상사에 달관한 초월자들이다.
위험추구형(risk loving, risk seeking) : B를 선택한다. 심심한 건 싫다. 화끈한게 좋다. 심한 경우 기대값이 투자한 금액보다 낮아도 상관없다. 99.99999%의 확률로 다 잃더라도 100배 나는 경우가 한 번이라도 있으면 무조건 이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위험추구형의 대표적인 예는 로또이다. 로또의 기대수익률은 -50% 정도이다. 투자한 돈의 반은 정부와 로또 판매상에게 돌아가게 된다. 그런데, 로또는 잘 팔린다. 그럼, 이렇게 로또를 사는 사람들은 전부 위험추구형인가? 로또를 사는 사람들 중에는 주식은 겁이 나서 사지도 못하고, 예금만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다. 위험회피성향이 아주 높은 위험회피형 투자자이다. 전 재산 걸고 로또 사라고 하면 어느 정도 재산이 있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못 산다.
결국 금액과 상황에 따라 틀려지는 것이다. 적은 금액이라면 기대값은 낮아도 한 번 대박을 노려 볼 수 있는 것이다. 어차피 착실한 투자로는 꿈도 꿀 수 없는 금액도 눈에 보이고(확률은 무지무지 낮지만, 로또 1등 확률이 814만분의 1정도 되나?). 로또를 파는 사람은 그런 적은 금액을 많은 사람한테 팔아서 돈을 버는 것이다.
이렇게 위험추구형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 슬롯머신, 복권 등이다. 전체적인 관점에서 위험추구형은 당연히 손해보는 행위이다. 투자라고 할 수도 없다. 그래서 도박이라고 부른다.
당연히 도박을 하는 사람은 반대급부로 짜릿함과 기대감이라는 효용(utiliy,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개인의 주관적 만족)을 느낀다. 그래서,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기대수익률을 포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정말 슬픈 영화처럼 유일한 희망이 아주 낮은 확률로 이런 도박에만 존재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투자의 세계에서는 위험회피형을 전제한다. 위험이 같으면 높은 기대수익률을, 기대수익률이 같으면 낮은 위험을 항상 제시한다. 그래서, 펀드 같은 거 가입하면 투자성향이라는 것을 기입하는데, 결국은 그 사람의 위험회피성향 혹은 위험감내도(risk tolerance)를 측정하고, 그 위험회피성향에 맞게 공격적, 보수적 상품을 제시하는 것이다.
헷갈리지 말자. 투자론에서 이야기하는 위험회피형은 그냥 합리적인 투자자다. 위험이 높으면 그만큼 높은 기대수익률 (즉, 하이리스크-하이리턴)을 요구하는 사람이다. 그 안에서 공격적이냐 보수적이냐로 나뉘어질 뿐이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로또나 복권, 이런 것은 투자가 아니라 그냥 도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