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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u Dec 09. 2024

시에 기댄 슬픔의 한 자락


눈물 나게 슬픈 날, 마음이 미어지도록 아픈 날이 있습니다. 유독 요즘, 더 시리고 아픈 시간들이 잔뜩 고이다 못해 끝도 없이 넘쳐 흘러가는 상태까지 이르렀습니다. 슬픔과 아픔의 사건들이 한꺼번에 연속해서 줄을 지어 찾아오는 일이 저에게만 해당되는 건가요? 이상하게도 힘든 일이 한 가지 시작되면 뒤이어 다른 일들이 점점 눈덩이처럼 커져가다 팝콘처럼 연이어 터져 나옵니다. 몰아치는 고통을 모두 다 참고 감내하기에 제 마음과 영혼은 유리알보다 더 얇고 약해서 끊임없이 금이가고 깨어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 순간을 견디기 위해 다시 시집이 가득한 도서관 서고를 헤집고 다니며 고통을 덜어 줄 시를 찾아 헤매었습니다. 점점 더 추워지고 매서워지는 날씨에 도서관 한편에 우두커니 앉아 수 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곱씹고 통증을 감내하며 위로를 주는 시를 한편 읽었습니다.


 세상 일이 하도 섭해서
                                           (나태주)

세상 일이 하도 섭해서
그리고 억울해서
세상의 반대쪽으로 돌아앉고 싶은 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숨어버리기라도 하고 싶은 날
내게 있었소
아무한테서도 잊혀지고 싶은 날
그리하여 소리내어 울고 싶은 날
참 내게는 많이 있었소


따뜻한 시, 위로되는 시를 많이 쓰시는 나태주 시인님의 시를 읽으며 상처 난 곳이 보듬어지고 말없이 토닥여주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요 몇 주간 다양한 일들을 몸으로 막아내며 ‘세상이 나에게만 죽어라 죽어라’ 괴롭히는 것 같다는 하소연을 하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동생과 만나 고통을 서로에게 말하며 나만이 아닌 모든 이들에게도 또 다른 고난과 힘듦이 주어지고 그것을 극복하느라 온 힘을 다하는 모습을 다시 깨닫고 스스로를 다잡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혼란스러운 개인사에 나라일까지 혼돈의 카오스 심장이 된 것 같은 요즘은 매일매일의 삶이 마치 꿈을 꾸는 듯합니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지 틀린 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내가 가고는 있는 길이 진짜 갈 수 있는 길인건지 분간이 힘든 순간을 마주하기도 하고 멈추어 잠시 서있는 곳에서 정신을 잃을 것 같은 상태로 벗어날 수 있을지조차 헷갈리는 진통도 경험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나의 몫, 내일은 신의 몫
                                                      류시화


내 마음속에 머무르는 새여
네가 나를 아는 것만큼은
누구도 나를 알 수 없다
너는 두려움과 용기의 날개 가졌으며
상실과 회복의 공기 숨 쉬며
날것인 기쁨과 슬픔에 몸을 부딪친다.
너의 노래는 금 간 부리가 아니라
외로운 영혼에서 나온다
그럼에도 희망의 음표 잃지 않는
내 마음속에 머무르는 새여
내일 네가 어느 영토로 날아갈지는
내가 생각할 일이 아니라
신이 결정할 일
삶이 가져가는 것에 대해서는 불안해하지 않으련다
삶이 남기고 가는 것도
삶은 전부를 주고 그 모든 것 가져갈 것이므로
오늘은 나의 몫
내일은 신의 몫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시집으로 유명하신 류시화 시인님의 시집을 잔뜩 쌓아두고 읽다 마음속에 폭 들어와 앉는 시를 발견해 몇 번이고 읽었습니다. 대상 없는 허공을 향해 힘든 한숨을 토해내며 원망을 뱉어내던 모습에서 내 안의 새를 다시 들여다보는 모습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마음 깊이 들어앉은 수 없이 쌓인 화 덩어리들을 하나씩 꺼내어 새로 바꾸어보기도 했습니다. 새가 날갯짓을 하며 도약하는 순간, 떨어져 날아가는 깃털처럼 무거운 고뇌들과 해결되지 않은 근심들이 툭툭 떨어져 나가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어 보았습니다.




일제에 항거하며 조국 광복을 염원했고 좌절하거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일제에 손에 스러져간 이육사 시인을 기억하시지요? 요즘처럼 어지러운 시기를 만나면 우리의 선조들이 겪었던 더 힘든 시간들 자꾸 되돌아보게 되고 우리나라를 지켜낸 순국선열들의 업적을 기리며 더 감사하게 됩니다. 잘잘못을 가리는 일보다 개인의 이익을 따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답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을 때 떠오른 시 한 편이 있습니다. 대한독립을,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꿈꾸며 차가운 1월에 감옥에서 옥사하시기 전까지 마음과 의지를 담아 이육사 시인께서 써 내려갔던 주옥같은 시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차갑게 얼어붙어 돌파구가 잘 보이지 않는 폭풍과 비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천천히 되짚어 읽어보는 ‘광야의 별’이 오늘따라 더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광야의 별
                (이육사)


억눌리면 억눌릴수록
역사는 후일 그 고통을 증언한다.
온 겨레가 광야에서
영원한 별을 우러르고 있다.

떠난 사람들 영혼이
밤하늘 은하수처럼 흐른다.
이제 어둠이 물러나면
횃불을 든 사람들이
여명을 향해 달려오리라.

아직 날이 밝자면 멀었지만
첫닭이 울면 곧 새벽이 오리라.
흩어졌던 가족이 고향에 돌아오고
나라 위한 겨레들의 죽음이
별처럼 다시 살아나리라.

치욕당하고 살아가는 것보다
정의롭게 살아가리라
웅크리고 살던 겨레가
자유를 찾아 가슴을 활짝 펴고
광야로 달려나오고 있다.

“나에게는 행동의 연속만이
있을 따름이오. 행동은 말이 아니고
나에게는 시를 생각한다는 것도
행동이 되는 까닭이오.‘

밤하늘의 무수한 별이
시가 되고 구국을 향한
겨레의 행동이 되어 움직인다.
압박과 설움을 벗어나는
겨레의 빛이 되어 터진다.

저 광야에서 외치는 불꽃같은 울음,
가슴이 벅차 너무 벅차
뒹굴고 뒹굴어도 여명의 빛을
진정할 수가 없다.

이 광야는 천지가 열린 태초부터
우리 겨레가 지키고
우리 겨레가 소중하게 가꾸어온
신성한 땅,

광야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소리친다.
어둠 속에 별이 빛난다.
바다도 산도 나무도 여명을 맞이하여
빛을 향해 소리친다.
저 광야에 별빛이 찬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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